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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보일 Dec 06. 2020

가난하지 않다는 게 어떤 건지 잘 모르겠다

언제쯤 나는 가난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일과를 끝내고 온 엄마가 제 수명을 다한 건전지처럼 이불속으로 나동그라졌다. 여기도 아프다, 저기도 아프다 하는 엄마를 보니 바닐라 아이스크림에서 쓴 맛이 났다. 나는 또 습관처럼 눈앞을 흐리고 고개를 쳐들었다. 엄마가 놀란 듯 나를 바라봤다. 공기가 무거워지지 않길 바랐다.


  "내가 한 달에 500쯤 벌면 엄마가 아무 걱정 없이 쉴 텐데, 맞지? 아직 외벌이는 안 되겠더라고!"


  내일도 일하러 가라는 내 말에 껄껄 웃으며 "그렇지?"하고 전원을 꺼뜨리는 엄마 모습에 명치 부근이 묵직해졌다. 더 이상 망가질 곳 없이 아픈 엄마에게 편히 쉬라는 말을 하지 못하는 내가 미웠다. 옆집 할아버지의 노랫소리가 들렸다. 사실 노래라기보다 밤낮을 가리지 않는 제멋대로의 고함에 가까웠다. 겨우 잠에 든 엄마를 깨울까 속으로 못돼 먹은 욕을 한 바가지 해댔다. 언제쯤 국가가 빌려주는 이 남루한 집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어두운 방 안에서 엄마를 등져 눕고는 부동산 어플을 켰다. 부장님은 집값이 많이 내렸다고 했고, 뉴스에선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사람들이 넘쳤는데, 내가 갈 수 있는 집은 없었다. 먹고 싶은 것, 입고 싶은 것 참으며 남몰래 키운 적금이 한없이 초라해졌다.




  아빠는 8천만 원의 빚을 내팽개쳐두고 집을 나갔다. 엄마는 나와 남동생을 키워야 했다. 낮에는 채소가게에서 알바를 하고, 밤에는 국수가게에서 서빙을 하고, 명절엔 떡집에 알바를 갔다. 그렇게 나는 가난하지 않게 자랐다. 몰라서 그럴 수 있었다. 스무 살 무렵의 나는 이미 너무 커 버려서 더 이상 모를 수 없었다. 그렇게 나는 월급이 밀리지 않고, 잘리지 않는 직업을 가져야 했다.


  빚은 줄어들고 있다. 추울 때 따뜻하게 자고, 더울 때 시원하게 잔다. 책 한 권을 살 때 더 이상 눈치 보지 않는다. 먹고 싶은 걸 먹고 싶을 때 먹을 수 있다. 그렇게 가난을 벗어난 줄 알았는데. 나는 아직도 옷가게에서 가격표를 보고 괜찮은 변명거리를 찾고, 남자 친구에게 손을 벌리고, 남들에게는 흔하디 흔한 해외여행 한 번 하지 못했다. 또다시 지독한 '가난병'이 도졌다.


  가난병이 도질 때면 마음도 가난해지곤 한다. 허리가 굽은 할머니의 짐을 들어다 주는 엄마에게 "저 할머니도 아들딸 다 있어."하고 핀잔을 준다. 휴대폰 요금으로 10만 원이 나오는 동생이 밉고, 금수저 연예인에게는 괜히 오만정이 다 떨어진다. 그렇게 잔뜩 구겨진 내 모습이 참 싫다.




  박원의 '노력'이라는 노래를 좋아한다. 상대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 마음을 참 솔직히 담은 가사가 인상적이다. 어쩌면 사랑을 가난으로 바꾸어도 말이 된다는 점이 마음에 든 것 같기도 하다. 안 되는 꿈을 붙잡고 애쓰고, 아픈 몸을 이끌고 할 일을 끝내는 노력을 해도 결국엔 안 된다는 것.


  누군가는 날 더러 배부른 소리 하지 말라며, 너는 가난하지 않은 거라며 화를 낼지도 모른다. 그와 입씨름하고 싶지만 대꾸할 말이 없다. 가난하지 않다는 게 어떤 건지 잘 모르겠다. 얼마나 더 쓰지 않고 얼마나 더 똑똑하게 굴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가난의 끝에는 무엇이 있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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