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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프그래퍼 Jul 25. 2018

100세 시대, 나이듦에 대해 더 알고 싶다

다 코멘터리: 미디어, 사람, 인생에 관한 온갖 잡다한 코멘터리

얼마 전 스물아홉 생일을 맞았다

가수 김광석이 노래했던 서른 즈음에처럼, 어느덧 그런 나이가 됐다.  


사람은 40대 전후부터 노화가 시작된다고 하지만 이미 나와 주변 친구들의 눈가에 하나둘 잔주름이 생기기 시작한지 오래다. 더이상 신체의 성장은 없을 것이다. 앞으로 나의 신체는 늙어갈 일만 남았다. 


문득 생각이 들었다. 

100세 시대에 스물아홉, 이제 겨우 삼분의 일 지점에도 못 미쳤다.  

살아온 날보다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두배나 많다.  

 

태어난 이후 10대까지는 줄곧 쑥쑥 자라나는 시기였고, 20대에는 새로운 세상들과 마주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어느날 정신을 차려보니 20대의 끝자락.  


Photo by Leon Biss on Unsplash


별일 없다면 앞으로 내가 살아온 시간보다 훨씬 긴 세월을 나이들며 살아가게 될 텐데, 불현듯 내가 나이듦에 대해서 너무나도 모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상한 일이다.  

TV나 페이스북의 푸드 콘텐츠나, 골목의 어느 맛집 앞 입간판에서 와인, 돼지고기 등의 Aging에 대해 종종 접해왔다. 하지만 그동안 내 관심 밖이어서일까, 오히려 인간의 Aging에 대해서는 특별히 생각해 본적도, 제대로 다루는 것을 본 적도 별로 없다.  


Photo by L E on Unsplash

 

그래서 ‘나이듦’에 대해 지금까지 보고 듣고 생각해온 짧은 단상들을 의식의 흐름대로 써보려고 한다. 아직 잘 모르는 주제이기에 피상적이고 추상적인 이야기밖에 할 수 없겠지만, 스물아홉인 오늘의 나와 내년에 서른이 된 나는 또 다르게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지금의 생각을 적어두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 싶다. 



왜 나이듦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을까?


생각해보면 자라면서 나는 20대에 대한 막연한 환상과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교복을 마지막으로 입었던 시점까지 인생 최고 핫 미디어는 단연 TV였는데, 남자셋 여자셋이나 하이킥 시리즈 등 각종 시트콤에서 등장하는 20대와 대학생의 모습이 얼마나 좋아보였는지 모른다. 


Photo by Simon Maage on Unsplash


20대의 사랑, 우정, 도전, 실패, 심지어 무모하고 바보스러운 모습들까지도 각종 미디어에서 앞다퉈가며 아름답게 그리곤 했다. 미디어는 세상을 비추는 창이라고 하던가. 나는 그런 20대의 모습을 간접적으로 접하면서 설렘에 부풀어 있었다. 고3 수험생 시절에는 점심시간마다 대학생이 되면 우리 클럽에서 만나자느니, 미래의 남자친구들과 더블 데이트를 하자느니 친구들과 서로의 로망을 이야기하곤 했다. 


그런데 왜 30대, 40대, 50대의 삶에 대해선 특별히 떠오르는 게 없을까? 


미디어는 '청춘이 아닌 사람들'을 멋없게 비춘다


Photo by Bethany Legg on Unsplash



30대를 눈 앞에 두고서, 나는 10대에 20대의 이미지를 떠올렸던 것처럼 30대 그리고 그 이후의 삶을 머릿속에 그려보고자 했다. 이상하게도 아무 이미지도 그려지지  않았다. 엄밀히 말하자면 떠오르는 것들 중에 내가 기대하고 꿈꾸고 싶은 모습이 없었다. TV 드라마 속에서 청춘이 아닌 사람들은 주인공의 부모이거나, 직장 상사나 선배이거나, 금수저로 태어나 말도 안 되게 일찍 본부장이 되거나, 불륜과 배신을 일삼거나, 갈등의 원흉이거나, 초라하거나, 절절하거나, 조연으로서만 등장하거나, 특정 연령대가 아닌 어떤 직업군을 대표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어쩌다 한번 매력적인 등장인물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캐릭터 하나의 특징일 뿐이지 특정 세대의 공통점으로 그려지지는 않는다. 


