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공주박물관 특별전 ‘무령왕릉 발굴 50년, 새로운 반세기를 준비하며’
올해 쓸 수 있는 휴가가 나흘 남짓 남았다. 한 톨 한 톨 보릿고개에 귀중한 양식 꺼내먹듯이, 반나절씩 한나절씩 후후 불어가며 아껴 쓰던 휴가를 갑자기 하루 통째로 턱 써버렸다. 국립공주박물관에서 열리는 무령왕릉 특별전을 보기 위해서였다. 백제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유물 전체가 처음으로 한 전시에 나왔다. 가짓수만 124건, 하나하나의 수는 자그마치 5,232점에 달한다.
상설전시실과 기획전시실을 연계하여 방대한 유물을 펼쳐 놓은 이 전시는 빛과 어둠의 대조를 통해 무령왕릉의 발견이라는 전무후무한 역사를 비춘다. 관 꾸미개와 금귀걸이 등의 대표적인 국보들은 무령왕릉 내부를 본떠 어둡게 꾸며진 웅진백제실에, 아직 정확한 쓰임을 밝히지 못한 유물들은 흰색과 청색의 밝은 대조가 두드러지는 기획전시실에서 볼 수 있다.
푸른 휘장을 드리운 입구를 지나 기획전시실에 들어서면, 벽 중간에 작은 창들이 나 있다. 실제 무령왕릉 안의 벽감을 본뜬 꽃봉오리 모양의 이 창 너머로 새로 복원한 왕과 왕비의 목관이 보인다. 창을 통해 다른 공간을 들여다보는 이 작은 행위는 우리의 마음을 훌쩍 과거로 날아가게 한다. 무령왕릉을 발굴한 바로 50년 전이 아니라 훨씬 더 먼 옛날로. 이제 막 왕과 왕비의 안식을 비는 조촐한 제사를 올리고, 등잔불이 채 꺼지지 않은 작고 온전한 벽돌무덤 안을 가만히 바라보았을 1,500년 전 백제인들의 눈길을 경험해 본다. 그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특별했다.
전시를 보는 내내 생각하게 되는 것은 5,232점의 출토 유물이 처음으로 한 자리에 나오기까지의 시간이다. 무령왕릉에 관한 이야기는 늘 서툴렀던 발굴을 아쉬워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발굴조사에 사흘, 그 중에서도 수천 점의 유물을 수습하는 데 걸린 시간이 만 하루도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문화재나 역사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조차도 무령왕릉의 첫 발굴조사를 쉽게 질타하게도 한다. 그러나 이 전시를 통해 돌아본 50년은, 그 사흘의 결과를 바로잡는 사람들의 시간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여덟 글자 말을 좋아한다. ‘비록 사실은 그러하지만 그것과는 상관없이’라는 사전의 풀이처럼, 이 관용구 뒤에는 늘 지금까지의 상황을 반전시키는 어떤 선택과 결정이 등장한다. 이 말을 보고 들을 때마다 내가 떠올리는 것이 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결연하게 일어나, 더듬더듬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의 모습이다. 그리고 발치에 작은 빛줄기를 비추어가며 조금씩 오래 나아가는 아주 긴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나는 오늘날 우리가 시간의 흐름 속에서 꼭 붙들고 있는 저 연약하고도 강인한 문화재들 안에서 발견하곤 한다.
그러므로 내게는 무령왕릉이야말로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거대한 산 예시 같은 것이다. 이 전시에 처음 진품이 공개된 왕과 왕비의 베개 옆에는 금박 조각들이 하나하나 펼쳐져 있었다. 일정한 두께로 재단된 이 금박은 정확한 위치는 집어내긴 어렵지만 다들 베개 어딘가에서 떨어져나온 것들일 것이다. 그런데 이 얇고 조그만 것들이 발굴 현장에서 자루에 삽으로 담겨 나왔다가 어떤 과정을 거쳐 여기까지 왔을까 생각하면 눈앞이 아득하다. 온통 한데 뒤섞인 것들을 사람의 눈이, 사람의 손이 가려내고 나누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예전 보고서에서 본 사진에선 뒤축이 터져 있던 왕비의 금동신발은 바스러진 조각들을 하나하나 맞추어 깨끗하게 복원되었다. 왕과 왕비의 목관도 3D 스캔과 컴퓨터 단층 촬영으로 확보한 자료로 옻칠 횟수나 못 구멍까지 맞춰 원래의 크기에 가깝게 새로 재현할 수 있었다. 수천 수백의 숫자 안에 이런 하나하나의 성과들이 모여 있다. 그것을 살펴보며, 이 전시를 통해 보는 것은 그저 1,500년 전의 과거만이 아님을 깨닫는다. 전시에 나온 5천여 점의 유물과 재현품은 1971년에서 2021년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전문 지식과 기술을 축적해 온 우리 문화재사 그 자체이기도 하다. 그 역사가 가리키는 것은 사건이 아닌 사건 이후의 변화들이다.
무령왕릉 출토품 가운데는, 아직 무덤 안에 어떤 형태로 들어가 있었는지 밝혀지지 않은 부속품과 장식들이 수천 개에 이른다. 하얀 벽 위에 종류별로 빼곡하게 진열된 이 유물들이 제자리를 찾고 나면, 무령왕릉 안의 풍경은 지금 상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그려질지도 모른다.
그래서 전시 후반부에 나와 있는, 전통 직물 연구를 바탕으로 재현한 백제시대 직물인 금(錦)에 눈이 오래 머문다. 금은 여러 가지 색실을 겹쳐서 무늬를 넣어 짠 고급 직물이다. 이번 전시에 나온 재현품은 왕과 왕비의 금동신발 안에서 나온 비단 조각의 짜임을 분석한 것이지만, 용과 주작 무늬는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다른 유물들에서 뽑아내어 어울리는 색으로 배치한 것이다. 서로 다른 색실을 겹쳐내며 짜낸 금(錦)처럼, 실제 유물과 연구자들의 상상이 씨실과 날실처럼 교차하며 만들어진 것이다.
과거에서 얻은 성과가 날실이라면, 새로운 질문들은 씨실이라고 할까. 오늘날의 무령왕릉을 관통하는 이 두 개의 실로 단단하게 짜낸 전시를 따라간 끝에는, 장엄하게 꾸민 무덤이나 화려한 의관의 흔적을 남기고 사라진 백제인들의 삶에 대한 질문이 남는다.
전시 도입부에 놓인 뚜껑과 받침이 딸린 은잔에는 봉황이 날갯짓하는 산봉우리를 용이 떠받친 정경이 층층이 새겨져 있다. 뚜껑과 잔 위아래로 액자처럼 둘린 연꽃무늬는 그 모습이 여기 어디도 없는 이상향을 그린 것이라고 가만히 일러준다. 무령왕릉을 남긴 이들과 우리 사이에 놓인 1,500년의 간격.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무엇을 꿈꾸었는지 알고 싶다면, 그렇게 꿈꿀 수 있을 때까지 끝없이 상상해 보고 싶다. 다시 새로운 반세기, 끊임없이 확장되고 이어지는 질문과 대답을 반복하며 우리는 무령왕릉의 실체에 더욱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다.
2021년 10월 9일 한겨레신문의 문화재 칼럼 '옛날 문화재를 보러 갔다'에 실은 글입니다.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01452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