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은 없을까?

by 김선철


신문 지상에 ‘세계화’라는 표현이 본격적으로 나타난 것이 1983년쯤이니까 벌써 40여 년 전의 일이다. 그 당시에 우리 사회에 무슨 일이 있었느냐 하면 우리말을 로마자로 적는 표기법이 서양인 관점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이 대두되었다. 그래서 그 이전인 1959년에 제정되어 쓰이던 어떤 문자를 다른 문자로 옮기는 전자법적 로마자 표기법이 1984년에 자음의 유무성을 구별하여 적는 전사법적 체계로 개정되기에 이르렀다. 세계화 시대에 외국인이 불편한 표기법을 개선한다는 취지였다.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하는 데 꼭 필요하다는 논리도 곁들여졌다.


그러나 이 표기법은 모음자에 특수기호를 사용해야 하고, 우리말에서는 구분되지 않는 유성, 무성을 나누어 적어야 해서 정작 우리 국민이 구사하기에는 불편한 것이었다. 서양인들 또한 무성 자음자에 얹혀 있는 오른쪽 작은따옴표(’, 어퍼스트로피)가 무슨 소리를 뜻하는지, 반달기호( ̆)가 얹혀 있는 모음자는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어 곤란해 했다. ㄱ, ㄷ, ㅂ, ㅈ이 낱말 처음(정확히는 문장 처음이나 휴지 다음에서) 발음될 때 서양어의 k, t, p, ch처럼 들리나 모음과 모음 사이 등의 유성 환경에서는 g, d, b, j로 들리는 점을 반영한 것은 서양인들의 청각적 인식을 반영한 것이었으나, 우리말의 음운 체계를 아는 외국인들은 같은 음소를 위치에 따라 달리 적는 것이 더 어려웠을 것이다. 결국 국민적 요구에 못 이겨 정부는 개정을 약속했고,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은 표준어의 소리를 적는 전사법적 체계이면서 우리말의 음운 체계에 대응되는 철자를 사용하는 것으로 다시 바뀌었다. 그것이 2000년의 일이다. 우리 정부가 우리말의 로마자 표기 방식을 제정과 개정을 거듭한 역사는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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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아직도 몇몇 국민들에게는 현행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에 불만스러운 면이 있는 듯하다. 더 발전된 모습이 있을 수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런 주장들에 대해서 상세히 살펴보자. 단, 편의를 위해서 우선 현행 로마자 표기법의 관점에서 반박해 본다.


첫째, 세계 공용어인 영어의 관점에서 대부분의 자음자를 제 음가대로 읽을 수 없다는 주장이다. 우선 로마자의 자음자가 지니는 음가부터 따져보자.


로마자는 라틴어를 적는 글자로 자리 잡은 이후 전 세계에 퍼져 인류의 80퍼센트 이상이 모어의 문자로 사용하고 있다. 따라서 로마자의 자음가가 지니는 음가는 딱히 정해져 있지 않다. 언어마다 그 음가가 조금씩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말을 로마자로 나타내고자 할 때는 그나마 보편적인 음가가 무엇인가를 염두에 두고 정하는 것이 순리이다. 라틴어의 k, t, p는 우리말의 ㄲ, ㄸ, ㅃ과 비슷한 소리를 나타내었지만 영어나 독일어 등 다른 유럽 언어들에서는 ㅋ과 비슷한 소리가 된다. 따라서 현행 로마자 표기법은 영어의 위세에 기대어 k는 ㅋ 소리를 나타내는 자모로 지정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ㄱ, ㄲ을 위한 조치이기도 하다. 만약 k로 ㄱ 소리를 적게 한다면 더 비슷한 ㅋ을 적을 문자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미국의 지리학자 매큔과 라이샤워가 같이 만들었던 표기법에서는 ㄱ을 k, ㅋ을 k'로 표기하여 현재에도 주로 미국 내 한국학 자료에 쓰이고 있음에서 알 수 있듯이 소수의 전문가용이라면 어떻게 해도 상관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말의 로마자 표기법이 일반인, 전문가가 모두 사용하는 것이라는 점과 입력의 편의성 때문에도 특수부호는 최대한 줄이는 것이 옳다.


