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아일랜드에서 처음 만났다

I'll land on Ireland - 001

by 라이프그래퍼

바로 어제, 나는 6년 만난 첫사랑과 결혼을 했다.

우리는 아일랜드에서 처음 만났다. 둘다 대학 휴학을 하고 워킹홀리데이를 떠난 이후였다.


diogo-palhais-tnzzr8HpLhs-unsplash.jpg Photo by Diogo Palhais on Unsplash


나는 아일랜드에 도착한지 얼마 되지 않아 일을 막 구했고, 그는 아일랜드에서의 1년을 거의 다 채워서 일을 막 그만둘 때였다. 그렇게 우리는 더블린 근교의 쇼핑센터에서 신입 알바생과 인수인계를 해주는 선임 알바생으로 딱 하루를 함께 일할 사이였다. 그랬던 우리가 우연한 계기로 여럿이 친구로 지내다가 두어달 뒤 연애를 시작했고, 그뒤 고작 10일만에 멀리 떨어져 아일랜드-한국 장거리 연애를 하게 됐다.



다시 한국에서 만나 미친듯이 싸우고 지지고 볶으며 때로는 달달하게 때로는 애절하게 서로의 지독한 첫사랑이 되어준 우리, 결국 6년간 연애를 이어와 어제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




운명 또는 필연


처음 사귀기 시작했을 때만해도 우리가 이렇게 오래 연애를 하고, 결혼까지 하게 될 것이라곤 생각도 못했다. 그땐 ‘우리가 다시 한국에서 만나서도 연애를 할 수 있을까?’ 조차 미지수였다.



그가 한국으로 가기 직전 유럽 여행을 앞두고 있을 때 내가 그에게 고백을 해버렸다. 당시 나는 그에게 푹 빠져있었다. 그가 너무 좋은데 이대로 사귀지도 않은채 친구로 지내다 헤어진다면 긴 시간이 흘러 나중에 다시 만날 수나 있을지, 그때까지 내 감정이 유지될지, 그 사이에 그에게 다른 사람이 생기지 않을지 확신이 안 섰다. 그래서 '하고 싶은 건 할수 있을 때 하자, 지금 이 꽃다운 청춘에 할 것은 바로 열렬한 연애다’ 라는 심정으로 앞뒤 안가리고 그에게 돌진했다. 사실은 지금 고백하면 그가 받아줄 거라는 99% 확신이 있었다. 내가 고백하기 전날 저녁, 그는 나와 함께 저녁을 먹으면서 작은 선물까지 주었다. 이건 거의 100%라는 감이 있었기에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운좋게 우리는 하루에 한두시간씩 꼬박꼬박 영상통화를 하며 롱디를 잘 이겨냈고 한국에서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아일랜드에서 만났던 한국 친구들은 대부분 한국에서 만나기엔 집에 꽤 떨어져 있었다.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 우리는 한국에서 정말 가까운 거리에 살고 있었다. 매일매일 만나도 부담없는 거리였다.



vadim-burca--DupFuMU1Fw-unsplash.jpg Photo by Vadim Burca on Unsplash



그때만해도 아일랜드로 워킹홀리데이를 가는 사람은 많이 없었다. 생긴지 얼마 안돼서 정보가 없을 뿐더러 아일랜드가 한국인들에게 여행지로 유명한 국가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한국도 아닌 생소하고 머나먼 아일랜드에서, 그것도 수도 중심가도 아닌 근교의 작은 쇼핑센터의 대만인이 운영하는, 중국계 사람들 투성이인 아시안 레스토랑에서 인수인계로 딱 하루 만나고 지나치고 말 인연일 수도 있었다. 우리가 거기서 만나 연인으로 발전해 한국에서도 매일 만날 수 있는 거리에서 연애를 할 수 있었던 건 필연으로 밖에 볼 수밖에 없다.





