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셰'를 '쉐'로 적을까

서양어에서 온 외래어 용어의 관용 표기 유형 - 영화 용어를 중심으로 -

by 김선철

소리글자인 한글의 다양한 자모에 얹혀 있는 음가 덕분인지 외국어의 소리를 한글로 최대한 그에 가깝게 적고자 하는 노력은 비록 소수의 노력이기는 하지만 세종의 훈민정음 창제 이후 끊임없이 이루어져 오고 있다. 훈민정음이 창제되었던 15세기에 통일되어 있지 않았던 한자음을 표준화하기 위하여 이상적이라고 할 만한 인위적 한자음을 표준으로 제정하려 했던 이른바 동국정운식 한자음 표기가 중국어의 중고음과 당시 현실 한자음을 같이 고려한 것으로 여겨지므로 부분적으로 이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겠다. 지금에 이르러서는 한자음과 훈, 표기가 세월의 흐름에 따라 우리 자체 용법으로 대부분 단일하게 정리되었고, 다른 외국어의 소리는 1986년에 마련되기 시작한 외래어 표기법(이때 ‘외래어’는 외국어와 외래어를 함께 아우르는 용어이다. 외래어 표기법의 원칙과 용례들을 살펴보면 이러한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을 따라 적게 되어 있다.


그런데 이는 외래어 표기법이 행정 고시의 형태로 우리 사회에 제시되었기 때문에 원래 공공 영역에 국한된 것이었다. 따라서 민간에서 외래어를 적을 때 사실 이를 따를 의무는 없다. 다만 교육이나 언론 등 사회의 중요한 기반 영역에서 공공의 외래어 표기를 따르면서 민간에 전파되고 있는데, 사회적 의사소통의 효용을 생각한다면 공공의 의무지만 민간 영역에도 권장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예를 들어, 얼마 전에 등장한 터키의 새 명칭 ‘튀르키예’는 터키 정부의 요청으로 우리 정부가 공공 영역에서 바꾸기로 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를 언론사들이 너도나도 채택하기로 하면서 전 국민이 바꿔 써야 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실제로 표준국어대사전에는


터키(Turkey)02 「명사」 『지명』 ‘튀르키예’의 영어 이름.


이라고 되어 있다.


한편 민간, 특히 일반 국민은 외래어 표기법 원칙에 의거한 표기가 아닌, 별도의 외래어 표기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어떤 출판사는 자체의 외래어 표기법을 마련하여 사용하기도 한다. 일반 국민이 나름대로 사용하는 외래어 표기(내용주: 이러한 표기 가운데 긴 시간 동안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표기를 ‘관용 표기’라고 일컫는다. 그런데 어느 단계부터 관용 표기가 되는지에 대해서는 정해진 바 없으며, 당분간은 그 합리적인 기준이 마련되기 힘들지 않을까 한다. 따라서 이 글에 등장하는 관용 표기의 예는 필자의 주관적인 판단에 따라 선정된 것들이다.)들은 어떤 틀 잡힌 원칙에 의하기보다는 하나하나마다 나름의 적용 원리와 역사가 있어 보인다. 혹은 딱히 어떤 알 수 없는 연유로 자리 잡은 것으로 보이는 예도 있다. 이러한 현상이 벌어지는 근본적인 이유는 외래어 자체에 대한 또는 외래어 표기에 대한 개개인의 인식이나 태도 때문이 아닌가 한다. 특히 원어와의 유사성 측면에서는 이른바 음성 표현 범위가 넓은 ‘한글의 우수성’을 살려 ‘아륀지’처럼 원어를 최대한 모사해야 한다는 시각이 있는가 하면(현지 원음주의), 우리끼리 통하는 것인데 원어와의 유사성이 무슨 상관이냐, 어차피 원어 발음을 그대로 적을 수 없는 것 아니냐는 정반대의 시각(소통주의)이 우리 사회에 공존한다.


