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land on Ireland - 006
우리는 아일랜드에서 처음 만나, 6년 간 연애를 하고 올해 9월 말 결혼을 했다. 그리고 운 좋게 신혼여행을 아일랜드로 갈 수 있었다.
우리의 신혼여행 기간동안 아일랜드엔 비가 안 오는날이 거의 없었다. 나는 나의 추억의 장소인 메모리얼 가든과 피닉스 파크에서 피크닉을 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는데, 두곳 모두 야외였기 때문에 무슨 일이 있어도 이곳들 만큼은 꼭 비 안 오는 날에 가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마침 일기예보를 보니 딱 수요일 하루만 온통 맑다고(비가 안 온다고) 표시 되어 있어, 그날을 결전의 날로 정했다! 정말 다행히 위의 사진처럼 아침부터 날씨가 맑아 기분이 좋았다.
6년 전 아일랜드에서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생활을 할 때, 첫 한달 동안은 정말 외롭게 지냈다. 어학원도 통하지 않고, 말 그대로 아무 연고 없이 비자와 약간의 생활비만 들고 아일랜드에 왔었다. 더블린 시내의 호스텔을 전전할 땐 그나마 호스텔에서 만나서 이야기하는 친구들이라도 있었다. 그런데 루칸이라는 더블린 근교 도시로 이사를 간 뒤에는 일자리를 구하기 전까지 같이 어울릴 친구가 없었다.
메모리얼 가든과 피닉스 파크는 딱 그때, 루칸으로 이사를 가고나서 아직 취업이 되지 않았을 시기의 어느 주말에 나 혼자 나들이삼아 다녀왔던 곳이다. 그때의 기억이 나에게 너무 강렬하고 좋았기 때문에, 예전에 그 추억을 블로그에 글로 남긴 적도 있다. (아래의 두 글은 내가 완전히 잊고 있었던 건데, 이번에 브런치에 글을 작성하면서 구글에 '메모리얼 가든'을 한번 검색해봤다가 우연히 발견했다)
https://imzzombi.tistory.com/8
https://imzzombi.tistory.com/9
피닉스파크는 워낙 유명한 곳이기 때문에 지금의 내 남편도 6년 전 아일랜드에서 지낼때 한두번 가본 적이 있다고 했다. 그런데 메모리얼 가든은 남편도 한번도 가본 적이 없다고 했다. 한눈에 내 마음을 빼앗겼던 그 곳을 남편에게도 소개해주고 싶었다.
사실은 결혼을 8월이나 9월 초에, 더 추워지기 전에 빨리 하고 싶었다. 아일랜드로 신혼여행을 갔을 때, 6년 전 내가 봤던 그 모습과 똑같이 흐드러지게 핀 장미를 메모리얼 가든에서 다시 보고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8월은 남편의 직업상 성수기여서 시간을 내기 어려웠고, 9월 초엔 추석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일정을 늦춰야 했다.
6년 전만 해도 구글 지도에서 아일랜드 교통편이 완벽하게 나오진 않았기 때문에, 그 당시 난 피닉스파크에 가다가 길을 잃고 우연히 메모리얼 가든에 가게 됐다. 이번 신혼여행 때는 호텔에서 메모리얼가든까지 가는 길의 경로를 구글 지도에서 찾아 좀더 편하고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갈 수 있었다.
메모리얼가든은 놀랍도록 그대로였다. 다른 것은 9월보다 약간 더 시들어가는 10월의 장미 뿐이었다. 그리고 그때는 혼자였지만 이제는 둘이 갔다는 것 정도가 다른 점이었다. 쌀쌀한 날씨에 사람은 많지 않았다. 가을이 깊어져 약간 쓸쓸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마치 나 자신이 '오래된 기억 속을 걷는 유령'처럼 느껴졌다.
더블린 시내에서는 소매치기 걱정 때문에 삼각대를 갖고 다닐 수 없었는데, 이곳은 사람이 거의 없어서 마음껏 삼가대를 펼쳐놓고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우리는 시들어가는 장미 앞에서 추억 사진을 남겼다.
장미가 있는 정원에서 한참 있다가 우리는 슬슬 다시 구글지도를 켜고 피닉스파크 쪽으로 걸어갔다. 메모리얼가든도 꽤 넓은 공원이었다. 한적한 공원에서 우리는 음악을 들으며 함께 산책을 했다. 다행히 그도 나의 추억의 장소를 좋아해주었다. 메모리얼가든 추억 여행은 성공적이었다!
우리는 신나서 피닉스파크 쪽으로 향했다. 내 기억과 거의 흡사하게 남아있는 메모리얼가든을 보고 한껏 들뜬 상태였다. 그래서 잠시 잊고 있었다. 피닉스파크는 유럽 도시에 있는 공원 중에 가장 큰 공원이라는 걸...
내가 기억하는 피닉스파크는 커다란 교황의 십자가가 있고, 무수히 많은 사슴이 뛰노는 곳이었다.
나의 피닉스파크는 오직 그곳 뿐이었다. 하지만 이번 신혼여행에서 피닉스파크에 처음 도착했을 때, 우리는 갈래길을 잘못 선택하여 결국 엉뚱한 길로 접어들고 말았다. 어쩐지 순조롭게 흘러간다 했다...
기대했던 사슴 떼는 커녕, 내가 알던 피닉스파크의 모습은 걸어도걸어도 보이지 않았다.
