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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민서 Jul 05. 2021

취한 자의 시선

가끔은 술이 아니라 약에 취하곤 하지


 몸이 좋지 않을 때는 자연스럽게 작년 이맘때를 떠올리곤 한다. 2주 간격으로 병원과 응급실을 들락거렸던 그때의 기록을 뒤적여보면 프랑스 작가 프랑수아즈 사강의 ‘독약’이 생각난다. 교통사고 이후 통증을 가라앉히기 위해 약물치료를 시작하면서 병원에서 쓴 일기를 모아놓은 이 책은 그야말로 ‘환각 상태’에서 집필된 책이다. 맥락도 자연스럽지 않은데 묘하게 연결이 되고, 의식의 흐름대로 흘러가는 듯하면서도 체계적인 느낌이 강한 매력적이면서도 두려운 이 책이 떠오르는 이유는 너무나도 강렬했던 응급실의 풍경 탓이겠지.



(은근슬쩍 걸어보는 독약 서평 링크)







 처음으로 혼자 갔던 응급실은 그야말로 ‘완벽에 가까운 멸균과 강도 높은 통증이 공존하는 곳’이었다. 여기저기서 울려 퍼지는 신음 혹은 울음소리, 아파 죽을 것 같아도 이성의 끈을 잡고 기다려야 하는 대기 순서, 황급히 움직이는 보호자로 추정되는 사람들, 그 속에서 이상하리만큼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의료진까지. 섞여 있으면 안 될 것같이 따로 노는 존재들이 한 군데 옹기종기 모여있는 모습은 ‘묘하다’라는 표현 말고는 생각나는 단어가 없을 정도로 기괴했다.



 새벽 세 시 경 찾아간 응급실은 생각보다 분주했다. 사람이 가장 나른하고 무기력해지는 시기가 새벽 네 시쯤이라던데 응급실에서는 환자로 추정되는 몇몇 사람만이 몸을 축 늘어뜨리고 있을 뿐, 다른 사람 들은 모두 각자의 할 일을 처리하는 데 바빴다. 그것이 수납이든, 연락이든, 보살핌이든, 진료든, 수발이 든 간에 말이다. 그 가운데에 자리 잡은 긴 의자 중간에 홀로 앉아 배 어딘가를 부여잡고 내 순서를 기다리는 기분 역시 묘했다. 쓸쓸하지만 외롭지 않고, 아픈데 두렵지 않았다. 아마 통증 부위만 다를 뿐 나와 비슷한 고통을 참고 있는 사람들이 주변에 널려 있었고, 내가 당장 죽기 직전까지 아파진다면 나를 최대한 살려낼 수 있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겠지.







 누워있는 것도 버거워서 찾아온 응급실에서 불편하기 그지없는 딱딱한 의자에 쭈그리고 앉아 대기하는 일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그나마 편할 것 같은 자세도 취해보지 못하고 끙끙대며 내 이름이 불리기만을 기다리는 처지가 얼마나 우습던지. 그 와중에 머릿속으로 응급실 비용이 얼마나 나올지 계산해보며 통장 잔액을 확인하는 내 모습을 보고 아직 죽으려면 한참 남았구나 싶기도 하더라. 죽을 정도로 아픈 사람 머릿속에는 돈 따위 안중에도 없을 테니까. 아무튼, 이런 쓸데없는 생각들만 반복하며 기다리다 보니 내 순서가 돌아왔다.



 말도 못 하고 혼자 앓고 있었던 탓에 입에서는 반갑지 않은 단내가 퍼졌고, 위와 대장 사이 혹은 횡격막 언저리에 머물던 통증은 그사이 위아래로 번져 정확히 어디가 아팠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았다. 진찰을 나온 의사는 임신 가능성을 물어본 후, 몸의 이곳저곳을 찔러보며 통증의 근원을 확인하고 여러 기계 속으로 나를 밀어 넣었다. 이후 이름 모를 약 서너 가지가 한 데 섞여 고무관을 타고 서서히 몸으로 파고들었다. 피부는 얇지만, 혈관 역시 얇고 파묻혀있는 탓에 애꿎은 팔뚝에만 주삿바늘이 서너 번 관통했다. 결국 나도 간호사도 팔뚝을 포기하고 ‘좀 아프더라도 쉬운’ 손등에 주삿바늘을 꽂았다. 혈관의 크기와 맞먹는다는 굵은 바늘을 견디기 힘들었는지 손은 점점 부어올랐고 그렇게 오른손은 잠시 자유를 잃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제 출생일은 96년 12월 17일입니다. 기억해주세요(?)






