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오랜만’보다 더 반가움을 표하는 인사말은 뭘까
엊그제 친척 동생의 결혼식에 다녀왔습니다. 촌수로는 6촌이고 나이는 열 몇 살이 어린 동생이지요. 이 동생은 땅꼬마일 때 몇 번 봤었고 후에 저와 대학 동문이 되어 20년 전쯤 교내에서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그후 외국에서 공부하고 귀국해서 여기저기에서 직장 생활을 했다는 소식을 알고 있었고, 2년 전쯤에는 무슨 일 때문에 전화 통화를 하였는데 만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내내 동생의 아버지인 5촌 당숙을 통해서 사진으로 변한 모습을 어느 정도 알고는 있었지만 얼굴을 마주한 것은 교내에서의 그 만남 이후 이번 결혼식에서가 처음이었습니다.
공부와 일 때문에 혹은 짝을 만나지 못해 결혼을 늦추었을 동생은 동년배의 같은 직장 동료와 연이 닿아 경사를 맞이하였는데, 부모를 닮아 워낙 미인형이기도 하지만 유전자의 힘인지 아니면 부지런한 관리 때문인지 다행히(?) 아직은 그런대로 풋풋한 신부 느낌을 풍기면서 신부대기실 주변을 환히 비추고 있었습니다.
혼주이자 그 집안의 장남이신 큰당숙께서는 몇 년 전에 뵈었서 그리 낯설지 않은 외모셨습니다. 큰당숙 내외께 축하 인사를 드리고서 몇 분 뒤에 서로 사는 곳이 멀어 정말 오랜만에 만난 큰당숙모, 작은당숙 내외 그리고 한 분 남은 당고모 내외의 얼굴이 하객들 사이로 눈에 들어왔지요. 그 순간 저는 큰 소리로 “오랜만이시네요. 잘 지내셨죠?”라는 부족하고 어설픈 인사말을 재주껏 연발하며 반가운 마음을 숨김없이 표했지만 한편 속으로는 움찔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머리에는 서리가 내리고 얼굴에는 주름이 패인 모습들에는 어느덧 중년을 넘어선 노년의 기운이, 세월의 더께가 켜켜이 내려 앉아 있었던 것입니다. 혈기왕성했던 옛 모습만 기억하고 있던 탓에 마치 그분들의 얼굴이 제게는 분장한 배우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흰머리는 가발인 것 같았고, 주름은 화장용 크림으로 지우면 지워질 것만 같았어요. 그도 그럴 것이 근 30년 만에 만난 것이더군요.
그런데 그분들도 제 모습에서 비슷한 느낌을 받으셨나 봅니다. 서로 악수를 하면서 인사를 나누고 간단하게 안부를 묻기만 했지 더 말을 잇지는 못했지요. 그렇게 서로의 얼굴을 뜯어보며 어색하게 웃기만 했습니다. 원래 말수가 없는 집안이어서 예전에 자주 만날 때도 그리 많은 대화를 주고받지는 않았지만, 이번은 경우가 달랐어요. 세월이 무섭다는 것을 깊이 새기는, 외모로부터 상대방이 살아온 무게와 궤적을 짐작하는 순간이었지요. 적어도 제게는요.
할아버지의 동생 즉 종조부께서 살아계셨을 때는 제사와 같은 집안 행사 때문에 간혹 큰집에서 만나곤 하여 5촌 사이가 그리 멀다고 느끼지 못하였었습니다. 게다가 큰당숙께서는 저희 어머니와 돈독하게 연락하고 지내셨고 명절에는 선물도 주고받는 사이시지요. 그렇지만 작은당숙들과 당고모는 옆으로 비켜 계셨고 그것은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어머니와 큰당숙 사이의 교류에 기대서 친척 관계가 유지되고 있음에 만족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갑자기 만나고 보니 서먹서먹해진 사이임이 드러나 버렸네요.
만나기 전에는 예전 모습과 크게 달라진 모습은 전혀 예상하지 못 했고, 20~30대의 젊은 기분으로 장난을 주고받을 줄만 알았지, 이런 분위기에 들어설 줄 몰랐습니다. 반갑지만 어색한 기운의 형성에는 다른 사항 하나가 일조하였습니다. 작은당숙과 막내당숙 내외분들의 주변을 둘러싼 어린 6촌 동생들은 제가 대부분 처음 만나는 사이였기에 너무 낯설었거든요. 소개를 받아 우르르 목례와 눈인사를 나누기는 했지만 어찌나 당혹스럽고 한편 미안하던지 말로 옮기기가 어렵습니다.
이렇게 세대를 거듭하면서 점점 친척들과 만나는 횟수가 줄어들수록, 반면 가족의 규모가 점증할수록 나에게서 남이 되는 방향으로 관계가 멀어집니다. 피할 수 없는 일이지요. 그렇지만 저에게는 적어도 6촌 동생들까지는 기억하고 챙길 능력이, 여유가 되면 좋겠다 싶습니다. 게으른 자의 지나친 감상적 욕심일까요?
대학에 진학하면서 상경하여 서울 변두리에 사셨던 이분들에게 며칠 신세를 졌었고, 답답했던 기숙사 생활 중에 간혹 외로움을 덜어 주시는 은혜를 입었던 저는 그것을 갚아야겠다는 마음이 있었었는데 그만 그간 까맣게 잊고 있었습니다. 앞으로 나이 차이가 가장 덜 나는 막내당숙께라도 간간이 안부를 전해드려야겠다고 생각해 봅니다.
인간이 죽음보다 잊혀짐을 더 두려워한다고 했던가요? 서로 보듬어주고 기억해주며 살아야겠습니다. 하물며 친척이면 조금 더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