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오징어 먹물 시그니처 리조또

구미 금리단길 빠리맨션

by 파란 거북이

구미 금리단길에서 아마도 가장 많이 알려진 레스토랑은 ‘빠리맨션’일 것이다. 금리단길의 봄은 무척이나 아름답다. 길가에 잘 심겨진 색색의 팬지꽃과 길 양쪽에 쭉 늘어선 핑크빛으로 만개한 벚꽃, 금오천을 따라 맑은 물이 소리 내며 흘러내리고, 오리 몇 마리가 평화롭게 물 위를 거닐고 있는, 그리고 동네 아이들이 징검다리를 바삐 뛰어 건너다니는 모습, 손에 손을 잡고 친구끼리, 연인끼리, 가족끼리 봄을 만끽하기 위해 나들이 나온 사람들의 행복한 모습에서 봄의 활기차고 즐거운 기운을 마음껏 느낄 수 있다. 물론 다른 계절에도 금리단길 주변은 항상 아름답지만 금리단길이라는 이름에 가장 어울리는 계절은 바로 봄이라고 생각한다. 봄은 젊음과 낭만, 도전과 열정의 계절이기 때문에 그렇다.


16.bmp 금리단길의 봄


연둣빛, 분홍빛, 파란빛 가득한 거리에서 길 한쪽 골목에 위치한 하얀색 2층 건물, ‘빠리맨션’, 파리의 예술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80년대쯤의 가정집을 예쁘게 리모델링한 작은 레스토랑이다. 솔직히 수많은 블로그, SNS에서 소개된 동네 맛집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이 마음에 썩 내키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곳의 ‘통오징어 먹물 시그니처 리조또’를 꼭 소개하고 싶어서 즐거운 마음으로 이 리조또에 대한 글을 쓰고자 한다.


20250219_120647_resized.jpg 일반 2층 주택을 리모델링하여 만들어진 '빠리맨션'


리조또는 쌀을 주재료로 하는 이탈리아 요리이다. 기원은 15세기 북부 이탈리아에서 찾을 수 있다고 한다. 이탈리아 북부 포강 유역은 지형 특성상 지나치게 다습하고, 뻘밭이 많아 밀농사가 어려운 대신 뻘밭 특유의 토질과 알프스와 가까워 늘 만년설로 물을 풍부하게 끌어다 쓸 수 있었기에 벼 농사를 짓게 된 것이라고 한다.

내가 어렸던 80년대 까지만 해도 ‘리조또’라는 음식의 존재 자체를 몰랐다. 당연히 서양 사람들은 밥 대신 빵을 먹는 줄 알았고, 이탈리아 음식은 ‘피자’와 ‘토마토 스파게티’ 밖에 몰랐다. 그나마도 피자는 ‘닌자 거북이’라는 만화를 통해서 존재를 알게 되었고, ‘토마토 스파게티’는 마트에서 파는 소스와 스파게티면으로 가끔 어머니께서 만들어 주셔서 알고 있는 정도였다. 피자헛에서 그리고 레스토랑에서 스파게티를 먹은 것은 90년대 초반, 10대가 되어서였다. 이탈리아 음식이 이렇게 맛있구나, 이탈리아에 태어났더라면 좋았겠다, 이런 생각을 했었다. 그런 나에게 어느 날 갑자기 만나게 된 리조또는 아주 놀라운 음식이었다. 서양에도 쌀로 만든 요리가 있다니, 그리고 맛있다니 정말 깜짝 놀랐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감에 따라, 점점 리조또 맛에 익숙해지고, 별로 특별하지도 않은 음식이 되어버렸다. 어느 날 와이프와 우연히 방문한 빠리맨션에서 아무 생각 없이 주문한 ’통오징어 먹물 시그니처 리조또‘는 처음 리조또를 먹어 봤을 때만큼의 놀라움을 다시 느끼게 해 준 특별한 메뉴였다. 오징어 먹물로 검게 물든 밥 위에 온전히 통째로 올라가 있는 매운 소스의 통오징어 하나, 그리고 그 오징어 안에 꽉 들어차 있는 하얀색 크림치즈, 오징어를 자르면, 크림소스가 흘러나와 밥 위에 섞인다. 밥 한 숟갈과 오징어 한 조각을 같이 입안에 넣으면 달고, 짜고, 매운 맛이 조화롭게 섞여져, 맛있으면서도 이게 도대체 뭔가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나이프와 스푼을 한 접시 위에서 사용하는 독특한 경험은 덤이다.


