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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복 Jun 20. 2020

지금, 여기



요즈음 그대는 부쩍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고, 얼굴빛은 어둡다. 

처음 그대를 내가 알아본 날, 내 눈에 비친 당신은 경쾌했는데..

우리 사이에 계절이 지나고 시간이 흐르는 동안 당신의 자리가 달라졌고, 옮겨진 자리에서 그대는 오늘도 고단해 보인다.      


해질 녘 퇴근을 서둘러 집에 왔다. 

해가 다 저물어 버리기 전에 다복이를 데리고 산책을 나서고 싶었다. 

그날따라 바람은 상쾌했고, 머리 위로 구름은 운치가 있었다. 

시간이 있을 때마다 들르는 가까운 공원에 호숫가를 다복이와 한 바퀴 빙 돌았다. 

잎이 스치는 소리가 귓가를 가득 메울 무렵, 코끝으로는 풀 내음이 돋았다. 

     

그러고 보니 이 동네에 이사하고 이 공원을 몇 번이나 찾았는지 모른다. 

있었던 자리에 같은 나무와 호수와 잔디가 철마다 지키고 있었는데, 

나는 그 날 그 모든 것들이 새삼스러웠다.  

곁을 따라 걷는 다복이와 멀찍이서 총총 자리를 옮기는 까치까지.     


아, 행복하다.      


명치끝부터 차오른 평화가 가져다 준 열매는 달았다. 

작년 이 맘 때에도 나는 같은 곳을 걸었을 것이다.

오늘의 지금, 여기 이 평화는 그대가 내 곁에 오고 난 이후로 찾아온 선물이다.      


그대를 만나 한동안 겁이 났다. 

얻기도 전에 잃을까 걱정 되었던 마음은 익숙한 두려움을 우리 가운데 두었다. 

계절이 두어 번 지나고 그대와 함께 하는 주말이 익숙해지면서 나는 그대의 고단함이 안쓰러워진다.      


지금, 여기. 

그대를 안쓰러워하는 오늘의 나는 어제 보다 행복을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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