결국 현행 표기법에서 ㄱ은 g로(어두와 어중에서는 g, 어말과 다른 자음 앞에서는 k로) 적게 되는데, 외국인이 ㄱ을 k로 발음하는 것보다는 g로 발음하는 것이 우리가 더 잘 알아듣는 방식이라는 장점이 있다. 다만 우리의 어두 ㄱ 발음을 서양인 다수가 k로 알아듣는 현상은 피할 수 없는데, 우리가 g로 발음해주든지 아니면 외국인이 훈련을 통해서 ㄱ와 ㅋ 사이의 차이를 배우는 수밖에는 없겠다. 이는 kk에 할당된 ㄲ도 마찬가지이다. 한편, 매큔-라이샤워 방식에서처럼 어두 ㄱ을 k로 적는 것은 그러한 ㄱ을 k로 알아듣는 외국인을 위한 것이기는 하지만, 반대로 외국인의 k 발음을 우리가 ㄱ으로 알아듣기 어렵다는 점이 약점이다. 따라서 이 ㄱ, ㄷ, ㅂ, ㅈ만을 놓고 보면 두 가지 방법 사이에 우열을 가리기는 힘든 형편이다. 그러나 ㅋ을 적는 방식으로 넘어 오면 체계성을 고려하게 되는데, 그런 기준에서는 현행 표기법이 더 나은 방법이라고 여겨진다.


둘째, 역시 세계 공용어인 영어의 관점에서 어떤 모음자는 제 음가대로 읽을 수 없다는 주장이다. 로마자의 홑모음 글자는 a, e, i, o, u 다섯 글자이다. 이것은 라틴어에서 각각 아, 에, 이, 오, 우처럼 소리 나는 글자이고, 로마자를 사용하지 않는 다른 언어권에서도 로마자 표기법에서 이런 음가를 유지하는 것이 보통이다. 우리 주변 국가인 일본이나 중국에서도 그렇다.


문제는 이 다섯 모음 이외의 모음들이 우리말에 많다는 점이다. 어, 으, 애가 있고 여기에서 파생되는 여, 얘, 왜가 있다. /어/는 우리에게 알려진 몇몇 언어에서도 나는 소리이다. 영어에서는 love에서처럼 철자 o로 표기되기도 하고, sun에서처럼 u로 표기되기도 한다. 감탄사 uh도 /어/와 비슷하다. 발음기호 /ə/ 또한 우리가 듣기에 /어/처럼 들리므로 부정관사 an을 ‘언’으로 적게 된다. 중국어에서는 e로, 루마니아어에서는 ă로, 헝가리어에서는 a로, 베트남어에서는 â로, 네덜란드어에서는 위치에 따라 e로 적는다. /으/는 드문 모음이다. 루마니아어에 비슷한 모음이 쓰이는데, î나 â로 적는다. 말레이어에서 e로 적는 경우가 있다. 베트남어에서는 ư로 적으며, 타이어의 로마자 표기법에서 oe로 적는 정도이다.


