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에서 고립되어 쓰이는 경우를 제외하면 어떤 언어이든 어휘 체계는 기본적으로 그 언어 자체의 낱말과 다른 언어로부터 들어온 말로 구성된다고 한다. 이름하여 각각 고유어, 외래어라고 부른다. 외래어를 더 세분할 수도 있어서 귀화어, 외래어, 외국어 네 부류로 구분하기도 한다.
≪우리말샘≫에서 각각의 정의를 보면 다음과 같다.
(1) 국어학에서의 어휘 구분(어원과 어원 의식 기준)
가. 고유어: 해당 언어에 본디부터 있던 말이나 그것에 기초하여 새로 만들어진 말. 국어에서는 ‘아버지’, ‘어머니’, ‘하늘’, ‘땅’ 따위가 있다. ≒토박이말, 토착어.
나. 귀화어: 한국어 속에 들어온 지 오래되어 외래어 느낌이 없이 우리말처럼 쓰이는 말.
다. 외래어: 외국에서 들어온 말로 국어에서 널리 쓰이는 단어. 버스, 컴퓨터, 피아노 따위가 있다.
라. 외국어: 외국에서 들어온 말로 아직 국어로 정착되지 않은 단어. 무비, 밀크 따위가 있다.
고유어와 귀화어의 정의에서 볼 수 있듯이 어떤 언어에서 출발하였느냐를 따짐과 동시에 느낌이 어떤지 또한 따져 구분하는 것이 이 네 가지 어휘 부류의 기본적인 구분 기준이 된다. 위 정의에는 나타나 있지 않지만 이러한 구분 기준을 강하게 이용하면 외래어는 외국어 느낌이 덜 하면서 세월이 흐르면 귀화어가 될 듯한 것이고, 외국어는 다른 언어인 느낌이 강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위 네 가지 개념어에 대해서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고유어가 그 언어에 본디부터 있던 낱말이라는 점은 언어권이나 문화권을 막론하고 보편젹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인데, 실은 이런 정의는 좀 더 복잡한 내용을 간략하게 만든 것이다. 왜냐하면, 고유어라고 생각하는 낱말들이 태곳적부터 그 언어에서만 쓰였던 것이라고 확신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버지’, ‘어머니’, ‘하늘’, ‘땅’을 고유어라고 여기는 것은 이와 똑같은 말이 우리가 아는 다른 어떤 언어에도 쓰이고 있지 않아서인데, 이런 확신은 실은 역사적 기록과 현재의 지식에 의존하는 것이 아닌가. 만약 어떤 사료가 발굴되어 ‘아버지’, ‘어머니’, ‘하늘’, ‘땅’이 아주 오랜 옛날 만주 벌판이나 요동 반도 같은 지역에서 사용된 한반도 주변의 어느 언어에서 들여온 말이라는 것이 밝혀지면 이것들은 엄격한 고유어 목록에서 빼야 마땅하다. 그렇다면 고유어란 “해당 언어에 본디부터 있었다고 믿어지는 말이나 그것에 기초하여 새로 만들어진 말.”이라고 정의하는 것이 더욱 정확할 것이다. 우리가 현재의 여건으로 확인하는바, 다른 언어에서 기원한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 낱말이 곧 고유어의 기본 속성이라는 말이다.
