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질 결심중_1

내가 이혼을 고민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by 파란 거북이

10년 전에 결혼을 했다. 뭐 어떻게 지금의 와이프를 만났고, 어떻게 결혼하게 되었는지는 지금 쓰고 싶지않다.

신혼초부터 엄청 다퉜었다. 솔직히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와이프는 직장을 그만두고 아무 연고도 없는 내가 사는 곳으로 온 상황이고, 나는 이직한 지 채 한 달이 안 되었다. 와이프는 와이프대로 힘들었겠지만 나도 새로운 직장에 적응하느라 무척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새로 이직한 직장은 텃세도 심하고, 조직문화도 너무나 달랐다. 가장 힘들었던 조직문화는 엉덩이로 일하는 것 이었다. 일이 끝나도 상사 눈치보며 밤 10시, 11시까지 일하는 분위기였고, 토요일 출근은 당연하고, 일요일도 출근 안하면 경우는 반반 정도였다. 당연히 혼자 하루종일 시간을 보내야 하는 와이프 스트레스는 장난이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정말 미안하지만 나 또한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직한 직장에서 찍히고 싶지 않았고, 정말 다 때려치고 싶을 정도로 극도의 스트레스를 나도 받고 있는 상황이었다.


신혼초의 수없는 다툼중에서 대부분은 지금 생각해보면 왜 싸웠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와이프 또한 그럴 것이라 생각한다. 아주 시시한 이유에서 비롯된 것이었고, 그저 유치한 말싸움 정도의 것이었다. 하지만 싸운 이유 중 딱 두 가지는 평생 잊어버릴 수 없을 것 같다. 솔직히 지금까지도 도저히 용서가 안 되고, 내가 잘못한 부분이 전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두 가지 중 일단, 덜 심각한 것 하나부터 얘기하고자 한다.


와이프가 33, 내가 35에 결혼했으니 늦으면 늦었지 빨리한 결혼은 아니었다. 당시 시대 상황으로는. 와이프도 친한 친구가 여럿 있었다. 미혼인 친구가 한 명 있었는데 둘이 회사에서 단짝이었던 것으로 알고있다. 우연찮게 와이프 카톡 대화 내용을 봤는데, 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문제는 내 이름을 비하해서, 더 자세히 얘기하면 내 이름에 '석'자가 들어가는데 '스톤'으로 바꿔서 둘이서 스톤씨는 잘 있냐는 식으로 나를 지칭하고 있었다. 무척 화가 났다. 적어도 나는 내 배우자 이름을 내 친구든, 선배든, 부모든 그렇게 우습게 변경해서 부르면 화가 날 것 같았다. 그건 상대방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더군다나 이제 신혼초이고, 그 친구와 나는 사실상 초면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와이프와 심하게 다퉜다. 정말 어이없는 것은 와이프나 그 친구 이름은 더 웃긴 이름이라는 것이다. 두루마리 휴지심 같은 이름과 꼴뚜기 사촌 같은 이름이다. 둘 다 학창시절에 이름 때문에 친구들에게 놀림 많이 받았을 것이 틀림없을 것 같은 그런 이름이다.


그래 맞다. 뭐 장난이다. 안 볼 줄 알고 무심코 실수했다고 한다면 사실 그냥 지나갈 수도 있는 문제이다. 그렇지만 두번째 싸움의 이유는 상당히 심각하다. 이직한 회사는 장기 해외출장이 잦았다. 그래서 한 달간 중국에 해외출장을 갔다. 협력업체에 갔는데 출장자들을 위해 한 명씩 현지 통역담당이 배정되었다. 통역이 하는 일은 서류작성, 통역, 일반 사무, 반출, 통관 등등 사실상 개인 비서라고 할 정도로 잡다하고 전체적인 일을 다 떠맡았다. 출장자는 통역담당에게 하루종일 업무지시만 내리고, 실제 발로 뛰는 건 통격이 다 했다.


여기서부터 문제가 생겼는데, 나는 중국어를 좀 할 줄 아는 상태였다. 그래서 사실 통역이 그닥 필요하지는 않았다. 내 통역 담당은 젊은 여사원이었는데, 내 업무 서포트를 아주 열정적으로 열심히 혹시 내가 기분이라도 상할까봐 확실하게 했었다. 그럴수밖에 없는 것이 다른 통역들은 다 밤 10시, 11시 퇴근인데 나는 (중국어가 되니까) 6시만 되면 통역 칼퇴 시켜주었다. 그리고 다른 통역들 다 출근해도 주말은 백퍼센트 쉬게 해 주었고, 업무도 그닥 많이 주지 않았다. 그냥 내가 다 하면 되는 업무들이라. 다른 사람과 업무할 때보다 훨씬 업무 난이도가 낮아졌으니 이 통역이 나를 금방 좋아하게 되었다. 물론 공적인 관계로 말이다. 몇 번 나에게 한국 늦게 들어가시면 안 되냐, 다음에 나오실 때도 미리 연락주시면 안 되겠냐고 문자로 묻기도 했었다. 나랑 일하면 업무가 편하니까 당연히 그렇겠지 싶었다. 그렇지만 와이프는 이 문자를 '불륜'의 증거라 생각했다!