a, e, i, o, u에 이미 고유의 음가를 부여했고 여러 언어의 사례에서 본으로 삼을 만한 것이 있지 않으므로 우리로서는 그 어떤 독자적인 방법을 취하는 방향을 찾게 된다. 그것이 지금까지 /어/에 대해서는 ŏ 또는 eo, /으/에 대해서는 ŭ 또는 eu였는데, 특수부호가 매겨진 글자는 예나 지금이나 전산적으로 꺼내 쓰기가 번거로워 결국 2000년 개정 당시 깊은 논의 끝에 기본 글자만으로 이루어진 eo, eu를 택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정한 배경에는 국제음성기호 [æ]가 a+e에서 기원했기 때문에 /애/를 ae로 적는 것이 꽤 타당하다는 관점이 있었다. 모음 /애/를 ae처럼 로마자 두 개를 겹쳐 적을 수 있다면 다른 모음들 또한 그러한 방식을 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ae가 ‘애’ 또는 ‘아에’를, eo가 ‘어’ 또는 ‘에오’를, eu가 ‘으’ 또는 ‘에우’를 모두 나타낼 수 있어서 동철자가 발생할 가능성과 잘못 읽힐 가능성이 있는데, 동철자가 발생할 때에는 붙임표(-)를 사용할 수 있으며 바른 독음은 교육이나 홍보로 알릴 수밖에 없고 그 외에 다른 방도는 없을 것이다. 예를 들어, 일본 한 지명의 로마자 표기 Hakodate(하코다테)를 영어권 사람들이 ‘해커데이트’나 ‘헤이커데이트’로 읽지 않는 것은 일본의 국력에 따른 국제적 홍보 효과가 아닐까 싶은 것이다. 현대(Hyundai)나 삼성(Samsung)도 당초 '휸다이'나 '쌤쑹'로 발음되던 데서 벗어나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하듯 '현대', '쌈썽' 정도로 많이 발음되고 있다고 하니 말이다.


현편 매큔-라이샤워 방식에서 채택한 특수부호 방식(ŏ, ŭ)은 내외국인 모두 발음을 익혀야 하는 점은 현행 표기법과 같지만, 입력의 편의성에서 뒤진다는 단점 때문에 환영받기는 힘들다. 또한, ‘로마자’라는 범주에서 벗어나는 별도의 문자 추가라는 점이 이 방식의 근본적인 단점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하자면 ㄲ, ㄸ, ㅃ, ㅉ, ㅐ, ㅚ 등 로마자 홑자로 적을 수 없는 소리를 적기 위한 문자 또한 만들 수 있을 것인데, 그러한 방식은 결국 새로운 문자 창제에 가까운 것이지, 우리말을 타 문자로 적는 방편은 아닌 것이다.


셋째, 로마자 표기로써 원래의 한글 표기를 알 수 없어 문제라는 주장이다. 이는 로마자 표기를 하는 목적이 무엇이냐와 관계가 있다. 우리말의 문자 체계인 한글을 버리고 로마자로 바꾸고자 한다면 현행 한글 맞춤법을 그대로 가져와 로마자 표기법에 반영해야 할 것이다. 이와 유사한 경우가 아니라면 원래의 한글 표기로 복원할 수 있는 로마자 표기는 별로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현행 로마자 표기법에는 학술적 목적 등을 위해서 한글 표기로 복원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 경우에는 전자법적 표기를 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제8항 학술 연구 논문 등 특수 분야에서 한글 복원을 전제로 표기할 경우에는 한글 표기를 대상으로 적는다”).


그렇다면 현행 로마자 표기법은 무슨 용도를 염두에 두고 제정된 것일까. 표기 대상이 한글 자모가 아니라 발음이기 때문에 즉, 한글 글자가 아니라 소리를 적는 것이기 때문에(=전사법) 구어적 의사소통을 우선시한 것이다. 물론 그러기에는 다소 교육과 훈련이 필요하지만 겹받침자(값, 흙 등)를 채택하거나 음운 변동 이전의 형태(독립문[동님문], 속리사[송니사] 등)를 반영하는 우리 맞춤법을 그대로 로마자로 옮기면 내외국인 이용자들이 더욱 혼란스러울 것이기 때문에 발음을 대상으로 할 수밖에 없다. 다만, 동음어는 표기가 같아지는 단점이 발생할 수 있는데, 이는 불가피한 현상이며 정말 구별해야 하는 것들은 괄호와 같은 다른 표지를 붙여 구별할 수 있다.