인기 있는 리얼리티 예능에 출연하는 중년 이상의 연예인들도 결코 그 나이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는 법이 없다. 보통 사람보다 더 많은 돈을 벌며 자기 관리에 더 많은 투자를 하는 그들은 50~60대의 나이에도 20대처럼 팽팽한 피부와 외모를 유지한다. 심지어 라이프스타일까지도 요즘 젊은 사람들과 닮았다. 그들의 젊은 시절의 생활 방식을 유지하는 게 아니라 요즘 젊은 사람들을 따라가는 모습이다.




와인과 고기의 Aging은 숙성, 인간의 Aging은? 


젊음은 아름답고 나이듦은 추한가


TV가 아닌 다른 미디어로 눈을 돌려보자. 

예를들면 수많은 사람들이 시시각각 저마다의 콘텐츠를 쏟아내는 디지털 미디어. 

이곳에서 취학 아동부터 10대까지는 급식충, 미혼도 아니고 젊은이도 아닌 사람들은 맘충, 아재, 개저씨, 꼰대, 할줌마, 할저씨 등으로 불린다. 디지털 미디어 속에서 부정적인 명칭으로 불리지 않는 유일한 세대는 미혼의 젊은이, 즉 청춘뿐이다. 그나마 이들을 부정적으로 부르는 명칭은 '요즘 젊은 것들' 정도? 위에 언급한 다른 명칭들에 비하면 양반이다. 


Photo by Cristian Newman on Unsplash


물론 젊음을 아름다운 것으로, 나이듦을 추한 것으로 표현하고 생각하는 것은 비단 지금의 우리나라만이 아니다. 고전 파우스트를 보면 늙은 교수인 주인공이 악마에게 영혼을 팔고 젊은 신체를 손에 넣지 않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우리나라 미디어와 사람들이 '나이듦'에 대해 갖는 태도는 매우 안타깝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젊음은 아릅답게, 늙음을 추하게 여겨온 경향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나이든 사람에 대한 존경과 존중은 남아있었다. 그러나 개저씨, 맘충이라는 단어를 심심치않게 쓰는 요즘 과연 나이든 사람에 대한 존경과 존중이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아니, 존경과 존중은 둘째치고 보통의 사람 취급은 하는 것일까? 


꼰대를 국어사전에 검색하면 '늙은이'를 이르는 말이라고 나온다. 젊은 사람들은 자신만의 기준에 꽉 막혀서 타인에게도 그것을 강요하는 나이든 사람을 꼰대라고 부른다. 하지만 나와 다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싸잡아 비하하는 태도가 과연 그들이 꼰대라고 부르는 사람들보다 낫다고 할 수 있을까? 


요즘 나이든 사람들의 실제 행동과 사고방식이 '극혐'이기 때문에 저런 명칭을 쓰는 것이 온당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와 다른 사고방식을 강요한다는 이유로,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내가 이해하기 힘들다는 이유로 특정 세대를 싸잡아 비난하거나 비하하면서도, 그에 대한 아무 문제의식이 없는 것은 참 부끄럽고 슬픈 일이다. 


꼰대, 아재 등으로 나이든 사람을 비난하는 말들은 너무나 일상적인 언어로 사용되고, 모바일 콘텐츠부터 TV 콘텐츠까지 꼰대를 비롯한 나이든 사람들을 희화하거나 유형화해서 다룬다. 그런 명칭으로 불리는 사람들 역시 그 언어의 프레임에 갇혀서 스스로 꼰대나 아재가 되지 않기 위해 애를 쓴다. 



Photo by Samanta Barba Alcalá on Unsplash




이렇게 나이듦에 대해 부정적인 프레임을 씌우고, 나이듦을 감추거나 외면하는 모습이 만연하다보니 정작 나이듦 그 자체에 대해서는 제대로 모르게 된 게 아닐까. 