필자가 접한 현지 원음주의의 가장 극단적인 형태는 외국어 음성을 제대로 적을 수 있도록 한글 자모를 확충하자는 주장이다. 특히 훈민정음 창제 당시에 존재했던 반치음자(ㅿ), 순경음자(ㅸ, ㆄ)가 부활 대상으로 흔히 거론된다. 극소수만이 동의할 특정인의 주장이었지만 아예 국제음성기호(IPA)를 대체할 만큼 변형된 한글 자모를 많이 만들자는 제안도 있었다. 소통주의 측은 한마디로 원음과 많이 차이가 나더라도 관용적인 표기면 충분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는 원음과의 대응 방식이나 생성 과정을 막론하고 사회성을 획득한 표기라면 별 문제가 없지 않냐는 시각으로, 급격하고 새로운 창조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어서 지지하는 비율이 제법 높아 보인다.


우리 사회 구성원의 절대 다수는 외래어가 번역할 수 있는 것이라면 당연히 번역해서 수용하되, 번역이 불가능하다면 해당 외래어가 - 모든 경우에 그렇지는 않지만(예를 들어, 영어의 [ʃ]는 경우에 따라 ‘슈’나 ‘시’로 구분하여 적지만 일본어의 [ん]은 환경과 무관하게 ‘ㄴ’으로만 적게 되어 있다. 전자는 청취적 원음주의에 가까운 처리라면, 후자는 1음운 1자모 대응 원칙에 따른 조치이다.) - 우리 귀에 어떻게 들리는지를 따져서 적는 현행 외래어 표기법의 기본 정신에 동의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기본 정신을 ‘청취적 원음주의’라고 부를 수 있다면, 현행 한글 맞춤법에서 한정하고 있는 한글 자모는 온갖 외래어를 청취적 원음주의에 입각하여 적는 데 필요충분하다고 생각된다. 우리가 다른 인위적인 훈련 없이 모어 배경만으로 인지하는 자모음을 충분히 적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외국어의 말소리에 더욱 가깝게 적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나타나는 것은 외국 문물에 대한 관심이나 그와의 접촉이 끊이지 않은 탓일 것이다. 그렇지만 예로부터 청취적 원음주의에 벗어나는 외래어 표기가 꽤 있어 왔는데, 현재 영화 애호가 집단 중심으로 쓰이고 있는 외국 배우의 성명 표기를 비롯한 서양어 기원의 영화 용어에서 그 대표적인 유형 몇 가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유형은 로마자를 라틴어식으로 읽는 철자식 발음 표기가 이름과 성 전체에 걸쳐서 또는 그 일부에 쓰이는 예이다. 대표적으로 아만다 사이프리드(Amanda Seyfried), 안젤리나 졸리(Angelina Jolie), 다니엘 래드클리프(Daniel Radcliffe), 엠마 왓슨(Emma Watson), 에단 호크(Ethan Hawk),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Leonardo Dicaprio), 게리 올드만(Gary Oldman), 나탈리 포트만(Natalie Portman), 니콜라스 케이지(Nicolas Cage), 스칼렛 요한슨(Scarlett Johansson) 등이 있는데, 각각 ‘리어나도 디캐프리오’, ‘스칼릿 조핸슨’ 등 별도의 규범 표기가 정해져 있거나 ‘이선 호크’ 등 외래어 표기법 원칙에 맞는 표기를 찾을 수 있다. 이들 가운데에는 이탈리아어식, 스웨덴어식 이름도 있고 기원을 따지기 어려운 이름도 있지만 영어식 발음 표기가 아닌, 기원어나 라틴계 언어를 의식한 표기가 언중에게 익숙해진 예가 많다. 기원어와 무관하게 흔히 철자식 표기라 불리는 라틴어식 발음 표기가 굳어진 일반명사로 ‘메달’, ‘필름’, ‘코요테’, 고유명칭으로 ‘맥도날드’ 등 많은 예가 있다.


1964년에 제작된 프랑스 영화로 ‘쉘부르의 우산’이 있다. 여기서 ‘쉘’은 ‘셰르’로 적어야 할 것이었으나 당시 관습에 따라 ‘쉘’로 적힌 듯하다. 한글맞춤법과 외래어 표기법의 기본 원리에 따르면 '셰'로 적어야 하는 이런 ‘쉐’형 관용 표기 는 아직도 흔하게 보인다. ‘클리쉐’라는 영화 용어에서, ‘밤쉘’이라는 영화 제목에서, ‘쉐임리스’라는 미드 제목에서, ‘쉐일린 우들리(Shailene Woodley)라는 배우 이름에서 그렇다. 그렇다면 왜 ‘셰’로 적을 것을 ‘쉐’로 적는 것일까.


