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는 분이 해보셨다만”

존대법의 또 다른 변화

by 김선철


평소 드나드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여러 해 전 요상한 표현이 눈에 띄었다. 처음엔 오타겠거니 했다. 인터넷 쪽글을 컴퓨터에서 자판으로 정성스레 타자하여 올리는 사람들보다는 휴대전화와 같은 이동형 기기로 대충대충 입력하여 글을 완성하는 사람들이 갈수록 훨씬 많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며칠 전에 다시 찾아보니 그 글은 다음과 같았다(사실성을 누그러뜨리지 않기 위해서 교정 없이 인용하기로 한다).


“예전에는 그냥 동네 휴대폰 매장에서 구입을 했다만 가끔 웹검색해보면 실제 기계값이 적게 구입을 하는 사람들도 보이네요.”(2019년 6월)

“뭐 제가 혼자 사는놈이라면야 그러겠다만 현실이 그러기엔....”(2020년 10월)


그런데 그 후로도 ‘-다마는’계 연결어미에서의 이런 생소한 어법은 계속 나타났다. 그 커뮤니티 한 곳만이 아니라 다른 여러 곳에서도 관찰되었다. 그것들 가운데 “겠다만”으로 아직 검색되는 몇 가지만 옮겨본다.


“다들 행복하게,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건지 아님 그저 하루하루 맞춰서 살아가는 건지 모르겠다만 행복하고 싶습니다.”(2022년 11월)

“비쌀수록 품질이 더 좋긴 하겠다만 체육복 코스프레 의상이 10만원 넘는건 좀 그러네요.”(2023년 2월)

“000는 본인이 직접 겪었으니 그럴만도 하겠다만 뜬금없이 일부 00 출신들이 그러는건 과거에 벌어진 사건에 대한 조롱에 가깝습니다.”(2023년 7월)


필자라면 이 자리에 “-지만” 또는 “-습니다만”을 대신 넣어야 옳다는 문법 의식을 지니고 있어서 매우 못마땅한 글들이었다. 저런 어법은 서양 복식에 갓 쓴 꼴이 아닌가 말이다. 그러던 터에 어느 날 20대 큰아이와 이야기하는 중 아이에게서 저런 어법을 듣자 필자는 즉시 그 자리에서 훈장질을 하고 만다. “어? 그거 반말!”이라고 말이다. 지적을 받은 아이의 뜨악해 하는 표정이라니. 그 후 어떤 기회에 평소 친하게 지내는 문법 전공자에게 이런 현상에 대해 의견을 물었다. 필자와 방언 배경은 다르지만 나이도 엇비슷하고 대학생 시절부터 서울살이를 해온 점도 비슷한 분이어서 내심 기대하는 바가 있었다. 그런데 웬걸, 본인은 그리 이상하지 않단다. 아, 내가 진정 ‘꼰대’란 말인가. 아니면 이제 시대에 뒤떨어진 감각의 소유자인가. 한때는 엑스세대(!)를 선도한다고 믿었었는데...


그래서 이번에는 이런 어법이 언제부터 쓰였나 알아보기로 했다. 아까 그 커뮤니티에서는 필자의 미천한 검색 능력으로 2003년 글이 나왔다.


“여인이 먼저 팔짱을 끼었고 자연스레 손도 잡았습니다. 당연한거겠다만 참 좋더군요.”(2003년 4월)


구글에서 검색해보니 검색 결과 상단에 이 어법의 부당성을 성토하는 글들 가운데 모 언론사 기사의 헤드라인이 도마에 올라 있었다.


“물갈이는 했다만… 아쉬움 남는 000 인사”


하지만 필자의 속 좁은 문법 의식으로도 이 헤드라인은 오류가 아닐 수 있다. 앞부분인 “물갈이는 했다만”은 독백에 해당될 수 있기 때문이다. 독백을 존대 어법으로 하는 경우는 드물며, 더구나 이 기사는 아쉬움을 나타내고자 하는 것이 주된 의도여서 살짝 비꼬는, 그래서 하대하는 표현이 더욱 어울릴 수도 있다. 여기서 한 가지 드는 생각은 이러한 이중적인 맥락에서 쓰인 표현들이 자라나는 세대나 어법에 민감하지 않은 기성 세대 분들에게 영향을 주어 기존의 존대 어법을 침범한 것이 아닐까라는 점이다. 물론 이를 입증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일 것인데, 그런 예, 즉 본래 ‘-지만’뿐 아니라 ‘-다만’이 쓰임직도 한 애매한 맥락은 많다. 두 가지만 들어 본다.