귀화어의 대표로 드는 것은 포르투갈어 ‘타바코’가 일본어를 거쳐 우리말에서 모양을 바꾼 ‘담배’, 영어 ‘램프’에서 온 ‘남포’, 일본어 ‘구쓰’에서 온 것이라는 ‘구두’(정작 일본에서 ‘구쓰’는 한국어 ‘구두’에서 온 것이라 한다. 어원을 제대로 밝히기는 이렇게 어려운 것이다.), 네덜란드어 ‘가바스’에서 일본어를 거쳐 들어온 ‘가방’, 영어 ‘빌’에서부터 일본어 비라(ビラ)를 거쳐 들어온 ‘삐라’ 등이다. ‘깡통’의 ‘깡’이 영어 ‘캔’에서 왔다고 하니 이런 합성어의 구성 요소와 같은 것들도 이에 포함될 것이다. 한자어 가운데에도 귀화어라 이를 만한 것들이 있다. 이른바 음편 현상(동화, 단순화 등)을 겪은 것들인데, 표준어 규정 제5항에 나오는 사글세(←삭월세), 강낭콩(←강남콩)과 같은 것들이 이에 속한다. 이런 것들은 어형이 원어에서 크고 작게 멀어져서 우리말 낱말의 음운 구성처럼 변했고, 오래 써 온 탓에 굉장히 익숙한 말이다. 따라서 고유어와 별반 느낌이 다르지 않다. 다만 필자가 알아본 바에 따르면 일본을 제외한 다른 언어권에서는 ‘귀화어’라는 개념을 잘 거론하지 않는데, 국어학에서 이를 논해온 것은 일제 시대를 겪으면서 우리말의 순수성을 지켜야 하는 민족적 과제가 대두된 때문이 아닌가 한다. 일제 시대 직후에 우리는 벤토, 스메키리, 다마네기와 같은 이른바 일본말 찌꺼기 외래어들을 몰아내야 했고, 전 국민의 호응에 힘입어 크게 성공을 거두지 않았던가. 그래서 외래어에 대한 연구가 흥했고 더불어 귀화어, 외국어와 같은 그 주변 개념에 대해 집중하지 않았을까 싶다.
외국어임을 알고는 있지만 아주 흔히 쓰여서 인위적으로 없애기에는 너무 품이 많이 들어 손대기 곤란해진 말이 외래어이다. 우리말 어휘구성에서 가장 비중이 큰 한자어가 상당 부분 외래어에 속한다. 마음으로는 왠지 한자어를 귀화어와 외래어 사이에 넣고 싶을 수 있는데, 외래어의 정의에 따르면 어쨌든 한자어는 외래어이다(일본에서는 일본어 내의 한자어를 귀화어로 보는 학자들이 있다). 웬만한 한자어는 신조어라도 낯설지 않아서 외국어라고 분류하기가 꺼려지는데, 한자어가 아닌 서양어나 일본어 등에서 온 말이 아예 낯설면 외국어가 된다.
그런데 외래어와 외국어 사이의 경계가 명확할까. 사람마다 같기는 할까. 영어에 능통하고 익숙한 어떤 이는 우리나라의 1인당 소비량 전 세계 평균의 2.7배라는 커피, 직장인의 필수품인 컴퓨터가 외래어겠지만 그렇지 않은 이에게는 외국어일 수 있다. 어떤 이는 외국어 발음을 그대로 유지하여 구사하면 외국어이고, 국어화하면 외래어 아닌가라고 질문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커피를 [커피]라고 발음하면 외래어, [kʌfi]로 발음하면 외국어라는 시각이다. 그러나 우연히건 아니건 우리말식 발음이 원어와 꽤 비슷한 경우도 있고, 언어지식 중 어휘부에 하나의 개체로 들어 있는 어떤 낱말을 발음이라는 껍데기만 바꾼다고 그 낱말의 종류가 바뀐다는 것도 이상하다. 따라서 이러한 시각은 수용되기 어렵다. 영영사전에서 loanword의 뜻풀이를 봐도 “외국어에서 차용한 낱말. 모양이 바뀌지 않거나 아주 조금 바뀐다.”(a word adopted from a foreign language with little or no modification)라고 하여 발음은 외래어와 외국어의 구분 기준으로 넣지 않는다.
아무리 우리말의 역사적, 사회적 특수성, 언어적 직관을 고려해서 (1)을 인정한다 하여도 이러한 네 가지 구분은 이론적이며 관념적인 것이어서, 각각에 속하는 낱말을 누구나 인정하는 정해진 목록으로 만들기는 불가능하다고 여겨진다. 국립국어원에서는 이 문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2) 한글 맞춤법 총칙 제3항의 해설 중 더 알아보기(2018년 수정, 국립국어원 누리집)
“...국어사전에서는 단어의 원어를 밝히고 있다. 고유어에는 원어가 제시되어 있지 않고 한자어에는 한자가, 외래어에는 각 단어의 원어명과 로마자 표기가 제시되어 있어서 이로써 어휘 부류를 알 수가 있다. 외래어는 국어의 어휘 체계에 속하지 않는 외국어와 개념적으로 구별된다. 하지만 실생활에서 그 구별이 명확하지 않을 때가 있다. 현실적으로는 국어사전에 실린 어휘는 외래어, 실리지 않은 것은 외국어로 구별하는 것이 편리하다.”
