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쩌다 보니 투자자 4. 까지는 결혼식을 올리기 전 예비부부일 때라 남자라고 칭했다.
* 어쩌다 보니 투자자 5. 부터는 결혼식을 올린 후 정식 부부인지라 남편이라 칭했다.
남편은 8년 동안 군인공제회에 적금 형식으로 돈을 모으고 있었고 복리로 이자를 받고 있었다.
적금에 들어간 원금을 담보로 대출을 받을 수 있었는데 절차가 간편했다. 온라인으로 클릭 몇 번 이면 대출이 실행됐고 사용 기간과 관계없이 중도상환 수수료가 없었다. 이율도 시중 은행보다 낮았다.
남편은 좋은 조건의 편리한 제도를 갖춘 시스템이 흡족했던지 공제회에서 대출을 실행했다. 그렇게 전세금 5천만 원을 마련했다.
대출 이자로 매달 상환해야 되는 금액이 남편이 그동안 납입한 원금에 대한 복리이자 보다 적었기 때문에 나 역시 좋은 방안이라 생각했다.
공제회는 은행이 아니기 때문에 예금자 보호법 적용을 못 받는다고 했다. 혹여나 원금을 잃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들긴 했지만 그럴 일은 없을 테니 걱정하지 말라는 남편의 말을 믿어 보기로 했다.
하지만 나는 빚을 극도로 싫어하는 친정 엄마를 보고 자랐다.
우리는 각자 번 돈을 각자 사용한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한 통장에 모으지도 않았다.
결혼 전부터 납입해 오던 보험료와 통신비, 공과금 등 고정 지출에 대해서 한 통장으로 모아 보려고 했는데 보험사마다 각 지점을 방문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각자 벌고 있는 상황이니 바꾸는 절차가 귀찮기도 해서 그냥 각자 알아서 지출하자고 했다.
정해진 용돈도 없었다. 결혼했다고 해서 용돈을 주고받는 입장을 취하고 싶지 않았다. 다 큰 성인이니 필요한 부분과 절약해야 될 부분에 대해서 알아서 절제된 소비를 하겠거니 하는 믿음과 배려가 있었다. 구속하고 싶지 않았고 구속받고 싶지 않았다.
전제 조건은 내세웠다. 서로의 급여를 비밀로 하거나 뒷 돈을 챙기는 일은 있으면 안 된다고 말이다. 모두 동의했다.
매달 상환해야 하는 원금과 이자는 178만 원이었다.
남편의 봉급에서 일정 금액이 공제회 적금으로 자동 이체되고 있었기에 상환액은 내 월급 통장에서 자동이체 처리했다.
매달 그렇게 큰돈을 지출해 본 적이 없는 나는 마치 빚쟁이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월급날이 지나면 통장이 두둑했던 때와는 달리 통장이 텅장이 되는 우울함을 맛보았다.
이래서 다들 그렇게 말하는 거구나.
"내 집 아니야. 은행한테 빌린 집이야."
쓴웃음을 짓게 됐다. 벌써 형광등이 깜빡이는 것처럼 앞이 캄캄했다가 밝았다가를 반복했다.
'언제 모아서 집을 사나. 20년이면 되려나. 30년은 걸리겠지.'
결혼 전에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신혼집을 마련할 때도 한 지붕 아래 같이 살게 되는 기쁨에만 몰두했지 대출금과 관련한 그 어떤 상상도 해보지 못한 부분이었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결혼을 약속하고 나서도 남편과 집에 대해서 얘기를 나눠 본 적이 없었다. 서로 다른 지역에 있었고 그 거리가 워낙 멀었다. 결혼을 하더라도 서로의 근무지 근처로 발령이 날지 안 날지도 모르는 상황이어서 여차하면 각자 살고 있는 자취방에서 그대로 결혼 생활을 유지해야 할 수 도 있는 상황이어서 그랬던 것 같다.
갑작스럽게 발령을 받으면서 정말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하루 만에 신혼집을 구하게 된 거였다. 사전에 집과 관련한 계획은 전혀 없는 상태였다.
뉴스에 나오는 청년 실업과 더불어 천정부지 오르는 집 값에 대한 뉴스를 멍하니 봤다.
한숨을 쉬는 날이 많아졌다. 현실에 부딪히니 버겁게 느껴졌다. 남편에게 대출 상환액이 부담스럽고 앞날이 막막하다고 솔직히 얘기했다.
남편은 대출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갖고 있는 나를 위해 똑같은 말을 여러 번 반복하며 대출의 장점을 이해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적금을 들고 나중에 목돈을 받느냐, 목돈을 미리 받고 적금으로 그걸 갚느냐의 차이야. 다만 전자는 이자를 받는 거고 후자는 이자를 갚는 거지만 결국은 둘 다 목돈을 만들어 내는 거야."
"그 이자가 아깝다는 거야."
"그렇지만 공제회에 그동안 넣은 원금에 대한 이자가 복리로 쌓이고 있고 그 이자가 우리가 지금 갚고 있는 대출 이자보다 높은 금액이야. 공제회를 해지하는 건 손해 보는 거야. 갚는 이자가 아깝다면서 왜 공제회를 해지하면 없어질 복리이자는 아깝게 생각하지 않는 거야? 잘 생각해봐."
듣고 나면 머리로는 이해가 됐다. 하지만 마음이 그렇지 않았다. 대출금만 생각하면 숨이 턱 까지 차오르는 갑갑함을 느껴야 했다. 수시로 남편에게 물었다.
"공제회에 갚은 돈이 얼마라고? 앞으로 얼마나 더 갚아야 한다고?"
뻔히 정해진 답을 묻고 또 물었다.
'그냥 적금 찾아서 전세금 내고 월급은 차곡차곡 모으고 싶다.'
'내 돈 맡겨놓고 남의 돈 빌려와서 매달 갚으려니 싫다.'
남편이 선택한 방법이 훨씬 이득이란 걸 머리로는 알았지만 마음은 그냥 그렇지가 않았다.
나는 대출을 극도로 싫어하는 부류라는 걸 처음 깨달았다.
종이 통장을 쓰지 않으면서 잔액이 찍힌 통장의 잉크가 마르는걸 못 본 지 오래였다. 지문만 갖다 대면 접속되는 인터넷뱅킹은 가상의 공간 같았다. 그때의 상환액은 연기처럼 사라져 버린 가상화폐 같았다.
나는 남편과 달리 결혼 전 정기적금이나 정기예금에 가입한 적이 없었다.
월급이 들어오면 고정비가 지출되고 남은 돈은 여유자금처럼 통장에 가지고 있었다. 그 금액이 천만 원 이상으로 넘어가더라도 굳이 적금 명목으로 따로 돈을 빼지 않았다.
자유로운 게 좋았다.
내 의지대로 모으는 게 편했다.
그래서 늘 통장은 한 개였다.
다시 자유로워지고 싶었다.
내 의지대로 모으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