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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주얼 Aug 26. 2019

'좋은 일' 말고도, 좋은 일은 많아요.

결혼하지 않은 삶은 공백기와 여집합이 아니다



요새 들어, 웃으면서 맞는 잔잔한 이별들에 꼭 같은 말들이 따라왔다. “○○씨, 좋은 일 생기면 연락해.” 이 다정하고 아련한 인사. 지난달, 3년을 같이 일한 상사가 회사를 옮겨갈 적에도 그 말을 들었다. ‘어… 좋은 일, 안 생길 것 같은데.’ 순간 이런 생각이 스쳤다. 그래도 맞잡고 있던 한 손을 힘차게 흔들며 농담을 했다. “좋은 일 생길 때까지는 연락하지 말라고요?” 그러자 상사가 내 어깨를 가볍게 치며 웃었다. “아이, 왜 그래. 좋은 일 금방 생기겠지.”

앞으로 보기 어려워지는 사람들만 내게 좋은 일이 생기길 빌어주는 것은 아니다. 사실 그 말을 제일 많이 듣는 건 일 년에 한두 번 안부를 묻는 사이가 된 사람들에게서다. 오랜만에 연락이 닿아 서로 얼마나 잘 있고 못 있는지 정보를 교환하고 나면, 상대방에게서 그 얘기가 툭 나온다. “근데 좋은 일은 없니?” 방금까지 실컷 이야기한 내 근황이 갑자기 통편집을 당한 기분이 든다. 정말 궁금했던 이야기는 그 얘기였나 싶어 조금 머쓱하기도 하다.

생각해보면 나를 자주 보는 사람들은 그런 질문을 하지 않는다. 내 생활에서 연애건 선이건 썸이건, 결혼으로 이어질 만한 키워드가 쏙 빠진 지 반년 정도 됐다. 그러나 다른 좋은 일은 많았다. 이렇게 글을 쓰기 시작했고, 그래서 내가 쓴 글을 읽어주는 독자가 생겼다. 월급도 올랐고, 주말 알바도 다시 시작했다. 우쿨렐레를 배운 지 1년 만에 합주 공연도 했다. 그러나 그런 일들은 다 그 ‘좋은 일’에는 끼지 못하는 게 요새 나는 슬프다. 내게도 그 ‘좋은 일’이 있기를 기대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기혼자다. 친인척과 친자의 세계에 함입되며 자연히 나와는 덜 친해진 사람들. 


평전 맨 뒤에 실리는 연보를 읽어 내려가다 보면, 그 인물의 행적과 행적 사이에 상당한 햇수가 생략된 걸 발견하는 때가 있다. ‘이 사람은 이때 뭘 했지?’ 하고 의아할 수도 있다. 내 변변찮은 인생을 굳이 연보로 정리해 본다면 어떨까. 아마 대학원 졸업과 취직 이후 몇 년이 그 공백이 될 것이다. 원룸으로 독립하고, 분갈이 달인이 되고, 사내 동호회에서 악기를 배우는 건 연보에 들어가지 않는다. 그럼 내 일상에 관한 글을 쓰게 되고, 매주 한 편씩 짧은 소설을 쓰게 된 것은 어떨까. 나는 넣을 것이다. 누가 뭐라 해도 넣을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애정과 선의를 가득 담은 목소리로 ‘아니야, 네 인생의 다음 줄은 결혼이야’ 하고 타이르듯 말해주는 사람들이 있다. 여간한 승진이나 출세를 하지 않는 이상, 그들에게 나는 좋은 일이 없는 공백기의 사람인 것이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에 이는 파문은 작아도 쓸쓸하다.

