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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프그래퍼 Jan 17. 2024

어느 날 갑자기 아빠에게 뇌출혈이 왔다

쌓여 있던 감정을 소화하기 위해 쓰는 글 (1)

9월의 화창한 일요일이었다. 충남 공주에 사는 우리 부부는 전날엔 집에 놀러 온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일요일 아침에는 일찍부터 시어머니 댁으로 향했다. 남편 외가 식구들과의 모임이 서울에서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시어머니, 남편, 나 이렇게 셋이서 함께 차를 타고 약속 장소로 이동하던 중에 나의 남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바쁜 주말의 한가운데, 반가운 동생의 이름에 "응, 왜?" 하고 경쾌하게 전화를 받았다.


그렇게 갑작스럽게 나의 아버지가 뇌출혈로 병원에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동생은 조심스러운 말투로 이야기를 꺼냈다.


"누나, 통화할 수 있어? 지금 말해서 미안한데... 사실 어젯밤에 119 불러서 아빠 응급실 갔어. 뇌출혈이래. 정신이 없어서 미리 말을 못 했어. 지금 아빠는 중환자실에 있고 나는 새벽에 집에 와서 자다가 이제 일어났는데, 엄마가 어른들 단톡방에 얘기했는지 사촌 형들한테 부재중 전화가 와있더라고. 누나한테 말도 안 하고 다른 사람한테 먼저 전화하는 건 순서가 아닌 것 같아서 누나한테 전화한 거야."


순간적으로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일단 아빠에게 너무 큰일이 생겼다는 사실에 충격이 컸다. 내가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동안 그런 일이 있었다니,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마음 편히 잠들었다니! 그다음으로는 동생이 걱정됐다. 갑작스럽게 닥친 일을 혼자 처리하느라 얼마나 진땀을 뺐을지, 하룻밤 사이였지만 혼자 일을 떠안느라고 얼마나 어깨가 무거웠을지... 그래서 나의 충격은 둘째치고 일단 동생에게 힘이 되어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동생에게 모든 짐을 떠맡길 수는 없다. 얘가 나라도 의지하게 해야겠다.' 이런 생각이 저절로 떠올랐다. 만약 내가 외동이었다면 아빠의 뇌출혈 소식에 어찌할 줄 모르고 그냥 눈물부터 났을 수도 있지만, 동생의 존재로 인해 오히려 의연해졌다.


그 다음에는 함께 차에 타고 있는 시어머니와 남편이 신경 쓰였다. 가족 모임에 가는 중이었기 때문에 일단은 너무 심각한 모습을 보여서 분위기를 망치는 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최대한 차분한 톤을 유지하며 말했다.


"어, 알려줘서 고마워. 네가 고생했겠다. 아빠는 지금 상태가 어때? 면회는 갈 수 있어?"


이어지는 동생의 말은 더 충격적이었다. 일단 상태를 지켜봐야 하는데 부종이 생기면 수술을 해야 하고, 수술을 하게 되면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수도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중환자실에 있는 동안에는 가족들이 방문할 수도 없다고 했다.


그때 내 마음은 온통 아빠와 나의 친정 식구들에게 쏠려 있었다. 하지만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일단은 그다음 소식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마음은 당장 열일 제쳐두고 엄마와 동생에게 가고 싶었지만, 친정 식구들에게 가봤자 할 수 있는 일도 없으니 예정된 약속을 취소하고 바로 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들은 이야기는 위의 내용이 전부였고, 난 아빠가 어떤 상태인지 잘 몰랐다. 나에게 있는 정보는 너무나 제한적이었다. 그래서 가능하면 좋게 생각하고 싶었다. 아빠에게 부종이 안 생긴다면, 그래서 중환자실에서 나오고 나면 금방 퇴원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그래서 괜히 오랜만에 보는 다른 식구들 걱정하게 하지 말고 일단 이날 약속만 마치고 나서 움직이자고 생각했다.


마침 그다음주의 중간부터 추석 연휴였다. 어차피 추석 연휴 내내 여러 집을 다녀야 해서 짐을 싸서 올라와야 하니까, 아예 가족모임 마치고 공주로 돌아간 뒤 넉넉히 일주일 치 짐을 싸 들고 월요일 아침 일찍 친정으로 출발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동생과 전화를 끊고 나서, 같은 차에 타고 있던 시어머니와 남편에게 소식을 알렸다. 아빠가 뇌출혈로 중환자실에 있다고. 시어머니에게는 간략히 말씀드리고, 남편에게는 중간에 둘만 있을 때 좀 더 상세한 이야기를 전했다. 그리고 나머지 남편의 외가 식구들에게는 아무 티도 내지 않고 몇 시간을 함께 보냈다. 그 와중에 내 머릿속에는 온통 아빠 생각뿐이었다.


그날 충남 공주의 집으로 돌아가서 나는 계획대로 일주일 치의 짐 가방을 쌌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바로 친정으로 올라왔다. 일주일 뒤 추석 연휴가 끝나면 공주로 돌아올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그렇게 월요일 아침 공주를 떠난 뒤, 난 한 달 뒤에야 공주 집에 다시 올 수 있었다.


1년간 주말부부 생활을 하다가 충남 공주로 이사 가서 다시 함께 생활한지 고작 한 달 되었을 때 아빠가 응급실에 실려갔고, 그렇게 우리의 주말부부 생활이 또 한번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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