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land on Ireland - 002
6년 전, 아일랜드에 가기 전까지 나는 한국에서 평생을 한 도시에서 살았다. 그때까지 해외는 여행으로도 한번도 간적이 없었다. 나의 아일랜드 워킹홀리데이는 첫 해외 방문이자 동시에 한국과 해외를 통틀어 처음으로 타지에서 살아보는 경험이었다.
처음엔 모든 풍경이 낯설고 새로웠다. 당연히 전부 처음보는 길이었기 때문에 늘 한 손엔 관광객들을 위한 상세한 종이지도를 들고 다녔다. (핸드폰을 들고다니면 도둑맞기 딱 좋기 때문에 안전한 종이지도를 애용했다)
그렇게 매일매일 거리를 쏘다니다보니 어느새 나는 지도 없이도 길거리를 돌아다닐 수 있게 되었다. 심지어 한국에서 친구들과 자주 놀러다니던 홍대, 신촌 길도 잘 못 찾아 헤매던 내가 더블린 시내의 웬만한 길을 척척 찾아다닐 수 있을 정도였다. 나무에서 새로운 나뭇가지가 뻗어나가듯, 내 머릿속에도 ‘내 구역’에 관한 새로운 회로가 뻗어나가는 느낌이었다.
사는 곳이기 때문에 당연히 여행과는 접근이 달랐다. 초반에 어느날은 동네를 탐색하기 위해 일부러 집앞 버스정류장에서 안 내리고 종점까지 가보기도 했다. 집에서 멀지만 커다란 마트와 집 바로 앞이지만 작은 마트의 품목과 가격이 어떻게 다른지 구경하고, 동네 도서관에 가서 괜히 회원카드를 만들어 읽지도 않을 책을 빌려보기도 했다. 여행과 다르게 그곳에 머물 시간이 많았기에 당연히 여유도 많이 부렸다.
어느날은 유럽에서 가장 큰 도시 공원이라는 피닉스파크에 가다가 길을 잃었다. 그냥 대충 구글지도를 켜서 걷다가 우연히 메모리얼가든을 지나가게 되었다. 그냥 목적지로 가기 위한 경유지였는데도 너무 마음에 들어서 그곳에서 한참 시간을 보낸 뒤 피닉스 파크에 갔다. 그곳에서도 혼자 잔디밭에 앉아 세월아 내월아 햇볕을 쬐며 책을 읽었다. 이렇게 길을 잠시 잃어도, 잘 모르는 동네에 와도, 예정대로 일이 흘러가지 않아도 큰 걱정이 없었다. 낯선 여행지와 달리 아일랜드에서는 그 어디든 평소에 내가 사는 곳과 멀지 않은 곳, 같은 나라 안이었다. 한국에서 지하철을 잘못 탔을 때처럼 어떻게든 하면 된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색다른 곳이긴 했지만 애초에 ‘생활공간’으로 접근한 것이었지 여행이라는 인식이 없었기 때문에 주요 관광지 중에는 입장료가 있다는 이유로, 다음에 오면 된다는 생각으로 안 들어가본 곳도 많았다. 해리포터 촬영 장소인 트리니티 칼리지의 도서관 역시 그 동네는 늘 지나치는 곳이니까 ‘이번에 안가도 다음에 가면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지나가곤 했다. 마치 부천 사람인 내가 부천 관광명소(라고 하는 곳)은 한번도 안 가본 것과 같은 이유였다.
그곳에서 사는 동안은 매일 일상에서 접하는 것들이 당연한 것처럼 느껴졌다.
어느새 아일랜드를 떠난지 5년이 넘었다. 잠깐 살았던 곳이기 때문에 이제는 주요 기억만 남아 있다. 지금 다시 나를 더블린 한가운데 떨어뜨려 놓고 어딘가로 가보라고 하면 잘 찾아갈 수 있을까? 내가 그렇게 좋아하던 세인트 스티븐 그린 공원도 이제 어떻게 가면 되는지 가물가물 하다.
물론 여전히 기억나는 것들도 많다. 더블린 시내에서 놀고 집에 갈때 버스를 기다리던 정류장 위치, 내가 타던 버스 25A와 25B, 내가 살던 집의 주소까지 생생하다.
살았던 곳을 이제는 여행으로 다시 가려니 기분이 참 이상하다. 그때는 매일매일 일상적으로 다녔던 곳들을 이제는 12일이라는 제한된 시간 안에 관광을 해야 하다니! 아일랜드로 신혼여행 가는 도중 핸드폰으로 날아온 로밍 문자에 적힌 통신사 이름만 봐도 그때 기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보다폰, 쓰리가 그때도 유명한 통신사였지, 그때 핸드폰 쓰려고 매장에서 탑업했었는데 등등...
그리운 아일랜드에 다시 가려니 설레지만, 동시에 너무 짧은 기간 방문해야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아직 도착하기도 전인 지금부터 아쉬운 마음이 든다.
5년 전 짧은 아일랜드 생활을 마치고 완전히 짐을 싸서 떠날 때는 이상하게 평소 아일랜드에서 지내면서 잠깐씩 여행 가는 것처럼 ‘떠나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이제 떠난지 한참이 지나 다시 돌아가는 지금은 여행을 시작하기도 전부터 왠지모를 싱숭생숭함이 있다.
예전에 알던 단짝 친구와 오랜만에 만나서 빨리 헤어져야 할 때의 느낌처럼.
어떻게 해야 아쉬움이 덜한 여행이 될 수 있을까? 본격적인 여행을 시작하기 전에 생각을 해봐야겠다.
I’ll land on Ireland
(190929 아일랜드 가는 비행기 안에서 핸드폰 메모장에 썼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