미국 제너럴 모터스사가 생산하는 자동차에 Chevrolet라는 상표가 있다. 이것을 지엠대우에서 생산하게 되면서 등록한 상표명이 ‘쉐보레’이다. 그 이전에는 이를 국립국어원과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가 공동 운영했던 제53차 외래어 심의회 회의(2003. 9. 3.)에서 ‘시보레’로 정하였다가 2011년에 상표 등록 결과에 따라 이를 ‘쉐보레’로 변경하였다는 기록이 찾아진다. Chevrolet의 미국 현지 발음이 영어 사전에 [ʃèvrəléi]라 하니 표기 원칙에 따르면 ‘셰브럴레이’로 정했어야 하는데, 2003년 당시에 사회에서 굳어진 표기를 존중하여 ‘시보레’로 정하였던 듯하다. ‘시보레’는 어디서 연유했을까? 예전 신문 기사를 검색해보니 1928년 것에서부터 나온다. 일본의 자동차와 관련된 뉴스였다. 그래서 일본어 사전을 찾아보니 일본에서 ‘シボレー’(시보레)로 불린다고 한다. 즉, 이전의 ‘시보레’는 일본을 통해서 들어온 표현으로 볼 수 있다.


‘쉐보레’는 어디서 온 표기일까. 예전 기사에는 1982년의 기사 하나에서만 나타나므로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표기는 아니다. 지엠대우가 상표 등록을 발표할 때 당시의 신문 기사를 보면 국제 통용 발음을 반영하여 ‘시보레’가 아닌 ‘쉐보레’로 결정되었다는데, 경영진은 [ʃe]를 왜 ‘셰’가 아닌 ‘쉐’로 적고 싶어 했을까. ‘셰퍼드’는 ‘쉐퍼드’라고 적는 일을 거의 보지 못한 것 같은데 말이다.


필자가 찾아보니 ‘쉐’의 역사는 꽤 길었다. 1926년에 Sheffield를 ‘쉐필드’로, 1936년에 Shelley를 ‘쉘리’로 적은 기사가 보인다. 반면 고신문에서 ‘셰’형은 매우 드물었다. 음성학에서 [ʃe]와 [swe]는 아주 다른 구성이어서 소리가 꽤 다른 점은 [계]와 [궤]를 비교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따라서 이들에서 초성 자음만 교체한 [셰]와 [쉐] 또한 매우 다른 소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조상들은 이 두 소리를 동일시하거나, 표기로 쉽게 구별하지 못하였다. 아마도 저빈도 음절이었기 때문이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든다. 어쨌든 앞선 시대에 민간에서는 이 두 표기를 구분하지 못하고 문자생활을 해왔고, 지금도 이런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이른바 7080세대의 ‘쉘브루’(셰르부르), ‘쉐그린’(섀그린)으로부터 요즘의 ‘쉐프’(셰프), ‘쉐어’(셰어), ‘쉐이크’(셰이크), ‘쉐도우’(섀도) 등 매우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외국계 햄버거 상표인 ‘쉐이크쉑’(shakeshack, 외래어 표기법 원칙으로는셰이크섁이 된다.) 또한 이러한 경향을 따라 등록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의문 하나는 예전부터 왜 하필 ‘쉐’인가이다. 필자가 생각하는 가장 유력한 이유는 이것이 더욱 ‘외국어스러운’ 표기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고신문을 보면 ‘셰’는 고유어나 한자어 표기로 상당히 자주 등장하여 익숙하지 않은 것이 절대 아니었던 것으로 여겨지지만 ‘쉐’, ‘쉘’ 등 ‘쉐’형은 주로 외국어 표기에만 등장함을 알 수 있어 ‘쉐’형이 외래어용 음절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외국어 단어를 외국어처럼 보이도록 적고자 하는 의도로 보이는 다른 부류의 표기로 ‘쥬스’, ‘쵸코’류가 있다. 영화계에서 찾자면 ‘죠스’(1975), ‘쥬만지’(1995), ‘어벤져스’(2012) 등 많은 영화 제목이 있다. 이는 ‘주’, ‘초’와 ‘쥬’, ‘쵸’는 나타내는 발음이 서로 다르다는 믿음으로부터 나오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ㅑ, ㅕ, ㅛ, ㅠ 등을 발음할 때 그 앞에 놓인 ㅈ-계열 자음의 발음이 더욱 부드러워져서 외국어스럽게 될 것이라는 짐작에 기인하는 것 같다. 그 주장의 논리로서 ‘가지어’의 준말 ‘가져’도 쓰는데 ‘쥬스’, ‘쵸코’로 쓰지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반문도 한다. 이것들도 역사가 깊어서 1920년대 신문에서부터 검색된다. 그러나 1920년대의 표기에서는 한자어에 대해서도 이러한 표기가 등장하므로 당시의 사람들이 발음의 정확한 표기를 위해 고안한 표기라고 확신하기에는 아직 정확한 근거가 부족하다. 다만 현대인이 그렇게 믿고 적는 것은 실은 학술적으로 근거가 없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음성 분석에서 차이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은 음성학 비전문가도 녹음기 또는 컴퓨터만 있으면 쉽게 실험하여 확인할 수 있는데, 주변의 여러 사람에게 ‘쥬’, ‘주’ 등을 읽혀서 녹음한 다음 다른 사람들에게 각각을 들려주고 적어보라고 하면 된다.


