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보일 Oct 20. 2022

가을은 여덟 살로 돌아가게 해

아이유의 <무릎>을 들으며

  아이유의 잔잔한 노래들이 잘 어울리는 계절이다. 아침은 차갑고 낮은 더웠다가 밤은 다시 서늘한 내 마음 같은 계절. 10월은 내내 차가웠다 더웠다 나를 그렇게도 괴롭혔다. 오늘도 그 괴로운 하루 중 하나였다. 끔찍한 악몽에 시달려 울다 깬 아침. 애매하게 걸쳐 입은 여름 재킷이 생각보다 가을 아침에 잘 어울린 출근길. 오늘의 할 일을 모두 마쳤는데도 거대히 쌓인 내일의 할 일이 보이는 직장. 나는 그 일교차에 맥이 풀려버렸다.


  살을 빼겠다고 집까지 걸어오는 엄마를 데리러 가는 길에 얼레벌레 울며 갈 순 없으니 억지스럽게 좋은 생각들을 한다. 볕이 참 좋다. 내일은 금요일이다. 오늘 옷이 참 잘 어울린다. 그렇게 엄마를 만나면 웃을 수 있다. 엄마는 엄마를 기다리던 여덟 살의 나처럼 해맑게 나를 맞이한다. 나는 거칠거칠한 엄마 손을 잡고 느릿한 엄마 걸음에 발을 맞춘다. 엄마의 하루를 재잘대는 동안 나는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나는 나쁜 엄마가 될 테니 아이를 낳지 말아야지. 


가을 오후의 색


  엄마가 갑자기 우뚝 멈춰 선다. 그러곤 보도블록의 무늬를 가리키며 "이거는 참 물음표 같다!"라고 말하면 나는 억지스러운 생각을 할 수가 없다. 


  "엄마, 너무 귀여운 거 아니야?"


  빙그레 웃어버리는 엄마 앞에 나는 가을이 못 된다. 그래서 다짐한다. 이따 나의 귀엽고 소중한 엄마가 까무룩 잠에 들면 그때 나도 모든 걸 놓고 펑펑 울겠노라고. 그렇게 우두커니 앉아 울적함을 만끽하는 중에 엄마 잠꼬대가 들렸다.


  "음, 치킨 시킨 건 언제 와."


  나의 우울한 방문을 자꾸 두드리는 엄마가 오늘은 왜 이리 고마울까. 엄마 머리칼을 넘겨주다 곁에 누워있다 나는 정말 여덟 살이 되어버린다. 늘 시끄럽고 난폭하던 집에서 벗어나 엄마의 손을 잡고 가던 사촌 언니네 집. 변기도 방충망도 제대로 없지만 시원한 가을바람과 따스운 가을볕이 잘 어우러지던 집. 핼쑥한 엄마 얼굴이 편안히 잠든 모습을 구경하게 만들던 집. 그 옆에 누워 엄마 살 냄새를 맡다 잠이 들면 어느새 깬 엄마가 내 머리칼을 만져주던 그 집. 나는 그때 거기서 만큼은 정말 아무것도 모르던 여덟 살이었어.


  엄마, 오늘 나는 정말 그때의 그 순간의 여덟 살로 돌아가고 싶었어. 그러니까 내일 아침에는 엄마가 내 머리칼을 만져주고 가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가난하지 않다는 게 어떤 건지 잘 모르겠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