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산책을 했다. 아니, 길다기보다 적당한 거리의 적당한 산책을 여러 번에 나누어했다. 오늘은 계절을 맞이하는 추석 연휴의 첫날이었다. 오랜만에 찾아온 긴 연휴 앞에서 설렘을 동반한 들뜸이 일었다. 평소 보다 더 많이 움직이고 싶었고, 더 많이 읽고 싶었다. 미세먼지는 상당히 나쁘다고 알람이 주접스럽게 울려댔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먼지를 마셔서 오래 살 수 없다면, 그 마저도 내겐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집 근처에는 제법 카페가 즐비하다. 걸음을 조금만 옮기면 감각적인 인테리어는 물론이고, 커피 맛도 썩 괜찮은 곳을 몇 군데 찾을 수 있다. 직장 생활을 할 때에는 넘볼 수 없을 만큼 풍성한 개인 시간이 생겼지만, 여전히 내 일상은 분주해서 평소엔 카페에 들를 여유가 거의 없다. 오늘은 평소 짝꿍과 산책하며 눈여겨보았던 카페를 갔다.
구움 과자와 커피를 파는 카페였다. 특별한 콘셉트를 내세우지 않고 모던한 느낌으로 실내는 단정했다. 힙한 구색을 갖추는 일은 달짝지근한 베이커리 냄새와 커피가 베인 향에서 시작해서 내 취향에 가까운 음악으로 완성되었다. 그 카페에서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일기를 쓰고 시집을 뒤적였다. 가장 여유로운 시간을 조급하게 달려오는 불안 없이 보냈다. 물론, 커피맛도 구움 과자의 맛도 예상하는 정도의 맛이었다. 더 할 것도, 덜 할 것도 없는 그런 것.
이제는 예상할 수 있는 것들에 만족하는 나이가 되었다. 늘 모험적인 일상은 버겁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들른 카페는 나에게 안정감을 주었다. 낯설지 않음, 그것이 주는 모호하지 않은 감각이 있다. 상상하기를 즐기던 어린 날엔 세상의 모든 것이 먼 미래 같기도 했고, 현실은 어서 자라 앞서 전진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지금은 확고하고 확실한 무엇이 편안하다.
그런데 지금 내 삶은 가장 모호하고 불확실하며, 모든 것에 ‘가능성‘ 이외에 어떤 것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아이러니하다. 어린 날에는 책임감에 똘똘 뭉쳐서 앞뒤로 막힌 사슬 안에서 움직일 수 없었다면, 지금은 아무것도 나를 막는 것이 없다. 나 밖에는. 인생의 시간표가 앞뒤로 뒤바뀐 것 같다.
오늘도 어떤 상상이 나를 멀리 데려다 놓았다. 까무룩 한 미래를 꿈꿀 때 내겐 불안이 자주 당도한다. 오늘도 그랬다. ‘너무 멀리 갔어.’라고 되뇌일 무렵, 피식 웃음이 났다. 삶에서 멀고 가까움이 어디 있는가. 그저 이 걸음이 어디로 데려다 줄 지 기억하지 않고 나아갈 뿐이지. 그러자 불안이 가져온 밑그림이 설레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확실하지 않으니 무엇도 가능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