6년 전에 단 한번 방문했던 곳이어서 그런지, 사슴떼가 있던 곳까지 어떻게 갔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일단은 기억을 따라 걷는다고 걸었는데 알고보니 정 반대로 계속 걷고 있는 것이었다. 말 그대로 한시간 넘게 계속 걷다보니 다리가 아프고 지치고 있었다. 어느새 해가 지려고 해서 날씨는 점점 더 쌀쌀해졌다.
그냥 내 기억 속 그 장소를 포기하고, 새로운 피닉스파크를 발견한 것에 의의를 두고 더블린 시내로 돌아갈까 잠시 고민했지만 그러기엔 너무 아쉬웠다. 몇년 만에 온 기회인데... 여기까지 와서 포기하고 갈 수 없었다. 이미 걷고 걷고 또 걷느라 편안하고 아늑한 피크닉은 물 건너갔지만 그래도 예전 그 모습을 다시 한번 꼭 보고싶었다.
이제 진짜 그냥 시내로 돌아가야하나 하던 순간에, 갑자기 6년 전 내가 봤던 커다란 십자가가 떠오르면서 한번 구글지도에 검색해보고 싶어졌다. 구글에 Phoenix park big cross 라고 검색하니 The Papal Cross 라는 십자가 이름이 나왔다. 그걸 구글지도에 검색해보니 딱 위치가 나왔다!! 왜 진작 이 십자가를 검색해볼 생각을 못했을까. 날은 어둑어둑해지고 몸도 으슬으슬해지고 다리도 더이상 걷기 힘든 상태였지만, 그래도 정확한 위치를 찾아갈 수 있게 되었다는 희망에 다시한번 힘을 냈다.
이날 하루 2만보 가까이 걸어서 결국 내가 원하던 그 추억의 장소에 다시 갈 수 있었다. 이미 해가 거의 지려고 했기 때문에 그곳에 오래 머물지는 못했다. 그래도 결국 내가 그리워했던 그 곳에 다시 올 수 있었다는 것 만으로도 뿌듯했다. 오랫동안 못 본 친구가 잘 지내는지 궁금한 것처럼, 이곳에 다시 와보고 싶었던 이유도 똑같았다. 그냥 여전히 그대로인지 궁금했다.
6년전에 왔던 피닉스파크에는 무수히 많은 사슴 떼가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있었는데, 이번엔 사슴이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겨우 발견한 사슴 2마리는 사람들을 피해 둘만의 시간을 보내고싶어 하는 것 같았다. 가까이 가려고 하면 슬슬 일어나서 다른 곳으로 가길래, 우리도 멀리서 이 한장의 사진만 찍고 우리 갈 길을 갔다.
예전처럼 언덕에 하루종일 늘어져서 책을 읽거나 햇빛을 쐬거나 사람 구경을 하면서 여유있는 시간을 보내지 못해서 약간은 아쉬웠지만, 와보고 싶었던 추억의 장소에 결국 도착한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이 글을 쓰는 지금은 벌써 신혼여행 다녀온지 일주일이 지난 시점이다.
최대한 여행의 기억이 남아있을 때 기록을 남기려고, 글의 퀄리티는 고려하지 않고 생각나는대로 막 쓰고 있다. 그래도 여행지에서 글을 쓸 때처럼 기억이 선명하지는 않다. 벌써 점점 기억이 흐릿해져가고 있다. 신혼여행을 다녀오고, 신혼집에서 새 생활을 시작하고, 그동안 손 놓고 있었던 현실적인 고민들도 다시 가까워지고 있다. 그만큼 여행의 기억은 더 멀어져간다. 빨리 남은 이야기들도 다 잊기 전에 기록해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잘 쓰려고 하지 말고, 그냥 힘 빼고 가볍게!
메모리얼가든과 피닉스파크, 다른 사람들에게는 생소한 조합이라도 나에게는 이렇게 두 장소가 딱 붙은 한쌍이다. 비록 이번 여행에서는 쓸쓸하고 시들어가는 장미와, 추운날 걷기만 했던 피닉스파크로 끝났지만 내 기억에는 6년전의 첫 이미지로 더 오래오래 남아있을 것 같다. 아직 그때의 맑고 화창한 날씨와 여유로웠던 한때의 기억이 더 크다.
좋은 기억은 두고두고 다시 떠올리고, 좋은 사진도 자꾸자꾸 다시 꺼내보니까.
우연히 내가 좀더 어릴 때 썼던 블로그 글(이번 브런치 글 위쪽에 첨부)을 발견해서 다시 읽으니, 예전의 내가 어떻게 느꼈었는지 생생하게 알 수 있어서 좋았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한 기록이라는 점에서 이번 여행 이야기도 나에겐 참 중요하다. 이번 여행에 대한 기억이 가물가물해질때 브런치에 썼던 글을 다시 읽으며 다시한번 추억에 잠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
메모리얼가든과 피닉스파크, 흐드러진 장미와 수많은 사슴 떼를 다시 보러 언젠가 또 아일랜드에 가고 싶다. 나중에 다시 가게 되면 꼭 따뜻한 계절에 한가롭게 피크닉을 즐기다 와야지! 이번에 남긴 약간의 아쉬움이 미래에 아일랜드에 다시 갈 동력에 보탬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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