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창호 Aug 09. 2024

마이카(My Car)를 향한 40년의 여정

인천 부평의 자동차 산업

     

  인간의 발명품 중에서 중요한 것의 하나가 바퀴의 발명이다. 바퀴의 가운데 축은 비어 있는 허(虛)의 공간이다. 허의 공간에서 중심이 생기고 여기서 균형이 나온다. 바퀴는 문명의 발달로 진화를 거듭하여 첨단의 각종 모빌리티로 발전 중이고 그 대표가 자동차이다.     

  필자는 요즘 자동차 전시를 기획, 준비하면서 자동차와 대화하고 있다. 자동차의 역사가 백년을 훨씬 넘었다. 산업에서 출발한 자동차는 이제 예술이 되었다. 자동차에는 첨단기술 뿐만 아니라 세련된 디자인이 가미되어 필수품이자 예술품이 된 지 오래되었다.      

  원래 자동차는 부와 신분을 상징하는 상류층의 사치품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경제가 발전하고 소득이 증가해 중산층이 형성되면서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품이 되었다. 그 실례가 국민차를 개발하고자 시작한 1962년부터 보자면 40년간이 마이카로의 여정의 역사이다. 그 여정의 역사에 떠오르는 자동차 이름만 해도 여럿이다. 퍼블리카, 포니, 엑셀, 르망, 프라이드, 티코 등이 그것이다. 70~80년대 사람들의 로망은 자가용을 타고 고향집과 처가집을 가는 것이었다. 성공의 표시가 차였고 욕망의 대상이 차인 시절이었다. 지금은 한 가구에 집이 두서너 대이지만 차 한 대를 소유하는 날 경사스런 행사를 하던 시절이었다.      

  한국 경제의 두 축은 반도체와 자동차이다. 두 산업의 수출 증감에 한국 경제의 운명이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천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2022년의 인천상공회의소 통계를 보니 반도체와 자동차 산업의 비중이 23%와 13%로 그 둘을 합치면 36%에 달한다. 자동차에 들어가는 반도체와 철판, 엔진과 부품을 인천의 공단에서 공급해 온 역사를 추적하니 국내 자동차 산업의 역사 그 자체이다.      

  그런데 인천 사람들은 대우자동차가 폐업한 이후로 인천의 자동차산업 역사에 대한 아카이빙의 중요성을 모른다. 대우차를 이어받은 한국GM은 1930년대부터 이어져 온 부평의 자동차 산업의 흔적을 보존해 전승해 주어야 한다. 이 점에서 현재 가동이 중지된 부평2공장을 방치하지 말고 재활용을 모색해야 한다. 80년의 부평 자동차 산업의 각종 자료와 역사를 아카이브하여 자료관으로 만들어야 할 곳 역시 그 곳이다.     

  인천과 부평은 한때 한국 자동차 산업의 메카였다. 신진자동차가 60~70년대 국내 자동차 시장을 석권했고 뒤를 이어 80~90년대 대우차의 전성기에 부평 경제의 중핵은 자동차였다.  월급날이면 부평일대의 상점과 식당, 주점이 들썩였고 그 기간이 마이카로의 40년 여정이었다. 전성기 시절에 1만 5천여명의 노동자가 부평 공장에 출퇴근한 적이 있으니 협력업체 직원까지 계산하면 10만여명에 달했을 것이라 본다. 그럼 부평 자동차 산업의 역사는 얼마나 될까.     

  1937년에 부평에 도쿄자동차공업이 설립되고 1939년에는 자동차 부품공장이 들어섰으니 물경 80년의 역사가 넘는다. 1962년에 새나라자동차가 부평에 국내 최초로 현대식 완성차 생산 공장 설비를 갖추어 자동차 전문 인력들의 노하우가 쌓인 곳이 부평이다. 앞서 말한대로 부평2공장은 가동을 중지했으나 여기서 생산된 엔진 15개가 보관되어 있다. 그 중에서 르망, 레간자, 누비라, 라노스 4기는 대우차의 독자 모델로 그 가치가 높다.      

  1963년 정부가 자동차 공업 일원화 정책으로 새나라차의 후계자로 정책적으로 신진자동차를 밀어주면서 신진자동차가 자동차를 거의 독점 생산하게 되었다. 66년부터 8년간 부평에서 신진자동차의 삼총사인 코로나, 크라운, 퍼블리카가 생산되었다. 퍼블리카가 마이카 시대의 출발을 알렸다. 그러나 그건 광고용 카피였고 대중들에게 차를 소유하기란 불가능한 꿈이었다. 아직 국민소득이 미미했던 시절이라 여전히 차는 그림의 떡이었다. 부평의 자동차 산업의 역사는 마이카를 향한 욕망과 열망의 시대였다.      

  산업과 예술은 자동차산업에 이르러 하나가 되었다. 산업예술은 도시의 경쟁력이고 그 근원에는 지나온 산업유산에 대한 아카이브 작업을 필수적으로 요청한다. 신진자동차와 대우자동차는 폐업했지만 그 기술력은 자동차산업 발전의 밀알이 되었다. 기술자와 기술력은 일자리를 찾아 이동한다. 마이카로의 여정, 40년의 추억과 역사는 인천 부평의 소중한 산업유산이자 삶의 유산이 아니겠는가.                

작가의 이전글 우현 고유섭의 예술이해의 현대성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