20250219_122026_resized.jpg 빠리맨션의 오징어 먹물 시그니처 리조또


나는 파스타를 먹을 때, 포크로 면을 돌돌 말아 올리는 것에 서툴다. 얼마나 서툴면 10살 우리 첫째아이가 비웃을 정도이다. 그렇기에 이탈리아 음식을 스푼으로 먹을 수 있는 리조또는 맛을 떠나 나에게는 중요한 음식이다. 자연스러운 방법으로 먹을 수 있는 음식이다. 다만 다른 사람들이 파스타를 먹을 때 포크로 면을 말아 올려 다른 손의 스푼으로 받쳐서 먹는데, 나는 한 손에 스푼만 쥐고 리조또를 먹어야 하기에 약간 어색한 기분이 들곤 했다. 하지만 이 리조또를 먹으려면 한 손에는 나이프, 한 손에는 스푼이 필요하다. 얼마나 감사한 음식인가.


이 놀라운 음식을 자랑하고픈 마음에 한 숟갈 먹자마자, 바로 와이프에게 엄지를 들어 보이며, 내 접시의 리조또를 권했던 기억이 난다.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우리 아이들이 먹기에는 아직 맵다는 것이다. 내가 오징어 먹물 따위가 들어간 요리를 좋아하게 되다니, 생각도 못한 일이다. 어릴 적 어머니께서 시장에서 생 오징어를 사서 손질하는 모습을 많이 봤었다. 그 비릿한 냄새와 피처럼 흐르던 검은 먹물은 혐오스러운 이미지로 나에게 각인되었다. 고향 부산의 자갈치 시장에서 플라스틱 상자에 아무렇게나 담겨져 흐물흐물하고 미끄럽게 보이는 외계인 같은 모습을 한 채, 검은 먹물이 흘러나오는 모습도 딱히 좋게 기억되지는 않았다. 말린 오징어나 가끔 먹었지, 10대가 다 지나도록 오징어로 만든 음식은 싫어했었다. 세상은 오래살고 볼 일이다. 그리고 편견은 빨리 깨버리는 것이 좋다. 이렇게 한 숟갈 한 숟갈, 오징어가 올려지고, 오징어 먹물로 물들인 음식을 맛있게 먹게 되다니.


20250219_122235_resized.jpg 빠리맨션의 다른 메뉴인 플랫 아이언 스테이크


우연찮게 빠리맨션에서 첫 번째에 이 리조또를 주문한 것은 신의 한 수였다. 하지만 조그마한 부작용이 있다. 그 이후에 이곳에 들러서 나는 단 한 번도 다른 메뉴를 주문한 적이 없다. 몇 년째 이것만 먹으니, 빠리맨션에 가자고 하면, 와이프는


“또 먹물 리조또 먹으러 가는 거지?” 이렇게 묻곤 한다.


뭐 상관없다. 맛있는데 어쩌란 말인가. 세상에 맛있는 음식은 많다. 그리고 금리단길의 다른 유명한 맛집도 많다. 빠리맨션 메뉴판에도 어쩌면 다른 맛있는 음식의 이름이 적혀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각박하고 바쁜 세상에 내가 가장 먹고 싶은 음식 말고, 다른 것을 선택해서 한 끼를 허비하는 모험을 하고 싶지는 않다. 먹는 순간은 그저 편안하고 기쁜 마음으로 즐기고 싶다. ‘통오징어 먹물’ 이것은 맛있는 음식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말이었다. 하지만 첫 빠리맨션에 발을 들였을 때, 시그니처 메뉴라니까 한 번쯤 먹어보자고 용기를 냈던 순간은 큰 행운이 따랐던 순간이다. 지금의 나에게는 일생일대의 중요한 모험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모험은 성공했으며, 나는 그 한 번의 성공을 아직까지 만족하고 있다.


- 끝 -


덧붙이는 글


이 글은 24년 제40회 구미문예공모전 입선작 입니다. 음식은 대상감인데, 글이 약해서 그만 입선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빠리맨션의 첫번째 장점은 '맛', 그리고 두번째 장점은 '서비스 마인드'라고 생각합니다. 좁은 골목길에 주차장도 완비하였고, 식전 빵과 예약을 했을 경우 허니 포테이토 프라이가 제공되었습니다. 항상 음식도 빨리 나옵니다. 점심시간에 가서 주문했는데도 3가지 메뉴 준비하는데 10분 정도 소요되었습니다. 식전 빵 먹다보면 주문한 메뉴 얼추 다 나옵니다. 별도의 대기실도 있고, 직원 분들 모두 친절합니다.


구미 금리단길 ~ 금오산을 걷는 것을 좋아합니다. 가급적 이 주변의 맛집들에 대한 글들을 지속적으로 쓸 예정인데 댓글과 라이킷은 많은 힘이 됩니다.


20250219_121014_resized.jpg 무료로 제공되는 식전빵, 예전에는 식빵이었던 것으로 기억함


20250219_121302_resized.jpg 예약손님에 대한 서비스라고 제공된 포테이토 프라이


20250219_124356_resized.jpg 짜투리 계단 공간의 여러 장식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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