이를 방증하는 다른 한 가지가 1988년에 제정된 표준어 규정의 총칙 ‘제2항 외래어는 따로 사정한다’라는 조항이다. 왜 이 조항이 외래어, 외국어의 목록화가 불가능함을 방증하냐면, 표준어 규정 제정 이래 외래어를 사정한 일이 아직 없었기 때문이다. 현재 이 조항에 부가되어 있는 국립국어원의 해설은 다음과 같다.
(3) 표준어 규정 총칙 제2항의 해설(2018년 수정, 국립국어원 누리집)
“... 이 조항은 외국의 말이 국어의 일부인 외래어로 인정될 수 있는 것인지를 결정하는 사정 작업을 표준어 규정과는 별도로 한다는 사실을 밝힌 것이다. 표준어를 사정하는 데에는 사회적, 시대적, 지역적 기준을 적용하지만 외래어를 사정하는 데에는 그러한 기준을 적용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 조항을 따로 마련한 것이다.
이에 따라 외래어는 외래어 표기법(문체부 고시 제2017-14호)을 기준으로 별도로 사정한다. 다만 외래어 표기법의 ‘외래어’가 고유 명사를 포함해 우리말에 동화되지 않은 모든 외국어를 포함하는 반면, 이 조항의 ‘외래어’는 우리말에 편입된 말만을 이르는 좁은 개념이다.”
위 해설에 따르면 외래어 사정은 외국의 말이 국어로 수용되는 행정적 절차이다. 그러나 그 특성상 표준어 사정 방법론을 준용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다른 기준으로 하겠다고 밝히면서도 아직 그러한 절차가 진행된 적이 없는 것이다.
한편, 1988년에 발행된 국어 어문 규정집의 해당 해설에서는 “이번 사정에서는 외래어는 보류하였다. 그 필요성은 충분히 인식하면서도 짧은 시일에 끝내야 하는 이번 사정에서 성격이 다른 외래어의 사정은 일단 보류하기로 한 것이다. 외래어는 수시로 밀려오므로 퍽 유동적인 성격을 지녀, 앞으로 그때 그때 적절히 사정하여야 할 것이다.”라고 하면서 당시 표준어 규정의 제정에 참여한 분들이 표준어로서의 외래어 사정에 상당한 의욕을 지녔었음을 엿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후로 35년도 넘게 지난 지금 이러한 작업이 시도조차 된 적이 없음을 볼 때, 필자의 식견으로는 외래어의 개념에 비추어 그러한 사정이 특정 집단에 의해 억지로 이루어질 수는 있겠지만 그 결과가 대다수 언중의 동의를 얻기는 불가능하지 않은가 한다. 따라서 표준어 규정의 개정이 이루어진다면 경상 방언의 ‘오트바이’와 같은 방언 특유의 외래어를 비표준어로 본다는 등의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듯한 극소수의 사정만 제외하면 외래어와 외국어의 구분은 실현이 불가능한 것으로 보고 이 조항은 아예 없애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외래어와 외국어를 구분할 수 있다는 전제를 깔고서 외래어를 주제로 삼으면 나오는 질문으로(즉 그런 전제가 없다면 나오지 않을 질문으로) 외래어나 한자어는 우리말인가가 있다. 우리말에서 쓰이는 한자어는 역사성이나 동화 상태로 보아 외래어에 속하며, 외래어는 ‘(우리의 언어 체계로) 들어온 말’이므로 우리말의 일부라고 확실히 말할 수 있다. 따라서 한자어는 우리말에 속한다. 가스, 넥타이, 싱크대와 같이 누구나 외래어로 받아들이는 것으로 생각되는 서양어 기원의 외래어는 어떤가. 이것들이 우리말의 일부가 되었다고 ‘믿는다면’ 외래어라고 부르고, 그렇지 않다면 외국어라고 이른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그만큼 외래어와 외국어의 구분은 자의적일 수밖에 없다.
