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코멘터리: 미디어, 사람, 인생에 관한 온갖 잡다한 코멘터리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머리맡에서 핸드폰을 꺼내들고 시간을 확인하면서 카톡 메시지를 보낸다.
간밤부터 내가 아직 확인하지 못한 소식이 있는지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을 뒤적거리고, 나갈 준비를 하는 동안 거실에 틀어둔 TV를 통해 뉴스나 갖가지 소소한 세상사를 눈과 귀로 가볍게 흘린다.
이렇게 나는 보통 '하루의 시작'을 온갖 미디어와 함께 한다. 물론 '하루의 마무리'까지!
요즘은 디지털 미디어, 1인 미디어라는 단어를 많이 쓴다.
내가 조금 더 어렸을 때부터 되짚어본다면 멀티 미디어, 시청각 미디어, 대중 미디어(매체), 온디맨드 미디어라는 단어도 심심치않게 들렸다.
사람들이 미디어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떠올보면 뭐가 있을까?
요즘의 최신 문물 생각하면 인공지능 스피커, AR, VR, 핸드폰(스마트폰), 컴퓨터(데스크탑, 노트북, 태블릿), 인터넷, 페이스북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 넷플릭스 등 각종 플랫폼부터 시작하여 점점 거슬러 올라간다. TV, 영화(영화관, 비디오, DVD), TV, 라디오, 전화, 잡지, 신문, 책, 삐삐?
미디어의 핵심인 콘텐츠도 빼놓을 수 없다.
글, 이미지, 음악(소리), 영상 콘텐츠 그리고 이중에서 둘 이상이 포함 된 것을 멀티 미디어라고 하던가.
이처럼 미디어 하면 떠오르는 것은 수없이 많고, 그 속성이나 종류도 다양하다.
나는 눈 뜨면서부터 잠들 때까지 하루종일 미디어를 사용한다. 그런데 위에 나열한 온갖 잡다한 것들이 전부 다 미디어일까? 그리고 미디어는 이게 전부일까?
도대체 미디어란 무엇인가
미디어에 대한 인식을 확장시킨 한 전공 수업이 있다.
그 수업을 듣기 전까지 나에게 ‘미디어’란 오직 대중미디어(TV, 영화, 신문, 잡지, 책)와 디지털미디어(컴퓨터, 인터넷, 핸드폰) 뿐이었다. 그리고 이는 내 머릿속에서 단순히 ‘올드 미디어’와 ‘뉴 미디어’ 또는 ‘아날로그 미디어’와 ‘디지털 미디어’로 이분법적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심지어 전공 수업 중 하나인 ‘뉴미디어’ 시간에서는 '뉴미디어'라는 이름으로 케이블TV부터 시작해서 위성TV를 다루고 IPTV로 끝났다.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막 사용하기 시작한 때였다. ‘뉴미디어’라는 수업 이름이 무색했다.
그러던 중 미디어에 대한 내 인식의 세계에 천지개벽 같은 깨달음을 준 수업이 있었다.
수업 이름은 꽤 고리타분하게 느껴진다. ‘정보사회와 사회변동’. 학생들에게 인기 있는 수업도 아니었고, 단지 전공수업 학점을 채우기 위해 선택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 수업은 나에게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있다.
그 수업은 제 3의물결로 유명한 앨빈토플러와 같은 미래학자에서부터 시작하지만, 여기서 다루는 미디어는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고대 동굴벽화까지 다다른다. 이집트 파피루스, 종이, 인쇄기술, 전화... 물론 처음 들어본 내용은 아니었지만
그 모든 것들을 ‘미디어의 범주’에 넣어 생각하게 된 것은 처음이었다.
아주 오래전 사람들은 자신들이 거주하는 동굴 벽에 그림을 그려 무용담이나 노하우를 공유했다. 그리고 그 벽화는 머나먼 미래 사람들에게 그들의 생활양식을 보여주는 도구가 되었다. 동시대 사람들과의 경험 공유, 그리고 시대를 뛰어넘는 의미 전달.
동굴벽화 또한 명백한 미디어였던 것이다.
누구는 ‘마셜 맥루한’, 누구는 ‘마셜 매클루언’이라고 부르는 이 사람은 미디어를 공부한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들어봤을 이 유명한 문장을 쓴 사람이다. 미디어는 메시지다.
읽은 사람보다 인용한 사람이 더 많다는 말처럼, 나도 처음에는 이 사람의 책을 직접 읽기 전에 ‘미디어는 메시지다’라는 문장 자체만 접했었다. 그리고 나름대로 그 의미를 ‘미디어란 메시지를 전하는 모든 것’이라고 혼자 해석 했었다.