“두 선수의 동시기용도 가능하겠다만, 내가 알기로 아직까지 그런 테스트는 없었다.”(2022년 10월)

“코로나 사태로 인해 비행기를 안 탄 지 몇 년은 됐기에 요즘 실상이 어떤지는 모르겠다만 많이 바뀌었을 것으로 믿는다.”(2023년‘세이노의 가르침’)


여튼 이 어법의 출현을 정확히 추적하지는 못하겠지만 이리저리 검색한 결과에 따르면 대략 2000년 전후로 대두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어? 그런데 2000년 전후라면 주체 존대 선어말어미 ‘-시-’가 이른바 상황 주체 존대로 확대되기 시작했다는 때가 아니던가?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이번에는 일반 국민들은 이 어법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가 궁금해졌다. 그래서 국립국어원 누리집의 온라인 가나다 게시판을 뒤졌다. 그러자 재미있는 모양새가 드러난다.


처음에는 다음처럼 최근까지도 이 ‘-다만’ 어법의 정당성을 묻는 질문들이 올라 왔다.


2007. 1. 22.

"'뭐 사진찍는데 그게 문제냐? 실력이나 키워라?' 하시면 할 말은 없다만 그래도 좀 그렇네요."

위 문장에서 없다만이라고 쓰인게 저는 좀 어색한 느낌이 드는데 이게 맞는 용법인가요?


2022. 2. 26.

안녕하세요? 글의 전체적인 높임이 -습니다.의 형태로 되어 있으면 중간에 쓰이는 -하겠습니다만... 이라고 해야 맞는거 아닌가요??? 최근 읽은 여러 글들에서 자꾸만 눈에 걸려 문의 드립니다.

~ 대학에 입학해서 마음에 든다면 계속 다니겠다만 그게 아니라면 반수를 할 생각입니다.

~ 하기는 해보겠다만 안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2022. 3. 18.

저는 이게 하대 표현으로 알고 있어서인지 "~하지만" 을 사용해야 할 자리에 "~하다만" 으로 쓰는 사람들을 굉장히 불편해하는 사람 중 한명입니다.

예시1) 수평적 관계 사이에서 "그게 루머인가 싶긴 하다만, A는 B가 맞죠. 김OO씨"

예시2) 존대해야 할 상급자에게 "이런 조건이긴 하다만, A는 B가 아니겠습까, 대대장님?"


이러한 질문들이 올라온다는 것은 곧 이러한 표현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그만큼 늘었다는 뜻일 것이다. 그러다가 급기야 2023년부터는 다음과 같이 이게 잘못이냐는 질문들이 올라왔다.


2023. 1. 6.

어머니와 대화하다 '~하겠다만'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어머니께서 버릇없다며 화를 내셨습니다. 위에서 제가 쓴 '다만'은 반말인가요?


2023. 11. 25.

물론 '~했습니다만'이 더 정중해보이는 건 알지만 '~했다만'을 왜 많은 사람들이 반말이라고 하는지 이해가 안 됩니다.


앞서 밝혔듯이 구글에서 이 어법을 성토하는 웹페이지가 몇 개 검색된다. 역시 이 어법이 세력을 넓혀가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그것들 가운데 두 가지만 간략히 소개해본다.


(1) https://namu.wiki/w/다만


1.2. 어미


1. (~다만) 앞의 사실이나 내용을 인정하면서도 그에 반대되는 내용을 덧붙이기 위한 연결 어미. "~다마는" 의 준말.


확실히 품질은 좋다만, 가격이 마음에 걸리는군.


인터넷시대에 잘못 쓰이는 말 중의 하나다. "~ㄴ다마는" 이라는 것은 하라체, 즉,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쓸 때에 쓰이고, 합쇼체(하십시오체)에서는 쓰일 수 없지만, 일본어 말투에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남용하면서 아무 때나 붙여서 읽는 이로 하여금 이질감을 느끼게 한다.


"지금까지 힘들었다만 결과가 좋아서 다행입니다." ( X )


"지금까지 힘들었지만 결과가 좋아서 다행입니다." ( O )


"지금까지 힘들었습니다만 결과가 좋아서 다행입니다." ( O )


분명 끝은 존댓말인데 "힘들었다만"은 반말이고, 그것도 아주 낮춤에 해당하는 반말로 되어 있으니 이질감이 안 느껴질 수가 없다. 합쇼체에서는 "~ㅂ니다만"을 쓰거나 "~지마는" 의 준말인 "~지만" 을 쓰는 것이 옳다. "~다만"을 사용할 때는 적절한 어간, 어미와 함께 사용해야 한다.

