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의 파노라마
빨치산의 딸로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지리산과 백아산에서 총을 들고 싸우던 어머니와 아버지, 그들의 전쟁은 패했고 부모는 광적인 반공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는 자본주의 사회 남한에서 빨갱이라는 멍에를 안고 살아간다. 이렇게만 보면 소설은 대단히 어둡고 심각한 이야기일 것 같다. 그러나 작가의 해학적이고 재기발랄한 문체는 고통스럽고 무거운 이야기를 유머로 승화시켜 종종 웃음을 터트리게 하는가 하면 빨갱이 가족을 둔 덕에 겪었던 남모를 사연이나 사람들 사이에 무심한 듯 오가는 따스한 정이 때로는 가슴 뭉클하게 한다.
“아버지가 죽었다.”로 시작하는 소설은 이후 부고를 알리고 장례를 치르는 삼일 간의 이야기이다. 그러나 그 안에는 아버지의 지나온 생애 전체와 살아생전에 아버지가 만들어온 인연이 총출동하는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인연들 하나하나는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있으며, 인연들의 조각조각을 맞춰보면 한국 현대사가 그 안에 오롯이 담긴다. 시간이 가면서 새로 나타나는 문상객들마다 조각의 빈자리를 계속 채워 나간다.
‘전직 빨치산’ 나의 아버지
아버지는 어떤 사람인가. 뼛속까지 사회주의자인 아버지는 여순 사건 이후 산에 들어가 백아산을 비롯한 여러 산을 누비며 총을 들고 싸우던 빨치산이었다. 어머니도 남부군 소속으로 지리산에서 활동했다. 아버지는 무너진 조직을 재건하기 위해 위장 자수를 했지만 그들의 전쟁은 패배했고 광적인 반공과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남한에서 살게 됐다. 하지만 아버지는 사회주의 이상을 버리지 않고 일상에서 이를 실천하기에 힘쓴다. 어려운 사람을 돕는 일에 앞장서고 평등한 세상이 올 거라는 믿음을 버리지 않는다. 남에게 맨날 속고 보증 서주다가 남의 빚을 뒤집어써도 ‘오죽하면 그러겠냐’ 주의자인 아버지는 원망할 줄 모른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동네일에 발 벗고 나서는 동네머슴 아버지, 아버지의 여러 일화는 그의 사람됨을 보여주지만 ‘나’는 턱없이 사람을 믿는 순진함, 솔직히 말하면 어리석음이 못마땅하다.
대학 강사인 딸은 그런 아버지에게 거리를 두고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진지하기만 한 아버지를 비판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심지어 우스꽝스럽게 생각한다. 진지한 아버지와 이를 우습게 생각하는 딸의 시선 사이의 어긋남이 아이러니와 해학을 만들어낸다. ‘평생 정색’하고 ‘진지일색’의 삶을 살아왔으며 일상생활에서도 사회주의를 실천하려고 하지만 노동에는 약한 아버지. 책으로 배운 농사는 번번이 망했고 사상과 관련된 것을 제외하곤 인내심도 없어 오래 앉아 일을 못한다. 사상과 실제의 어긋남은 딸의 냉정한 시선 앞에 여지없이 까발려지면서 웃음을 자아낸다.
어느 추운 겨울날 아버지는 갈 곳 없는 민중의 여인을 데려와 재우라고 한다. 두 칸짜리 집에서 딸과 함께 재우다가 벼룩이라도 옮길까 꺼리는 아내에게 세상없이 근엄한 표정으로 “자네, 지리산서 멋을 위해 목숨을 걸었능가? 민중을 위해서 아니었능가? 저이가 바로 목숨 걸고 지킬라 했던 민중이여, 민중!” 하는 장면에서는 웃음이 터지지 않을 수 없다.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는 정겹지만 민중을 들먹이는 아버지의 진지한 태도와 구수한 사투리의 어긋남, 언제적 지리산인가,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아버지의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주의 등이 아버지를 희극의 주인공으로 만든다. 아내를 나무라는 아버지의 눈빛을 “처형 직전의 독립운동가나 학살당한 동지의 시신을 목도한 혁명가라 해도 믿을 만큼 진지하다 못해 비장”하다고 과장하는 데서는 딸의 냉소가 느껴진다. 아버지의 말에 냉큼 꼬리를 내리고 정성껏 식사와 잠자리를 대접하는 어머니는 아버지보다는 현실적이지만 역시 빨치산 출신답다. 정성스런 밥상과 잠자리를 제공받은 여인은 서까래에 매달아 놓은 마늘 반접을 갖고 가는 것으로 보답했다. 아버지는 ‘오죽하면’ 그러겠냐며 무한한 아량을 보여주고 나는 한 달 가까이 벼룩에 시달렸다. 이처럼 사회주의 이상을 현실에 구현하려는 ‘진지일색’의 아버지의 삶에 동의하지 않는 딸의 냉정한 시선이 유머와 웃음을 자아낸다. 곳곳에서 피식피식 웃게 만드는 해학적인 문체는 생생한 구어체의 구수한 남도 사투리와 함께 전직 빨치산이었던 아버지의 힘겨웠던 삶을 전혀 무겁지 않게 다루면서 소설의 재미를 더한다.