사람들은 평생 20대를 기다리거나, 즐기거나, 그리워하며 사는가


분명히 사람은 태어나서 어린이가 되었다가 청소년이 되었다가 성인이 되고 청춘을 보낸 후에도 계속해서 삶을 살아간다. 나이가 든다고 해서 갑자기 다른 사람이 되는 게 아니다. 나는 지금 20대이지만, 30대가 될 것이고, 나의 취향과 가치관과 관심사를 비롯한 '나'라는 사람의 정체성을 유지한 채 40대, 50대 그리고 100세가 될 것이다. 


Photo by Cristian Newman on Unsplash


그래서 나는 나의 미래가 될 30대, 40대, 50대 그리고 그 이후의 세대가 멋없게 비춰지는 것이 안타깝다.

제대로 심도있게 다뤄지지 않는 것도 안타깝다. 관심 밖의 대상이 되는 게 안타깝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나이를 먹는다. 그렇다면 사람에게 '나이든다'라는 표현을 쓰는 때는 언제부터일까? 아마도 신체가 더이상 성장하지 않고 노화가 시작되는 때부터가 아닐까. 나는 진짜 성장은 그때부터라고 생각한다. 나의 에너지를 신체의 성장에 쏟아붓던 시간이 지나고나면 비로소 정신적인 성장에 에너지를 쓸 수 있게 되는 게 아닐까. 




나이들면서 더 멋스러워지고 싶다


그 나이여서 가질 수 있는 여유로움, 지혜로움, 멋스러움을 보여주는 콘텐츠가 더 많았으면 좋겠다. 동안의 외모와 청춘의 마음을 간직하기 때문에 멋지고 예쁜게 아니라, 자기 나름의 스타일을 지니면서도 더 깊고 성숙한 생각을 지니기에 더욱 멋진 사람으로 그려지면 좋겠다. 누군가의 엄마나 아빠가 아니라, 자식이 있더라도 그와 별개로 자기만의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을 즐기며 사는 한 인간으로 묘사되면 좋겠다. 나이가 들면서 완벽하지 않더라도 계속해서 성장해나가는 모습으로 나왔으면 좋겠다. 



Photo by Matthew LeJune on Unsplash


어른들의 성장기를 보고싶다. 

스물아홉이 된 나는 이제 조금 더 내 인생을 잘 살 수 있을 것 같다. 20대엔 아무것도 모르고 막무가내로 덤볐다면, 30대에는 좀더 성숙한 판단을 하고 사람들과도 더 잘 지내고 선택과 집중을 통해 20대일 때보다 내가 원하는 일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을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세상을 비추는 창이라고 하는 미디어에서는 여전히 20대가 세상의 중심인 것처럼 비춰진다. 

이상하다. 나는 오히려 20대의 내가 한 것보다 많은 것들을 30대, 40대에 이룰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다. 


나이든 사람들이 과거의 영광으로 회귀하고자 애쓰는 모습이 아니라, 나이가 들어야만 비로소 가질 수 있는 깊은 통찰력과 연륜을 점차 쌓아나가는 모습을 보고 싶다. 애초부터 중년이었던것처럼, 엄마나 아빠였던 것처럼, 그냥 할아버지로 태어난 것처럼 그려지는 단편적인 인물의 모습 말고. 내가 나이드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도록, 나이든 나의 미래를 기대할 수 있도록. 


Photo by rawpixel on Unsplash


그러고보니 내가 어릴 때부터 좋아하던 프로그램이 떠오른다.

생활의 달인.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서 살아온 보통의 중년들이 빛나는 프로그램이다.하루아침에 쌓을 수 없는 세월의 내공을 느낄 수 있다. 


지금 내가 생각하는 나이듦은 정신적으로 성장하며 사는 것이다. 

육체의 노화나 인생의 우여곡절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서 말이다. 이 마저도 환상일까?

환상이면 어떠랴. 미래에 대한 기대가 없이 사는 것보다는 작은 꿈에라도 부풀어 있는 게 더 나은 것같다.  



Photo by Anthony Tran on Unsplash


당신에게 나이듦이란 어떤 것인가?

당신에 접해온 나이듦의 이미지는 어떠한가?

당신은 당신의 나이든 모습이 어떠했으면 좋겠는가? 


100세 시대, 나는 여전히 나이듦에 대해 더 알고싶다.





인생은 상상도 못했던 일들의 연속, 오늘을 즐겁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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