이와 반대로 ‘결과적으로’ 외국어를 외국어스럽지 않게 표기하는 예도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연철(모음 사이에 있는 자음자를 뒤 음절 초성자로 적기)하지 않고 분철(모음 사이에 있는 자음자를 앞 음절 종성자로 적기)하는 현상이다. 그 한 사례가 요즘 한창 인기를 얻고 있는 ‘안야 테일러 조이’(Anya Taylor-Joy)라고 하는 미국 여배우의 이름 표기이다. 이 배우의 이름은 2017년에 외래어 심의회에서 ‘애니아 테일러조이’로 정했으나, 우리나라 영화 애호가들 대다수는 ‘안야 테일러 조이’로 적고 있다. 이는 현지 발음보다 원어의 로마자 표기에 이끌려 생긴 표기인 듯도 한데, 필자의 눈으로는 ‘안야’로 적으면서 서구 인물의 이름이 아니라 동양인의 이름처럼 보이게 되었다. 그러나 실은 ‘아냐’라고 적는다면 우리말 부정어와 똑같은 것이 되기 때문에 회피 전략으로써 ‘안야’로 굳어진 것이 아닐까 싶다(이렇게 보니 한 가지 소리를 연철과 분철로 동시에 적을 수 있는 한글의 모아쓰기는 유용한 점이 꽤 있지 않나 한다. 이와 유사한 표기로 들 수 있는 다른 예로 교회 이름에 쓰이는 ‘벧엘’이 있다. 발음은 ‘베델’과 차이가 있을 수 없지만 해당 교회 측에서는 아주 오래 전부터 ‘벧엘’을 고수하고 있는데, 영어가 소속 언어로 치면 원음은 [béθəl]이어서 구한말 우리 땅에서 활약했던 인물의 우리말 이름을 ‘배설’(裵說)로 한 것은 현행 외래어 표기법의 원칙에 우연찮게도 맞는 조처였다. 그러나 교회 측에서 유지하고 있는 ‘벧엘’은 국역 성경에 나오는 표기를 유지하는 것으로 그 이유는 이 말이 영어가 아니고 ‘여호아의 집’이라는 뜻의 히브리어 기원이며 ‘벧+엘’이라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엘’은 여호아를 뜻한다). 그렇지만 ‘엔야’(Enya)라는 아일랜드 가수의 이름은 왜 ‘에냐’로 적지 않는지는 추측하기 어렵다. ‘엔야’로 적으면 서양인의 이름이라기보다 일본인 이름처럼 보이는데 말이다. 혹시 ‘ya’가 의미가 있어 분리된다는 짐작의 어떤 형태 분석 의식이 개입되었을까. ‘케냐’를 ‘켄야’로 적지는 않기 때문에 이런 현상은 매우 일관성이 떨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이를 밝히려면 꽤 깊숙한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그 어떤 이유를 추정하기 어려운 예가 있다. 영화 감독 ‘마틴 스콜세지’(Martin Scorsese)는 철자식 발음이라고도, 원음 발음이라고도 하기 어렵기 때문에 누군가 시작한 것이 퍼져 우연히 굳어진 표기로 추측해 본다. 참고로 밝히자면 규범적인 표기는 ‘스코세이지’로 정해져 있다(한편 유튜브를 확인해 보면 여러 동영상에서 ‘스코세시’라고 본인의 이름을 소개한다). 이렇게 r이 받침 ㄹ로 반영되어 있는 예가 ‘얼후’(二胡, erhu) 등 중국어의 표기이다. 서구어 쪽에서는 흔하지는 않지만 고유명칭에 드물게 보인다. 앞서 언급한 ‘셸부르’ 이외에 국내 악기 상표명인 ‘콜트’(Cort)가 그 예인데 회사 측에서 ‘코트’로 적지 않는 이유를 밝힌 바는 아직 없다. 특이한 예로 가수 ‘룰라’(Roo'Ra)도 있다. 그들의 인터뷰 기사에 따르면 이는 ‘Roots of Reggae’를 줄여 만든 이름이라고 하는데, 이를 ‘루라’라고 하지 않은 이유에 대한 내용은 찾아지지 않으나 대개 짐작할 수 있듯이 댄스 음악을 다루는 가수이므로 ‘룰루랄라’라는 감탄사를 연상하도록 지은 명칭이 아닌가 한다.