아버지가 만들어온 인연들
빨갱이 아버지 때문에 음으로 양으로 피해를 본 일가친척들은 물론이고 나는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아버지와의 인연으로 줄줄이 문상 온다. 빨치산 동료들, 이십 년 가까운 감옥살이에서 만난 인연들, 출옥 후에 진보정당이나 사회 운동하는 사람들과 맺어진 인연들, 하다못해 아버지의 담배친구라는 다문화 가정의 열일곱 살짜리 소녀까지 등장한다. 아버지가 만들어온 인연의 끝은 어디인가.
새로운 조문객이 나타날 때마다 그들의 기억을 통해 내가 몰랐던 아버지의 새로운 면모가 나타난다. 아버지와 거리를 두면서 사회주의자 아닌 아버지는 잘 모르고 있던 ‘나’는 새롭게 발견한 아버지의 면면을 모자이크처럼 맞춰간다.
감옥에서 만난 조폭 두목을 통해 깡패였던 지인의 아들을 빼내 건실하게 살게 해준 아버지, 베트남 엄마와 폭력적인 아버지 밑에서 학교를 중퇴한 열일곱 살 노랑머리 여자아이하고는 담배친구란다. 팔십 넘은 아버지가 반항기 가득한 노랑머리 여자애와 골목에서 담배를 피우며 대화하는 모습은 우습기도 하지만 아버지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아이는 검정고시와 미용사 자격증을 준비 중이다.
빨치산 시절 아버지가 살려줬다는 사람도 문상 온다. 보급투쟁 나갔다가 다락에 숨은 순경을 발견했지만 순경을 그만둔다는 조건으로 살려준 것이다. 당시에 순경이라면 빨치산과 총을 맞대고 싸우던 사람이다. 하지만 정말로 순경을 그만두고 아버지를 찾아와 같이 하겠다고 하는 사람을 아버지는 호통쳐서 돌려보낸다. 아버지가 감옥에서 나온 후 찾아온 그 사람이 그때 왜 돌려보냈냐고 묻자 질 게 뻔한 전쟁에 왜 당신을 끼우겠냐고, 순경을 그만 둔 것으로 사람의 도리는 다 했으니 됐다고 했다는 것이다. 아버지의 면모를 잘 나타내는 일화이다. “질 게 뻔한 싸움을 하는 이십대의 아버지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질 게 뻔한 싸움’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옳다고 믿기에 목숨을 던지는 결기, ‘숭고함’이라는 말은 이런 때 필요한 말이다.
아버지가 평생 살아온 세월이 조문객의 입을 통해 펼쳐진다. 국민학교 동창들, 청춘을 함께 한 빨치산 어른들, 감옥에서 출소한 아버지가 이 세상과 어우러지면 만든 인연인 곡성 가톨릭 농민회, 구례 민노당원들도 찾아온다.
아버지를 유난히 아끼고 사랑했던 은사인 소선생은 ‘나’의 부모를 중매했고 세상을 떠난 후엔 아들까지 대를 이어가며 아버지 어머니를 보살핀다. “아버지는 누군가를 살리기도 했지만 누군가의 덕으로 살기도 했다.”
다양한 사연을 가진 문상객들의 기억 속 아버지를 만나며 죽은 아버지의 모습이 점차 뚜렷해지기 시작한다. “살아서의 모든 순간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자신의 부고를 듣고는 헤쳐 모여를 하듯 모여들어 거대하고도 뚜렷한 존재를 드러내는 것이었다.” 아버지의 죽음은 새롭게 ‘나’의 아버지를 발견해 나가는 과정이었다.