이어지는 질문이 있다. 확실히 구분된다면 외래어는 마음 놓고 써도 되는가이다. 사적인 자리에서 언어를 구사하는 것은 개인이 책임질 일이지 누구에게 물을 일은 아닐 것이며, 공적인 언어 구사는 비속어와 같이 윤리적인 문제가 있는 표현은 특수 목적이 아니면 피하는 것이 지당하다. 다만, 사적인 자리에서든 공적인 자리에서든 이왕이면 그리고 같은 값이면 외래어나 외국어보다는 충분히 대체할 수 있는 고유어를 우선으로, 그런 고유어가 없다면 한자어를 대신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기는 하다. 우리 언어나 문화를 우리 스스로 애용하고, 갈고 닦지 않으면 누가 하겠는가. 이러한 판단은 특정한 몇 개의 언어권을 제외한 거의 모든 곳에서 이루어진다. 이러한 상식을 바탕으로 하면 이 질문은 굳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질문 또한 외래어와 외국어를 반드시 구분하려는 태도에서 비롯되는 것이라는 생각이다.
혹시, 외래어는 우리말이니까 마음 놓고 써도 되는가라는 질문이 외래어 혹은 외국어 좀 섞어 쓴다고 해서 우리말, 보다 정확히 말해서 고유어 체계에 큰 해가 되느냐는 의도가 있는 것일 수 있다. 이는 시대상황과 관련이 있다. 수십 년 전 한 유명 소설가가 내놓은 영어공용화론이 우리 사회를 뒤흔든 적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외래어나 외국어, 특히 영어의 과도한 사용이 우리말을 몰아낼 수도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한류로 외국에 한국어 붐이 일고 있는 지금은 거꾸로 우리말이 외국어로 조금씩이나마 스며들고 있어서 영어 남용이 어떤 거부감을 일으킬지언정 위기감까지 주지는 않는 듯하다. 그래서, 외래어/외국어 섞어 쓰기의 위험성은 매우 상대적으로 평가할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필자는 국어의 어휘 부류를 나누는 기존의 관행에 대해 두 가지를 지적하였다. 첫째는 외래어와 외국어 구분이 자의적일 수밖에 없으므로 굳이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제안이다. 둘째는 외래어, 외국어 남용을 문제 삼기보다는 자신의 언어 문화를 아끼고 사랑하는 태도를 강조하는 긍정 어법적 태도가 필요하다는 제안이다. 결국 결과가 같을 것이고 문화 보편적인 태도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혹시 우리말의 대외적 위세 상승이 극에 달할 때 우리말에 대한 우리의 태도가 어떻게 변할 것인가에 대한 아직은 꽤 섣부른 상상을 해본다. 인류 역사상 가장 극단적인 그런 예인 영어와 일본어는 제국의 언어였고 그 위세와 자신감에 힘입어 그 각각의 원어민들은 주변의 다른 언어 요소가 들어오는 것에 거부감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결과 중 하나인 듯한데, 영어는 외래 어휘 요소가 가장 많은 언어라 한다. 제국주의를 지향할 바는 아니지만 우리말도 지금의 바람을 타고 위세를 쌓아가면 불과 십여 년 전에 유행했던 절멸설은커녕 아무리 외래어가 들어와도 다 우리말 자산이 된다는 자신감으로 우리 마음이 꽉 찰 날이 머지않아 찾아올지 모른다. 혹시 그런 날이 오면 ‘외래어, 외국어 남용’이라는 표현은 구시대의 유물이 될 것이다. 그때 우리는 우리의 태도 변화 즉, '변덕'에 대해 어떤 이유를 댈 것인가. 외래어, 외국어에 대해 우리가 변덕을 부릴 날이 오기는 할까, 온다면 언제쯤일까. 자못 궁금하다. 그러나 가장 이상적인 모습은 모든 언어들이 서로 동등한 위치에서 교류하며 서로 엇비슷한 영향을 주고 받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인류의 지성과 행동이 이기주의, 침략, 전쟁을 벗어나서 어서 그 지점에 도달하길 바라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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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글≫ 2025년 봄호에 실린 것을 다듬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