그리고 몇년 후에 이 사람의 ‘미디어의 이해, 인간의 확장’이라는 책을 읽고, 왜 인용한 사람보다 읽은 사람이 더 적은지 알게 되었다. 나같은 평범한 사람이 이해하고 공감하기에는 쉽지 않았다.
마셜 매클루언에게는 미디어 그 자체가 메시지다.
아직 전체 내용 중에 반 밖에 읽지 않았지만, 이 책에서는 자동차와 비행기 그리고 전기까지 미디어로 정의하고 있다. 그리고 그 미디어의 발명과 존재 자체가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메시지라고 이야기 한다. 자동차와 비행기는 인간을 실어나르면서 지식을 확장하고 전파시킨다. 그리고 전기는 전기가 없었던 시절엔 상상할 수 없었던 방식으로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하고 인간의 생활양식 자체를 바꾸었다.
지금의 나에게 전기는 공기나 물처럼 당연하고 일상적인 것이지만, 이 시절 이 사람에게 전기란 세상에 전에 없던 큰 혁명을 불러온 강렬한 존재였던 것이다. 어쩌면 요즘 사람들이 인공지능 기술에 열광하거나 두려워하는 것을, 이 기술들이 완전히 상용화되고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미래에서 본다면 내가 마셜 매클루언을 보면서 느끼는 것과 비슷한 느낌을 받을지도 모르겠다.
자동차나 비행기, 전기까지 미디어라는 그의 논리를 이해는 하겠다만 아직 나는 그 의견에 공감하지는 못한다. 아직까지 자동차나 비행기를 미디어라고 여기지는 못하겠다. 그가 생각하는 미디어와 내가 생각하는 미디어는 다르다. 그 시대가 열광하던 미디어와 지금 시대에 열광하는 미디어는 다르다. 다만 이 책은 '미디어의 본질’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더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끊임없이 변하는 와중에도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미디어라는 단어를 '어떤 작용을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으며 매개체나 '매체'로 순화한다고 기록한다. 이처럼 미디어의 사전적 정의는 무언가를 전달하는 '매개체'다.
내가 지금 이 시점에 내리는 미디어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사람]과 [사람의 메시지]를 시간 또는 공간을 넘어 [연결]되게 하는 모든 매개체
자기 전 침대에 누워 낄낄 웃게 만드는 유명 유튜버의 영상도, 미술관에서 만나는 오래 전 세상을 떠난 어느 화가의 예술 작품도, 교과서에 실린 주옥 같은 시의 한 구절도 모두 그 사람의 메시지를 담아서 나에게 전하는 미디어다.
10년 전 내가 쓴 일기는 지금 또는 더 먼 미래의 내가 볼 수 있는 시간을 넘는 메시지이고, 월드컵 생중계는 공간을 넘어 전세계에서 동시에 같은 장면을 보고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게 한다.
나에게 미디어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멀리 떨어져있어도 안부를 주고받을 수 있는 카톡 메시지
매일 같이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들려주는 뉴스
마음에 드는 장면을 언제든 다시 볼 수 있도록 찍어둔 사진과 영상
내 생각을 기록해둔, 남에게 보여주지 않을, 나중에 내 과거를 돌이켜 볼 일기
점심 먹고 동료와 한판씩 하며 스트레스를 푸는 게임
어릴 적부터 내 세계를 제한 없이 확장시켜준 도구
온갖 다양하고 새로운 사람들의 이야기와 문화를 접할 수 있는 호기심의 원천 등등
내 삶에서 수없이 많은 역할을 하고 있다.
다른 누군가에게 미디어는...
장애를 극복하고 생각을 표현할 수 있게 해주는 고마운 도구일 수도 있고,
보이스피싱으로 사기를 쳐서 남의 돈을 빼앗는 범죄 도구일 수도 있고,
덕질을 풍요롭게 해주는 보물 창고일 수도 있고,
새로운 미디어 기술을 발명하고 적용하는 일에 직접 뛰어드는 꿈일 수도 있다.
무수히 많은 다른 모습으로 존재하면서도 인간의 메시지를 전한다는 변하지 않는 고유한 속성을 지닌 미디어.
끊임없이 변하지만 결코 변하지 않는 것.
나는 이런 미디어를 좋아한다.
당신에게 미디어란, 당신의 삶에서 미디어란 무엇인가?
인생은 상상도 못했던 일들의 연속, 오늘을 즐겁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