한국 현대사의 파노라마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우리네 아픈 현대사의 생생한 기록이다. 신념과 신념이 부딪치면서 역사는 거대한 파열음을 내면서 찢어졌고, 그 소용돌이에 끌려들어간 개인들의 삶도 산산이 부서졌다.
집안에 빨갱이가 있으면 가족은 물론 가까운 일가친척까지 모두 피해를 입는다. 지금은 법적으로 사라졌지만 얼마 전까지도 ‘연좌제’라는 것이 작동했기 때문이다. ‘연좌제’란 ‘범죄자의 친족이나 특수 관계에 있는 사람들에게 연대책임을 물어 처벌하는 제도’로서 빨갱이는 물론 군사독재시절 시위 전력자의 가족까지 옭아매던 굴레였다.
‘빨치산의 딸’인 ‘나’는 결혼식 하루 전날 파혼 당했다. 빨치산 출신 장인이 아들의 앞날을 막을 것을 우려해 사돈 쪽에서 파혼한 것이다. 공부 잘 하던 큰집 오빠는 육군사관학교를 포기해야 했다.
가장 가슴 아픈 사연은 아버지와 평생 원수가 되어 말도 섞지 않는 작은 아버지의 사연이다. 여순 사건 며칠 후 총을 들고 교실에 나타난 군인들이 아버지를 찾을 때 모두 조용한 가운데 작은 아버지가 손을 번쩍 들고 고상욱은 우리 형이라고, 면당위원장이라고 자랑했다. 처음 이야기를 한다며 사정을 털어놓던 큰집 언니는 “나는 속이 타들어가는디 막냉이 삼촌은 속도 없이 미주알고주알 오만 것을 다 일러바치지 않겄냐.”하고 실토했다. 군인들은 아홉 살 작은 아버지 등에 총을 겨누고 마을로 내려가 빈집들마다 불을 놓고 혼자 남아 있던 할아버지에게 총을 놓았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피신했는데 마을 구장이며 아버지와 달리 우파인 한민당 지지자였던 할아버지만 말을 듣지 않고 남아있다가 변을 당한 것이다. 군인들이 물러간 후 화염에 쌓인 마을로 내려온 사람들은 할아버지의 주검 곁에서 혼절한 작은아버지를 발견했다.
“그때게 … 막냉이삼춘이 손만 번쩍 안 들었으면 할배가 안 죽었을랑가 … ” 눈만 뜨면 나불나불 쉴 새 없이 입을 놀려 촉새라는 별명이 붙었던 작은 아버지가 그때부터 입을 딱 닫아버렸다는 것이다. 잘난 형 자랑을 했을 뿐인데, 그것이 자기 아버지의 죽음으로 돌아올 줄 어린 그가 어찌 알았겠는가. ‘나’는 아홉 살 작은아버지가 겪었던 공포와 죄책감이, 독한 소주에 취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던 사정이 너무 애처로웠다.
이런 사정들은 아버지만이 아니라 당시 산에 들어가 투쟁했던 가족들 누구나 겪었던 일이다. 아버지나 형, 누나가 토벌대에 의해 처형당한 사람도 있었고 남은 가족들은 풍비박산이 되거나 빨치산 가족이라는 멍에를 평생 짊어지고 살아야 했다. 아버지도 집안에서는 “바른 말하는 잘나고 똑똑한 양반, 잘나서 빨갱이짓 하다가 집안 말아먹은 양반”이며 고씨 집안의 자랑인 동시에 고씨 집안 몰락의 원흉이었다.
만석꾼 집안의 장손으로 동경제대 법학과를 나온 사회주의자가 아버지를 찾아온 적이 있다. 그는 사십 년 가까이 옥살이를 한 비전향장기수로 1989년에 석방된 사람이다. 자기 때문에 집안이 풍비박산 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긴 옥살이에도 양복 차림이 멋스럽고 배우 같은 잘 생긴 얼굴, 여자에게 얹혀산다는 그에게 아버지는 노동이라도 하라고 권한다. 그러나 사흘 노동하고 석 달 입원했다며 “나는 정말 노동이 싫어... 노동이 무서워...” 하는 고백에 아버지는 폭소를 터트린다. 부르주아 출신 사회주의자의 솔직한 고백은 나약한 인간의 한계를 보여주지만 우리 대부분은 그 범주를 벗어나기 어렵기 때문에 공감과 함께 서글픔을 자아낸다.