기혼자들이 내게 ‘좋은 일’을 물어올 때, 그 사람들과 내가 서로 삶을 기록하고 평가하는 기준이 달라졌다는 것을 깨닫는다. 새삼 우리가 서로의 삶에서 이미 멀어져 왔음을 실감한다. 아니면 앞으로 얼마나 멀어져 갈 것인지를 짐작해 보기도 한다. 삶의 우선순위가 달라지는 게 서운한 것은 아니다. 서로의 자잘한 기쁨과 슬픔에 자잘한 공감조차 표할 수 없는 사이가 되어 가는 것이 아쉬운 것이다.


결혼이란 게 진일보하여 통과할 인생의 관문일까. 어느 순간 결혼은 그저 커다란 집합의 조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그다음은 아이가 있느냐 없느냐로 조금 더 작은 교집합을 추릴 것이다(‘수포자’들이 대개 그러하듯, 나도 수학 참고서에서 집합 단원만은 좀 들여다봤다). 회사에서 소위 ‘이너서클’에 드는 이들은 모두 결혼과 출산과 육아의 궤적들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밟아가며 사는 사람들이다. 보수적인 조직일수록 그렇게 교집합의 교집합으로 추려진 사람들에게 더 많은 의사결정권을 주기 때문이다.

직장 밖에서도, 고운 체로 내리듯 삶이 찰찰히 구분되는 것은 마찬가지다. 결혼을 해서 가정을 이뤄야만 사회 안쪽으로 남는 구심점을 얻고, 그런 게 없으면 원심력이 실린 것처럼 점점 커뮤니티 바깥으로 떠밀려나는 느낌을 받는다. 부모가 자식에게, 상사가 부하에게, 선배가 후배에게, 친구가 친구에게, 심지어 치킨집 사장님이 단골손님에게도 자꾸만 ‘좋은 일’을 만들라고 강박하는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교집합의 교집합으로 파고든 그 가운데에 무엇이 있는 것일까. 내게 ‘좋은 일’을 빌어주는 사람들을 보며, 그들이 통과해 들어갔을 겹겹의 좁은 문을 생각해보려 할 뿐이다. 무슨 결핍이 있는지, 문제가 있는지 하며 문 바깥으로 거침없이 던지는 의심과 동정의 시선에 따끔 놀라기도 하면서.  


 혼자 사는 사람의 삶에선 출세와 승진 말고 어떤 좋은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우선은 이 즐거운 글쓰기를 계속할 것이다. 그리고 결혼과 출산을 뛰어넘어도 된다면, 육아(育兒) 대신 육아(育我)를 하며 지낼 것이다. 나 하나 들어앉힐 자리도 빠듯한 깜냥이 이제는 조금 더 넉넉했으면 싶어서다. 저마다의 자리에서 고군분투하는 서로의 삶을 거르고 빼는 것 없이 온전히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그러려면 지금 이 어중간한 여집합 자리가, 수련을 하기엔 제격일지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매주 소설 쓰기 스터디 모임을 하러 흑석동에 간다. 근처 흑석시장에는 서로 자웅을 겨루는 순댓집이 몇 군데 있다. 한동안 도장 깨기 하듯 ‘혼순’(혼자 순대 먹기)을 하다, 그중 한 집의 간판에서 ‘잔치고기’라는 메뉴를 발견했다. 짐작이 될 듯 말 듯 해서 사장님께 여쭤봤더니, 잔치 때 사태를 푸짐하게 삶아서 내놓는 걸 잔치고기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래서 그날 저녁 소설 쓰기 스터디를 마치고 맥주를 마시다가 술김에 “글 써서 잘 풀리면 잔치고기 맞춰서 대접하겠습니다” 하고 선언을 해버렸다. 서른 또 몇 해를 살아도 일천하기만 한 인생의 연보에 출세의 계기보다는, 잔치를 기록하고 싶다. 그 조촐한 잔치는 방명록도 없고 축의금도 없고, 대신 맛난 술과 고기와 김밥이 가득했다고. 

‘좋은 일’은 없습니다만, 좋은 일은 있을 겁니다. 


유주얼


황규백, <손>, 1990, 메조틴트, 20×22.4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DP-07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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