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길을 잃은 기분이 들어.

02212026

by pigeon choi

언니에게, 언젠가부터 길을 잃은 기분이 들어. 혹은 내가 항상 무엇이 놓여있는지 생각하지 않은 채로 마냥 불안함에 앞으로만 달려갔던 것 아닌지 하는 생각을 해.


너무도 독립적이어야만 했던 삶. 그리고 그 외의 삶은 실은 누려본 적이 많이 없어서 어떻게 도움을 청하는지도 혹은 도움을 청했을 때 이를 어떻게 사애가 받아들이느냐는 내 몫이 더이상 아니라는 것도 정보가 없어서일까. 아직 서툴고 어색해.


한국을 떠난 지 벌써 5년에 접어드는 나의 지금의 모습을 보면서 어딘가로의 도약을 하기에는 현재 상황이 나쁘지 않고, 현재에 머무르기엔 즐거움이나 행복, 기대되는 미래는 없는 그 중간에 갇혀있는 기분이야. 갇혀있는 건지 중간단계에서 앞으로 향해가기 위한 디딤돌인지는 아직 모르겠어.


그러면서 겪는 연애에서도 실은 내가 백마탄 왕자님이 나를 구원해주길 바랐던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내 게으름이 스스로를 유토피아에 놓지 못할 수 있겠다는 불안에, 비현실적인 기대를 하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함. 이렇게 내 스스로에 대한 의구심을 품어본 적은 또 처음이라 그런지 많이 작아지는 것 같아.


카페에 앉아 가열차게 내리를 장대비에 속수무책 맞는 큰 잎들을 바라보고있어. 문득 한국어 표현으로 '맞다'는 너무 인간의 시선에서 잎의 상황을 해석한 것 같아. 사실 그들을 비를 '마시'는 거잖아. 소화하고, 흡수해서 내 것으로 만드는 거지 잎의 입장에서 봤을 땐.


지금 우리가 놓인 상황도 아마 같겠지?

쏟아지는 이 감정과 블루스와 도움은 안되는듯한 진퇴양난의 상황이라는 장대비가 우수수 쏟아져서 마치 내가 '맞고'있는 상황 같겠지만 이는 결국 나를 영양분으로서 성장하게 하고 새로운 싹을 틔우게 해주는, 그래서 실은 우리가 이 비를 양껏 흡수하고 마시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 그리고 그렇게 해석하는 것. 그랬을 때 이 잎에서 봉우리가 자라고 꽃이 피게 하려면 내가 이 비를 어떻게 영양분으로 돌려서 허투로 흘러나가지 않게 해야할까. 이 물줄기를 따라가는 'How'에 결국 핵심이 있는 것 같아.


시간은 유한하고 이미 30% 이상이 소비되었어. 남은 시간은 우리 조금 더 의도와 방향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자. 그랬을 때 내가 꿈꾸는 미래의 삶의 비전이 더 명확해질거라는 생각이 들어. 그러면 앞으로 남은 60%의 인생(10%는 못 움직인다고 가정했지)은 그 비전을 향한 발걸음, 하나하나의 발자취를 내가 따라 밟는 것일테니까.


언니와 도란도란 앉아서 얘기하던 때를 생각해. 그때 참 많이 힐링했어. 우리가 혼자가 아니구나 하는 생각. 이 넓디넓은 광활하고 고독한 우주 안에 내가 작은 실로 연결된 사람이 있구나 하는 안도감.


나는 또 다시 그런 시간들을 찾고싶어. 이 길을 잃은 기분이 썩 좋지 않거든.

Miss you x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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