"~다만"의 오용은 2000년대 중반 또는 그 이전부터 지적되고 있었으나, 개선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2) https://wikidocs.net/175696

• 합니다만/있습니다만/했습니다만 : 합쇼체 종결어미에 '만'이 결합했으므로 아주 높임을 나타낸다.

• 하다만/있다만/했다만, ~알았다만/된다만/됐다만 : 하라체 종결어미에 결합했으므로 아주 낮춤을 나타낸다.


우연이겠으나 “했다만”으로 검색한 결과 최상위에 뜬 이 웹페이지 작성자들의 의견은 한결같이 이것이 반말투이며 존대 어법에 섞어 쓰는 것은 옳지 않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이들은 아마 필자와 비슷한 세대이면서 보수적인, 조금 미화해서 말하면 많은 면에서 타의 모범이 되는 그런 분들일 것이다. 하하...). 그런데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이것이 비교적 최근의 현상이고 저빈도여서인지 국어학계에서 아직 정리된 바가 없다는 점이다. 새로운 연구 대상이 될 수 있는 현상이 아닌가 제안하며, 연구자들의 논의 결과를 기다려본다.


이제 다른 한 가지 사항을 마저 말씀드리겠다. 이 글의 제목에서 필자는 “아시는 분”이라는 표현을 등장시켰다. ‘-시-’는 주체 존대 선어말어미이기 때문에 문장의 주어를 높이는 역할을 하게 하는 것이 바른 용법일 터. 그런데 여기서 생략된 주어는 ‘나’ 또는 ‘저’ 즉 1인칭 대명사이다!


필자가 이런 표현을 들은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3~4년 전인 2020년 전후부터로 기억된다. 그러나 구글 검색 결과(검색어: “제가 아시는 분”)의 첫 페이지에 뜬 것만 보더라도 이 표현의 비문법성을 지적한 글이 이미 2009년에 등장하였다. 그렇다면 그 이전부터 쓰이기 시작한 것이라고 보아야 마땅하다. 그 글은 다음과 같다.


(3) https://world.kbs.co.kr/service/contents_view.htm?lang=k&menu_cate=learnkorean&id=&board_seq=228978&page=242

“병원에는 웬일이세요? 어디 편찮으신 데라도 있으신가요?”

“아니에요. 제가 아시는 분이 입원하셨다고 해서 병문안 온 거예요.”

지금 들으신 대화에서 ‘제가 아시는 분이 입원하셨다.’라는 표현이 있었는데요, 이 문장에서 잘못된 부분은 무엇일까요?

네, ‘제가 아시는 분’이라는 표현입니다. 의외로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들이 꽤 있으신데요, 이 말은 존대법이 잘못됐습니다. ‘제가 아시는 분’이라고 하면 ‘아시는’ 사람이 바로 말하는 사람 자신이므로 자기 스스로를 높여서 말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런 경우에는 ‘제가 아는 분’이라고 말하는 것이 맞습니다.


어떤 글에서는 이것이 파괴되고 있는 존대법의 반대 방향, 즉 엉뚱한 존대라고 일갈한다. 자기를 높이는 것이기 때문이란다. 그러나 표현을 구사하는 화자의 의도는 자기가 아는 그 어떤 분을 높이고자 하는 것일 테니 이를 존중하여 객체존대라고 해야 마땅하지 않을까. 조금 더 언어학적으로 생각해보자면, 이 표현의 속 구조가 “제가 (어떤) 분을 안다.”라고 할 수 있으니, 여기서의 존대는 주어의 행위(앎)가 미치는 대상(어떤 분)을 높이는 존대이니까 말이다.


현대 국어의 객체 존대법은 어휘적으로만 실현된다. ‘뵙다’, ‘드리다’, ‘여쭈다’가 그것이다. 그러던 것이 ‘(내가)아시다’의 등장으로 깨지기 시작한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이런 어법은 사라져서 빈칸으로 존재하는 문법적 객체존대법을 보충하려는 어법이 아닐까.


이것이 단기간에 사라질지, 끈질기게 살아남거나 세력을 넓혀 문법 체계에 변화를 야기할지는 아직 알 수 없을 것이다. 이래저래 우리말의 존대법은 여러 문법 요소 중에서 가장 활발한 변동을 겪는 듯하다. 그만큼 복잡하고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원어민도 이럴진대 외국인이면 얼마나 어려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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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말과글>> 2024년 봄호에 실린 것을 다듬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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