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것이든 대가리까지 회쳐서 소주를 한두 잔 곁들일 수 있다면
평소에 복용하던 약 성분을 반 이상 줄여서 그런지 몽롱한 상태로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잦아졌다. 잠을 자는 건 아닌데, 얕은 수면에 빠져들고 있는 것 같은 그런 상태랄까. 잠을 잔다기보다는 ‘잠깐 눈을 붙인다’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지 모르겠다. 매일매일 해야 할 일이 존재하니 제시간에 일어나고 있긴 하다만 (사실 최근 아침에 보내야 하는 외주를 보내지 못해 회사 직원으로부터 모닝콜을 받고 일어난 적이 꽤 있다. 근태 엉망진창..) 개운함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다. 책상 위나 침대에서 깜빡 잠드는 경우도 많아졌고 무엇인가에 생기를 빼앗긴 듯한 기분이 든다. 이런 날에는 그냥 탁 트인 동해 바다 앞에 앉아 부서지는 파도를 한없이 바라보고만 있고 싶다. 물에 들어가지 않아도 좋으니 그 특유의 거센 바람과 짠 내음을 맡고 싶다. 아무 문제도 없다는 듯, 늘 그 자리를 지킨다는 듯 흐르면서 흐르지 않는 푸르른 것들을 바라보며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하염없이 시간을 보내고만 싶다.
나는 유독 바다를 좋아했다. 아니, 좋아하게 되었다. 부친은 함께 등산하러 갈 때마다 바다보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이 될 것을 강조하곤 하셨다. 바다는 아무 노력 없이 탁 트인 광경을 즐길 수 있지만, 산은 힘을 들여 정상에 올라가야 비로소 기막힌 광경을 볼 수 있다는 이유였다. 그래서인지 부친은 늘 나와 함께 등산하러 가기를 원하셨고, 산 정상에서만 느낄 수 있는 그 뿌듯함을 강조하셨다. 이런 부친의 영향 탓인지 어렸을 적에는 산을 더 좋아하려고 노력했지만, 요즘은 산보다는 바다가 훨씬 좋다. 노력이고 힘이고 들일 필요 없이 찾아가기만 하면 나를 기다리고 있던 것처럼 바로 마주할 수 있는 바다가 좋다. 내 인생이 갖가지 돌과 나무뿌리로 뒤섞인 험난한 오르막길을 계속 올라야 하는 산보다는 그저 평온하고 드넓게 펼쳐져 있는 바다였으면 좋겠다. 속된 말로 그냥 날로 먹고 싶다는 얘기다. 우리네 삶에서 날로 먹을 수 있는 건 기껏 해봤자 생선회밖에 없다던데 아주 조금의 가능성만 존재한다면 내 인생도 날로 먹고 싶다.
생각해보면 늘 약을 먹을 때마다 날로 먹는다는 느낌을 받곤 했다. 진통제를 먹을 때는 무슨 갈퀴 같은 도구로 자궁 내벽을 긁어대는 생리통을 가볍게 잠재워버리는 것 같았고, 식욕억제제를 먹을 때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들을 짓눌러 밟아버리는 것 같았다. 위 안정제를 먹을 때는 속은 다 베려놓고 정말 소방관이 불난 집에 물 부어대듯이 손쉽게 응급조치를 하는 느낌이었고, 자양강장제를 먹을 때는 10년이든 20년이든 미래의 어느 순간의 내 힘을 끌어오는 듯한 기분이었다. 순간의 고통을 잠재워주는 알약이야말로 ‘날로 먹는다’라는 표현이 아니면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사소한 문제가 하나 생겼다. 이제는 약도 날로 먹을 수 없게 되었다. 분명 약 성분도, 가짓수도 줄였는데 약 먹는 게 역겨워졌다. 물과 함께 약을 삼키면 식도에서 위까지 그 알의 형태가 고스란히 전해지면서 어느 부분에 어떻게 막혀있는지 느껴지고, 그 약이 녹아내리면서 나는 특유의 씁쓸함이 식도를 타고 올라온다. 알약이 식도에 정체하고 있는 시간은 날이 갈수록 점점 더 길어지고, 과연 어디서 비롯되었을지 모를 이 답답함이 심장을 옥죄어온다. 내게 남은 마지막 약은 대략 20일 치. 내 인생에서 그나마 날로 먹을 수 있는 것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이 짧은 기간 안에 나는 정상인으로 거듭날 수 있을까.
누군가 그랬었다. 광활한 자연의 흐름을 직시하면 자신의 삶은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버린다고. 그 어떤 집념도, 집착도, 미련도, 욕심도, 허영심도 사라지기 마련이라고. 대자연의 웅장함을 경험한다면 한낱 하루살이와도 같은 인간의 삶이 부질없음을 알 수 있다고. 그래서 자신에게 거는 기대도, 허상도, 이상도 모두 내려놓을 수 있다고. 그래서일까, 요즘 따라 그렇게 바다에 가고 싶은 이유가. 아무 노력도 하지 않아도 웅장한 기운을 내뿜는 그 무엇보다 넓고 푸르른 그 존재가 내게 무언가 알려줄 것만 같다. 어차피 넌 아무것도 아니니까 그렇게 시달릴 필요 없다고, 그냥 신경 쓰지 말고 마음 편하게 살라고 말해줄 수 있을 것만 같다. 물론 바다가 나한테 해주고 싶은 얘기가 아니라, 내가 바다한테 듣고 싶은 말이겠지만.
날로 먹을 수 있는 것들을 먹으며 날로 먹는 삶은 어떤 것일까. 광어니, 참돔이니 연어니 하는 생선들을 대가리까지 다 회 쳐놓고 나의 노력이 가미되지 않은 돈으로 소주를 까는 것과 같을까. 소든 돼지든 고기들을 다져 노른자까지 올려놓고 막걸리를 걸치는 것과 같을까. 아니 대체 왜 생각나는 게 술밖에 없는 거지. 술이야말로 날로 먹을 수 없는데. 죄다 발효 기간을 거치지 않나? 하기야 생선도 가축도 어떻게든 날로 먹으려면 그들이 자라야 하니 날로 먹을 수 있는 게 아니겠구나. 그럼 정말 날로 먹을 수 있는 건 자연에서 찾아볼 수 없는 걸까? 화학적인 공정을 잔뜩 거친 인위적인 약 말고는 없는 걸까. 이조차도 날로 먹을 수 없게 되었으니 조금은 한탄스러워해도 되는 걸까.
바다에 가고 싶다. 서해나 남해 말고, 거친 파도로 가득 차 있는 동해로 가고 싶다. 아무것도 먹지 않아도, 누구와 함께 있지 않아도 좋으니 그저 그곳에 있고 싶다. 바다는 말해줄 수 있지 않을까. 네가 날로 먹을 수 있는 건 없으니 헛소리 지껄이지 말고 지금 하고 있는 일이나 똑바로 하라고 말이다. 그 누구의 말도 듣지 않는 인간이지만, 대자연의 말 정도는 들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지.
* 본 글은 <다붓한 공간>에서 진행했던 7월 연재 원고 중 한 편을 발췌한 것입니다.
* 1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에서야 올리는 이유는 귀찮음이 의지를 이겼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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