봄에 대해 횡설수설 좀 하겠습니다
오늘은 다듬어지지 않은 글을 써보려고 합니다. 뭐 평소에도 그다지 다듬어진 글이라고 볼 순 없겠지만요. 조금 더 마음대로 쓰겠다는 말입니다. 말투도 조금은 다르게 써봅니다. 왜냐하면 제 글을 읽는 분들이 저의 횡설수설을 가만히 듣고 있다고 생각하고 싶어 그렇습니다.
작년의 저는 종종 불안을 겪었습니다. 이유 없이 눈물이 주룩주룩나고 하루도 거르지 않고 악몽을 꾸기도 했습니다. 알람 없이 불쾌하게 깨는 그 아침이 제게는 너무도 버거웠지요. 병원을 갈까 말까 고민만 하다 올해가 되었습니다. 일을 잠시 쉬는 동안 괜찮았는데 그만, 또 봄이 오더군요. 제게는 늘 초조하고도 설레는 봄입니다.
봄을 참 좋아합니다. 막 태어난 존재들은 종을 가리지 않고 귀엽지 않습니까? 막 돋아나 배꼼거리는 연둣빛 이파리들이 따스운 봄바람에 살랑이면 그만큼 미소가 지어지는 게 없습니다. 노랑꽃, 분홍꽃 여기저기 재채기를 부르는 친구들도 춤을 춥니다. 특히 제주의 유채꽃은 꾸리한 냄새를 풍기며 봄봄봄 노래를 부릅니다. 그런 존재들을 보고 있노라면 무언가 잘될 것만 같은, 나도 이제 막 시작한 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서 발걸음도 가볍습니다. 그렇게 봄의 대부분은 귀엽고, 저는 귀여운 걸 좋아합니다. 그러니 봄이 좋을 수밖에요.
그런데 또 몹시 초조한 것이 봄입니다. 교사라서 그런 걸까요. 봄 같은 아이들이 유채꽃처럼 춤을 추며 옵니다. 저는 어떤 봄바람이 되어줄까, 어떤 봄볕이 되어줄까 고민합니다. 고민은 금세 긴장이 되어 저는 까치발이 됩니다. 잘하고 싶은 마음이 기특한 거라 스스로를 달래다가도, 어쩌면 나만의 욕심으로 아이들을 몰아붙이는 건 아닐까 하고요. 까치발로 달렸다 주저앉았다 다시 또 걸었다를 반복하다 쥐가 나버렸습니다. 이제 꽤나 급식 좀 먹은 교사인데도 버벅거립니다. 그러다 꽃샘추위 같은 업무들이 몰아칠 때면 철푸덕 엎어져버리고 맙니다.
그래서 그제도, 어제도 울었습니다. 그럴듯한 이유가 없어서 더 서글픕니다. 나는 왜 이러는 걸까요. 봄은 잘하는 것이 아니라 돋아나는 것인데 저는 또 봄의 거둬들임만 생각하고 있나 봅니다. 봄을 너무나도 잘 알면서 이러는 제가 한심스럽기도 합니다.
이 초조하고도 설레는 봄을 어쩌면 좋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