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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보일 Jan 13. 2023

엄마가 병원을 가면 반갑다

아픈 것에 무뎌지기 금지!

   '띠링' 출금 안내 문자 알림이었다. 정형외과였다. 엄마가 드디어 병원에 갔나 보다 했다. 그 문자를 보는 게 조금은 다행스럽다. 온종일 아프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면서도 엄마는 병원에 가질 않았다. 툭하면 이 정도는 괜찮다느니, 갈 시간이 없다느니 하는 핑계뿐이었다. 그러면서도 아프다는 말을 내게 늘어놓는 엄마가 미웠던 적도 있었다. 그러니 병원에서의 출금은 반가울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엄마의 병원 방문이 썩 유쾌한 것만은 아니었다. 반대로 맨날 핑계를 바꿔가며 병원에 가질 않던 사람이 얼마나 아팠으면, 자진해서 병원을 찾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서 그렇다. 나는 그렇게 반가움 반, 걱정 반의 미묘한 기분으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쩐 일로 병원에 가셨어요?"

  "응, 오늘은 너무 아팠어. 주사라도 맞으려고."

  "병원에서 뭐래요?"

  "무거운 거 들지 말라 그러지. 그럴 수가 있나. 아, 나 손목뼈가 부러졌었대."


  '부러졌다'도 아니라 '부러졌었다'라니. 부러졌던 뼈는 제멋대로 어긋나게 붙어있었다고 했다. 머리가 띵했다. 돌이켜보면 엄마가 한 달 내내 손목이 아프다고 했던 것 같다. 별 볼 일 없는 내 손으로 안마를 할 때도 건드리지 못하게 할 만큼 아파했다. 그런데 나는 왜 입으로만 병원에 가라고 나불댔을까. 사실 아프다고 하는 엄마에 떠맡기고 싶었던 건 아닐까. 온갖 자책을 이어갔다. 그러고는 퉁명스러운 말을 비수처럼 날린다.


  "뼈가 부러졌는데 모르는 사람이 어딨어!"

  "매일 아프니까 몰랐지."


  엄마는 아픈 것에 둔해져 있었다. 아픈 게 당연한 거라 여긴 덕에 뼈가 부러져도 알지 못했다. 아픈 건 당연한 게 아닌데. 눈물이 차오르려는 찰나에 엄마가 저녁 메뉴를 물었다. 나는 습관처럼 엄마가 먹고 싶은 거라는 배려 같은 책임 회피성 대답을 했다. 


  "아, 짬뽕 먹으러 갈까?"


  내 목소리가 여간 시무룩했던 게 아니었나 싶었다. 매운 걸 싫어하는 엄마가 매운 걸 먹으러 가자는 걸 보니 말이다. 맞다. 나는 매운 짬뽕이 먹고 싶었다. 어미 뼈가 부러져도 무심한 불효녀가, 서른이 다 되도록 딸의 기분을 살피어주는 엄마 앞에 선 기분이 처참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나는 어제 매운 쌀국수를 먹고 된통 아픈 후였다.


  "안 매운 거 먹으러 가요."




   '이 정도는 견뎌낼 수 있어. 더 아픈 사람들도 있을 텐데.' 


  내가 병원에서 아플 때 종종 하던 생각이었다. 이제 와 돌이켜보면 아픔의 크기를 비교하고, 참아내려고 하는 습관마저 유전되었나 싶다. 뼈가 부러진 걸 몰랐던 엄마를 보며 나는 다짐한다. 아픈 것에 무뎌지지 않기로 말이다. 그리고는 곰곰이 생각해 봤다. 여태까지의 나는 매운 걸 먹으면 배가 아팠다. 근데 또 먹었고, 점점 더 매운 걸 찾아 먹기도 했다. 스스로도 왜 그런가 싶었다. 


  몸 아픈 것도 쉽게 둔해지는 마당에 마음은 더 그런 것 같다. 직장에서의 모진 말이나 주변의 걱정을 가장한 조롱은 내 마음을 다 헤집어 놓는데도 나는 괜찮다를 연호했다. 그렇게 온갖 상처로 다 해져버린 마음은 작은 생채기로는 아프지 않게 되는 것이다.  



  새해 일출을 봤다. 늘 새해마다 소원은 빌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항상 가장 첫 소원이 돈을 많이 벌게 해 달라는 세속적이고 욕심 많은 소원이어서 그런가 싶다. 그래서 고심 끝에 처음 본 새해 일출에 힘을 빌어 간절히 빌었다. 내가 사랑하는 주변 사람들이 아프지 않게 해달라고. 아프더라도 그것에 둔해지지 않게, 조금만 다쳐도 호들갑을 떨게 해달라고 말이다. 물론 나도 포함이다. 상처를 입을 때마다 비명도 지르고 울기도 하고 호소도 하고 병원에도 갈 것이다. 




ep.

  이런 작은 상처는 샤워할 때야 알게 된다. 따뜻한 물이 닿으면 따끔거리니 말이다. 아주 호들갑을 떨어주었다. 굳이 연고도 발랐다. 그러니까 주변 사람이 아프면, 연고가 되어줄 필요 없이 따뜻한 물이나 되어주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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