열셋에 아버지를 찾아 입산했다는 소년 빨치산, 산에서 부모형제 다 잃고 열다섯에 붙잡혀 비전향장기수로 37년 옥살이를 했다고 한다. 서울과 부산, 광주 등지에서 찾아온 스무 명 남짓한 전직 빨치산들의 문상도 빼놓을 수 없다,
아버지의 국민학교 동창이자 절친인 박선생은 평생 군인으로, 교련선생으로 살면서 조선일보만 보는 사람이다. 아버지와는 완전히 대척점에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아버지는 사람은 그 친구가 젤 낫다고 말한다. 그의 과거사는 한국 현대사의 절절한 아픔의 한 조각이다. 형과 누나 둘이 모두 지리산에서 죽어 시신도 찾지 못한 박선생, 자신은 서울서 고등학교 다니다가 학도병으로 끌려와 하필 지리산에 파견돼 친구와 형, 누나를 향해 총구를 겨누어야 했던 얄궂은 운명, 치열한 대공세에서 살아남은 아버지가 이듬해 봄에 벽소령 인근에서 발견한 미군 씨레이션 박스에는 박선생의 편지가 있었다. 자신이 하늘을 향해 총을 쏴도 떨어지는 내 총알에 형과 누나들, 친구가 맞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렸다는 박선생. 자기 손으로 형제를 죽였을지도 모른다는 자책감을 안고 살아가는 박선생이 나중에 군에 뿌리를 박고 전역 후에는 교련선생으로 살면서 평생 조선일보를 구독한 것은 빨치산 가족을 둔 사람의 자기방어가 아니었을까.
아버지와 함께 산에 들어갔다가 총에 맞아 죽은 동지들의 아들과 동생들은 혼자 살아남은 아버지를 원망하기도 하고 아버지 혹은 형의 죽음을 알려준 것에 감사하기도 한다.
이 모두가 한국 현대사의 질곡에 짓눌린 사람들이 겪어온 일이다. 아픈 현대사의 가지가지 장면들이 펼쳐지는 아버지의 장례식장은 해방 후 우리네 역사의 축소판이다.
‘나’는 조문객들의 기억 속에 살아있는 아버지를 만나면서 어린 날 아버지가 감옥에 들어가는 바람에 빼앗겨버린 아버지와의 다정했던 시간들, 다시는 회복할 수 없었던 친밀감을 되찾게 되고 아버지와 화해가 이루어진다. 아버지가 다녔던 구례 곳곳에 유골을 뿌리면서 아버지는 진정한 나의 아버지가 된다. “빨치산도, 빨갱이도 아닌 나의 아버지”가…
아버지는 죽음을 통해 평생 자신을 옭아매던 빨갱이라는 멍에, 가족과 일가친척들의 삶에 걸림돌이 되었던 빨갱이라는 주홍글씨에서 해방되었다. 나도 진정한 나의 아버지를 발견함으로써 ‘빨치산의 딸’이라는 멍에에서 해방된다.
<아버지의 해방일지>가 보여주는 현대사의 파열음은 이제 과거사로 끝난 것일까. 이념의 충돌과 갈등은 이제 치유됐는가. 지금도 우리를 괴롭히고 있는 분열과 혐오는 이 시절에 뿌리를 두고 있다. 신념이 다르다고 상대방을 송두리째 말살하려고 했던 시절, 지금은 그것이 상대를 악마화하고 혐오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신념이 다르면 대화조차 불가능하고 할 수만 있다면 지금도 상대를 말살하려고 한다. 소설 속의 ‘나’가 아버지를 발견해나가듯 나와 생각이 다른 이들을 이해하려고 하는 최소한의 노력은 필요하지 않을까.
정지아 작가의 자전적 소설인 <아버지의 해방일지>에서 화자의 이름은 고아리, 부모는 아버지가 빨치산 활동을 하던 백아산의 ‘아’와 남부군이었던 어머니가 활동하던 지리산의 ‘리’를 따서 ‘아리’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했다. 실제로 정지아 작가도 빨치산의 딸이었으며 이름도 지리산의 ‘지’와 백아산의 ‘아’를 따서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소설의 화자 고아리와 작가 정지아가 겹쳐진다. 소설의 어디까지가 사실인가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