이 반대 현상도 있다. l을 ㄹㄹ로 적지 않고 ㄹ 하나만으로 연철하여 적는 경우이다. 그라스(glass), 드라이 크리닝(dry cleaning), 크로바(clover), 크리넥스(Kleenex), 크린토피아(Cleantopia) 등이 대표적인데, 1910년대에서 1920년대에 걸쳐 여러 인쇄물에 등장한 외래어 표기를 수집하여 만든 ‘모던조선외래어사전’(1937)에는 ‘마라리아’ 등 많은 예가 있어 이런 현상의 역사가 짧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이 일본어의 영향인지, 아니면 ‘ᅟ글ㄹ’, ‘클ㄹ’ 연쇄가 우리말에서 저빈도여서 회피된 것인지 확실치 않다(≪우리말샘≫의 자소 검색 결과, 일반 고유어 단어 총 92800여 개 중에서 이 ㄹㄹ 연쇄가 들어 있는 것은 400개 남짓인 것으로 확인된다. 이 문제에 있어서 사전 올림말에서의 통계와 더불어 일상적인 빈도도 중요할 것이나 이를 제대로 파악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이 글에서는 생략하기로 한다). 외국 인명 표기로는 1980년 기사에 ‘오리비아’(Olivia), 1996년에 ‘크린트 이스트우드’(Clint Eastwood)와 같은 표기가 보인다. 최근의 외국 인명 표기에서는 이러한 예를 보기 드물다.


정리하면서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이 글에서는 우리 사회에서 관용화된 서양어에서 온 영화 용어의 원음 표기를 살펴보면서 대체적으로 어떤 유형이 있는지 들여다보았다. 비록 통계를 내지는 못했지만 가장 흔한 것으로 짐작되는 유형은 철자식 표기가 있는데, 이는 해당 용어가 수입될 때 음성보다는 문자로 수입되는 면, 그리고 어떤 연유에선지 로마자를 라틴어식으로 읽어온 역사 때문이 아닌가 한다. 라틴어식 음차 표기가 원칙의 단순화를 의미한다면 이는 기억의 부담을 덜 수 있는 효과를 노린 것이겠다. 외국어스러움을 표방하는 듯한 표기 관습의 역사가 투영된 유형이 대표적으로 ‘쉐~’였고, 얼핏 보기에 그 반대를 향하는 듯한 ‘안야’, ‘엔야’와 같은 분철형이 거론되었다. ‘스콜세지’와 같이 생성 기제를 파악하기 어려운 예도 있었다. 이러한 예는 아마도 학계에서 깊이 탐구하여야 그 원리가 밝혀지지 않을까 생각된다. 이렇듯 언중이 구사하는 자율적인 외래어의 표기에는 언중의 다양한 관점과 동기가 반영되어 있는 듯하다. 또한 이를 통해서 인간의 언어 활동이 경제성 효과뿐 아니라 관습과 기억력에도 매우 크게 의존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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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말과글>> 2024년 여름호에 실린 것을 다듬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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