넷째, 받침 ㅇ과 ㄴㄱ을 모두 ng로 표기하기 때문에 혼란스럽다는 주장이다. 이는 eo가 ‘어’ 또는 ‘에오’를, eu가 ‘으’ 또는 ‘에우’를 모두 나타낼 수 있어서 동철자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과 같은 문제이다. 역시 붙임표(-)로 해결하거나 교육 또는 홍보로 발음을 알리는 방법이 해결책이다.


다섯째, 철자의 보수성을 생각하면 전자법이 낫다는 주장이다. 즉, 발음을 기준으로 하면 쉽게 변하는 발음의 속성상 로마자 표기도 수시로 바꾸어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반면 한글 철자를 기준으로 하면 철자 개혁(한글 맞춤법 개정)을 하지 않는 한 로마자 표기 또한 바꾸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일견 일리 있는 주장이다. 철자법이라는 것이 자주 바뀌면 각종 표지판, 문서 등의 교체 비용과 다음 세대와의 소통(문서 해독) 등 여러 가지 면에서 그만큼 불편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 정해진 개별 단어의 로마자 표기는 사전에 등재된 단어처럼 상당히 긴 시간 동안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말 단어의 로마자 표기 또한 하나의 독립적인 표기 체계이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말의 표준 발음이 어떻게 변하든 우리말의 로마자 표기를 최대한 유지해야 하고, 그 독음 방식이 별도로 강구되어야 할 것이다. 그 좋은 예가 영어의 파닉스(phonics) 아닌가 한다. 주지하다시피 영어의 파닉스는 철자 대 발음의 관계를 질서 정연하게 보여주어 주로 어린이 문해 교육이나 영어 입문자에게 이용되는 교수법이다. 우리말의 맞춤법에도 일정한 소리와의 관계가 있듯이 로마자 표기 또한 언어 변화의 결과로서 그러한 관계가 성립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을 개선하자는 주장의 여러 내용과 각각에 대한 반론을 살펴보았다. 앞서 밝혔듯이 편의상 현행 표기법의 시각에서 반론을 펼쳤었는데, 입력의 편의성과 같은 부수적인 요소를 제외하고 단지 표기 체계만으로 판단할 때 현재까지 최종판인 현행 표기법이 무조건 최고의 체계이고 ‘84년 표기법이나 ’59년 표기법이 아주 불편하거나 잘못된 표기법인 것 같지는 않다고 생각된다. 나름대로 각기 장점도 있기 때문이다. 특수부호를 몇 가지 사용하는 것은 동구권 등 타 언어에서도 꽤 채택하는 방식이며, 그럼으로써 기본 자모가 줄어드는 효과도 있다. 역시 익히기는 어느 체계나 어느 정도 공을 들여야 한다. ‘익히기’는 우리말의 음운 체계와 지구상의 대표적 음소 문자인 로마자가 서로 맞지 않는 체계로 되어 있다는 점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지 않은가. 따라서 어느 체계이든지 정착시키는 것이 관건이다. 혹시 정말 불가피하게 개정해야 한다면 앞선 표기법인 1984년 표기법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최선이겠다. 1984년 표기법의 개정을 위한 1990년대의 논의에서는 1959년 표기법으로 되돌아가자는 제안이 가장 나았다고 보는 것이다. 결국 앞으로 우리의 로마자 표기법을 개정하자는 논의는 나타나지 않았으면 한다. 우리말이 변하여 26자의 로마자만으로 충분히 표기할 수 있게 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로마자 표기법도 맞춤법이며, 맞춤법이 바뀌면 누구나 괴롭지 않은가.


그래도 여전히 현행 로마자 표기법이 불편하신 분들을 위해서 역대 로마자 표기법 가운데 민간에서 제안되었던 주요한 것까지 한눈에 비교할 수 있는 표를 보여드릴 것이니, 더 나은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 수 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시고자 할 때 활용하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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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글>> 2024년 가을호에 실린 것을 다듬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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