우리가 사랑한 아일랜드


IMG_2719.JPG 2013년 9월 내가 직접 찍었던 아일랜드 더블린의 거리


우리는 우리가 만난 아일랜드를 사랑했다. 그곳엔 왠지모를 여유가 느껴졌다. 상점들은 늘 늦은 아침에 열어 이른 저녁에 문을 닫았다. 점심에 공원에 가면 양복 입은 아빠들이 유모차를 끌고 나와 아이와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높은 건물이 없어서 언제나 탁트인 하늘 아래서 걸었다. 더블린 시내 골목마다 거의 오케스트라 수준의 멋진 버스킹 연주가 흘러나왔다. 걷다보면 몇걸음마다 하나씩 쓰레기통이 있었고 거리도 그만큼 깨끗했다. 유럽에서 가장 큰 도시 공원이라는 피닉스파크에 가면 끝이 안 보이는 드넓은 초원에 아이들은 굴러다니고 그 옆에 사슴들이 풀을 뜯고 있었다. 우리가 일하던 쇼핑센터 바닥에서도 역시나 아이들은 굴러다녔고 옷이 더럽혀진다며 화를 내는 부모는 없었다.



IMG_2901.JPG 2013년 9월 내가 직접 찍었던 세인트 스티븐 그린 공원



우리는 사귀기 전 여러 친구들과 함께 놀았다. 저녁이면 소란스러운 음악소리로 꽉찬 펍에서 꼭 맥주 한잔씩 하며 하루 피로를 풀었다. 어느 친구 집에서 파티가 열리면 모르는 사이여도 건너건너 초대되거나 초대했고, 그러면 각자 본인이 마실 술을 사들고 가서 그 집에 사는 여러 국적의 플랫메이트, 룸메이트들과도 다함께 어울리곤 했다. 어쩌다 서로 쉬는 날이 겹치면 호스라던지 킬케니와 같은 더블린 근교로 당일치기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사귄 이후 단 둘이 만나서도 특별히 다른 데이트를 하지는 않았다. 사귀고나서 우리가 아일랜드에서 보낼 수 있었던 시간은 약 10일 정도였는데, 그나마도 내가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퇴근하고 나서 저녁 7~8시 이후에나 잠깐 볼 수 있었다. 우리는 그 열흘 동안 대부분 오코넬 브릿지 근처에서 만나서 강이 흐르는 밤길을 걷고, 우리가 좋아하는 펍에 가서 맥주 한잔 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게 전부였다.


IMG_2955.JPG 2013년 9월 내가 직접 찍었던 오코넬브릿지에서 본 밤 풍경



아일랜드에서 6개월~1년을 보내면서 우리는 각자 아일랜드에서 자신만의 추억을 쌓고, 좋아하는 장소와 사람들을 만들어갔다. 아일랜드는 우리 둘 모두에게 소중하고 그리운 곳이다. 그러나 막상 우리 둘만의 특별한 추억의 장소는 손에 꼽을 정도다. 우리의 추억의 장소는 사실 다른 여러 친구들과 함께 공유하는 추억의 장소다. 내가 좋아하는 추억의 장소에는 그가 없었고, 그가 사랑하는 추억의 장소에도 내가 없었다.



그래서 신혼여행 장소는 고민할 필요도 없이 아일랜드로 결정했다. 우리가 처음 만난 곳이면서, 둘 모두에게 특별한 경험을 선사해준 곳. 그곳에서 이전에는 함께 공유하지못했던 아일랜드에서의 각자의 추억을 공유하러 간다. 동시에 이번엔 우리 둘만의 새로운 경험도 만들고 싶다.



사귀고나서 아일랜드에 함께 있었던 시간은 열흘, 결혼하고나서 신혼여행으로 아일랜드에 머무는 시간은 12일(비행시간 포함하면 2주)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사귈 때 아일랜드에서 데이트했던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신혼여행으로 함께 보내게 됐다.



아일랜드는 이미 나에게 잊지 못할 곳이었다. 이번 여행을 마치고 나면 다시 꼭 돌아와야만 하는 영원히 잊지 못할 곳이 되어 있을 것 같다.



161163_de00525d98d3f7dc17b59b56a5c526e821a2d1149c94a5590cd3e945b901656a.jpeg 이번에 아일랜드 가는 비행기 안에서 핸드폰으로 찍었던 하늘



이 글을 쓰는 지금 나는 아일랜드로 한창 가는 중이다. 우리는 곧 아일랜드에 착륙할 예정이다. 어떤 여행이 기다리고 있을까?




I’ll land on Ireland



(190929 아일랜드 가는 비행기 안에서 핸드폰 메모장에 쓴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