 한 손으로 가족 단톡방에 응급실에 와있다는 카톡을 보냈고, 일어나자마자 이상한 연락을 보고 깜짝 놀란 양친으로부터 크나큰 불효를 저질렀다는 잔소리를 들으며 부친의 손에 이끌려 돌아왔다. 이게 첫 번째로 방문한 응급실에 대한 기억이다. 두 번째는 심장 쪽이 아파서 갔었는데 다행히 심장은 괜찮다더라. 심근경색이나 심장마비가 아닌 것을 확인하자마자 썩 급하지 않은 환자로 취급되어 병원 복도에 내던져졌다. 사람으로 가득 찬 탓에 침대는 구경도 못 하고 제발 진통제라도 먼저 놔달라고 사정을 해서 겨우 얻은 세 봉지(?)의 진통제를 손등에 꽂고 복도 의자에 걸터앉았던 기억이 선명하다. 그때는 모친이 데리러 오셨는데 상당히 기분이 안 좋아 보였다. 2주도 지나지 않아 다시 방문한 응급실이니 아무래도 이런저런 생각이 많이 드나보다, 싶었는데 나중에 여쭤보니 할아버지와 관련된 기억이 얽혀있어 응급실 자체를 꺼린다고 하시더라. 어머니의 어린 시절에 할아버지께서 응급실에서 돌아가셨다니, 인정하고 싶지 않아도 내 응급실 탐방은 여러모로 불효가 맞았다.



 당시 진통제를 맞은 뒤 숨은 돌렸지만 퇴원할 때까지 자는 것 말고 딱히 할 일이 없었던 내가 듬성듬성 적어뒀던 글귀나 단어들을 보면 실소가 나온다. 어떻게든 생각난 건 써놓겠다고 맞춤법이나 띄어쓰기 따위 죄다 무시한 채 맥락 없이 써놓은 글에는 약방의 감초처럼 비속어도 중간중간 섞여 있었다. 지금은 하나도 기억이 안 나지만, 옆 침대에 있던 아저씨가 꽤 시끄럽게 코를 골았던 모양인지 웬 취객이 와있다고 쓴 구절도 있더라. 그 짧은 글 안에서도 감정 기복이 오락가락했다. 어느 순간에는 혼자 이것저것 생각하면서 고민하다가, 어느새 타인의 모습을 관찰하고 있고 (당시의) 나를 둘러싸고 있는 낯선 시공간의 분위기와 특징을 기록하다가 불쑥 들려오는 이상한 소음에 화를 내기도 하더라. 대체 언제쯤 평온하고 잔잔하게 살련지. 진통제 수십 봉지를 한 번에 때려 박으면 가능해지려나.




복도에서 뭔가 처량해서 찍었던 사진






 프랑수아즈 사강의 ‘독약’도 이런 느낌이었다. 물론 그 작품과 아이폰 메모장에 찌끄려둔 몇 줄의 낙서 가 감히 비교 대상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은 여전하지만, 통증을 가리기 위해 어떤 것에 취한 채 다른 것들은 바라본다는 그 ‘시선’은 비슷했달까. 진통제에도 취했는데, 마약에 취했을 때는 어떤 느낌이려나. 좀 더 본능과 본성에 충실할 수 있을까. 나도 몰랐던 나를 마주하게 될 수 있을까. 아 물론 내게 허용된 마약이라곤 하리보 곰젤리나 마약성 진통제밖에 없다. 처음 읽을 때 상당히 설렁설렁 읽은 책이라 다시 한번 각 잡고 읽어보고 싶은데, 도서관이 모두 휴관해버렸다. 역시 인생은 타이밍의 연속이라니까.



 다 쓰고 나서 보니 이것은 서평도 수필도 아닌 애매한 글이 되었다. 그리고 옆에는 맥주가 있다. 역시 무언가에 취하면 취한 글을 써내리는 법이다.




약이든 술이든 무언가에 찌드면 이렇게 되지 않을까





* 본 글은 <다붓한 공간>에서 진행했던 20년 8월 연재 원고 중 한 편을 발췌한 것입니다.

* 1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에서야 올리는 이유는 귀찮음이 의지를 이겼기 때문입니다.

* 다른 원고를 읽어보시고 싶은 분들은 다붓한 공간에 방문해주시길 바랍니다.

* 브런치에 올리는 모든 이미지는 직접 구매하여 라이선스를 부여받은 이미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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