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크게 보려고 아이패드를 산 동생이 밉지 않고 안쓰럽다
12월 31일 오랜만에 집에 온 동생이 꺼낸 건 아이패드였다. 엄마도, 나도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엄마는 처음 보는 전자기기여서였고 나는 '네가 무슨 돈이 있어서'라는 의문이 들어서였다. 선물을 받았다고 했다. 그런데 그럴 리가 없었다. 어느 누가 그렇게 비싼 선물을 탁탁 사준단 말인가. 내게 선물의 또 다른 의미는 '절약해야 할 때 산 충동구매의 변명 내지 거짓말'이었다. 아마 동생도 스스로에게 준 선물일 거라 생각했다.
예전 같으면 무슨 선물이냐며 화부터 냈겠지만 연말은 너그러워야 한다. 부정적인 감정을 쏟기엔 기운도, 시간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다지 예쁜 말은 나가지 않았다.
"뭐 하러 무겁게 가져왔어?"
"아, 에어라서 안 가벼워."
내 말을 직독직해하는 동생에 이마를 탁, 허탈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이왕 아이패드를 산 김에 어릴 적 잘 그리던 그림이라도 그리거나 하면 좋으련만, 보나 마나 유튜브를 크게 볼 모니터나 될 것이다.
저녁을 다 먹고 해돋이를 보기 위해 일찍 잠이 든 엄마를 두고 동생은 내게 다가와 귓속말을 했다.
"누나, 내 아이패드로 뭐 같이 보자."
"내 노트북으로 보면 되지."
"에이, 그래도 이거 가져왔는데 같이 봐주라!"
다시 한번 말하지만 연말은 너그러운 탓에 나는 부득이하게 동생 방에 엎드려 함께 넷플릭스를 뒤적거렸다. 얼른 보고 치울 셈으로 20분짜리 몇 화로 쪼개져 있는 드라마나 애니메이션을 보자고 꼬드겼다. 그러자 본인이 보던 <체인소맨>이라는 애니메이션을 함께 보자고 했다. 내용은 뭐 늘 그렇듯 먼치킨형 주인공(덴지)이 악의 무리를 처단한다는 거였다. 조금의 차이점은 주인공이 아주 이상하고, 성적인 요소가 많이 부각된다는 거였지만.
덴지는 식빵 한 조각을 먹는 것이 하루 끼니일만큼 처참한 삶을 산다. 꿈이 잼을 바른 빵을 먹는 것일 정도로 말이다. 한참 보던 중 자신만의 소박한 꿈을 무시당하던 덴지가 본인은 더 나아지길 원하는 것뿐이며, 그걸 원하는 건 나쁜 게 아니라는 식의 대사를 날렸다. 속으로 조금은 '오' 했다. 나는 거기에 코멘트를 붙였다.
"기본적인 욕구가 충족되지 않는 상황에서 그 이상의 욕구를 추구하기란 어렵지."
동생도 한 마디를 꺼냈다. 그리고 나는 그 말 한마디에 이 철부지가 안쓰러워져 버렸다.
"나는 이거 보고 많이 울었어."
평소 같으면 울긴 왜 우냐며 빈정댔을 테지만 어쩐지 입을 꾹 닫게 되었다.
가족들과 사는 게 답답하다며 나간 동생이었다. 지친 목소리로 전화올 때면 '별것도 아닌 걸로 징징대긴, 그러게 나가긴 왜 나가'하며 혀를 찼었다. 그런데 이렇게 별것도 아닌 만화를 보며 울었다니. 그래. 수업 듣고 알바까지 끝낸 뒤에 혼자 저녁을 챙겨 먹기는 힘들겠지. 잠도 잘 오지 않았을 거야. '그러게. 나는 정말 왜 집에서 나온 걸까'하며 후회도 했을 거야.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지만 입은 고급인 탓에 과자를 사러 가면 늘 내 눈치를 살폈던 동생의 모습이 겹쳐졌다. 가장 싸고 맛없는 것과 가장 비싸고 맛있는 것, 그 중간의 것을 선택하며 땀을 삐질삐질 흘리던 바보. 눈치를 보며 과자를 고르는 습관은 동생 가슴 깊이 남아버렸다. 대학을 갈 때도, 가방을 살 때도 누나와 엄마의 의견을 묻는다. 졸업 후 진로를 물으니 "누나가 언제는 이거 하라며."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아이패드를 샀다고 떳떳이 말하지 못한다. 그래서 유튜브를 크게 보려고 아이패드를 산 동생이 밉지 않고 안쓰럽다.
그리고 오늘 동생의 아이패드 역할이 추가된 것 같았다. 정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제는 안쓰러움을 거두고 묵묵히 지켜봐 줄 차례다. 자신은 없다. 부디 내가 엄마 아들을 빈정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p.
늘 어리고 답답했던 네가 어른이 되어가는 게 왜 이리 마음이 아픈지.
네 일에 네 스스로가 가장 아프고 힘들테지.
누나는 가만히 있을게! 네가 다시 뒤돌아왔을 때 그냥 등짝이나 토닥여줄게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