내 입장에서는 굉장히 황당한 것이 이 통역 분과 뭐 손 한 번 잡을 수 있는 그런 시간적 공간적 여건이 전혀 안 되는 상황이었다. 이 분은 회사 -> 기숙사 -> 회사, 나는 그 회사에서 한 시간 거리의 호텔 -> 회사 -> 호텔의 삶이었고, 같이 일하는 동료들과 출장자가 너무 많아서 시간적 물리적으로 뭐 불륜 아니라 불륜 어린이, 불륜 아기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아무리 그런 관계 아니라고 설명을 해도 와이프는 의심만 계속했다.


일주일 딱 하루 일요일 쉬는 날이면 한 시간 간격으로 와이프 전화가 왔다. 뭐 누워있다가 잠깐 어버버 하면 바로 영상통화로 돌리고는 화면 켜지면 내 어깨 너머로 뭐가 있나 살펴보는 와이프를 보면서 정말 화가 많이 났었다. 매 일요일마다 하루에 열두번도 더 와이프 전화가 오니 정말 미칠 노릇이었다.


출장 복귀 후 와이프가 돈 어디어디 썼는지 다 내역 제출하라고 해서, 화가 났지만 다 정리했다. 그런데 한 달간 출장이다보니 다른 내역은 다 기억나거나 영수증이 있는데, 110위안 (우리돈 2만원 정도)의 돈을 어디다 썼는지 잘 기억이 안났다. 110위안이 비니까, 와이프는 그 돈으로 내가 어디 유흥업소를 가거나 데이트에 쓴 거 아니냐고 따지던데 정말 태어나서 이렇게 억울한 경우는 처음이었다. 한 시간 정도 지나서 잘 생각해보니 출장자 동료와 같이 발 마사지 받은 금액이라는 것이 기억이 났다. 그걸 설명해도 와이프는 믿어주지 않았다. 그래서 정말 지금 생각해도 부끄러운 일이지만 와이프 듣는 상태에서 스피커폰으로 그 동료에게 발마사지 받았다는 진술을 들어야만 했다.


이것으로 이 사건이 끝났다면 어쩌면 나는 지금 이런 글을 쓰고 있지 않을 것이다. 그 후로 몇 달이 지나고 다시 같은 곳으로 출장을 가게 되었다. 와이프는 격노했다. 그래도 가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갔다. 며칠 지나서 와이프가 중국으로 왔다. 오게 된 이유는 싸우다가 내가 홧김에 전화를 끊었기 때문이다. 왜 그랬냐면 밤 9시쯤 퇴근하고 동료와 둘이서 저녁밥 먹으며 소주 한 잔 하고 있을 때 와이프 전화가 왔다. 뭐하고 있냐고 묻길래, 무심결에 누구랑 술 마시고 있다고 대답했다. 문제는 이 동료는 남자인데 이름이 여자 이름 같다는 것이다. 왜 민경이 처럼 보통 여자 이름이지만 드물게 남자 이름이기도 한 그런 이름 말이다. 와이프의 외침 소리가 지금도 들리는 듯 하다.


"그 년이 누군데 지금 둘이서 같이 술을 마시는데?"


짜증도 나고 무안하기도 해서 바로 전화 끊고, 핸드폰 전원 꺼버렸더니, 불륜 증거 잡아보겠다고 직접 비행기 타고 중국에 온 건이었다. 첫째 아이를 임산한 채로...(23주 정도 되었을 때다.) 호텔방에서 대판 싸우고 정말 내가 이러다 미쳐버릴 것만 같아서 와이프를 세게 밀쳤고, 와이프는 엉덩방아를 찧었다. 뱃속의 첫째 아이는 깜짝 놀랐는지 나중에 와이프 배를 만져보니 심장이 쿵쿵 미친듯이 빠른 속도로 뛰고 있었다. 첫째 아이한테 내가 지금까지도 가장 미안하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며칠 후 와이프는 먼저 귀국했고, 호텔에서 싸웠던 것이 원인인지, 비행기 탄 것이 원인인지, 또 다른 이유인지, 양수가 세어나와서 나도 뒤따라 급거 귀국해야만 했다. 참 우연인지 뭔지 딱 타이밍 좋게도 병원에 들어가서 와이프 얼굴 보는 순가 내 핸드폰에 문자가 왔다. 와이프가 불륜 의심한 통역분이 아내와 아기 괜찮냐고 걱정스럽게 묻는 문자였다. 이걸 보고 와이프가 어떻게 했는지는 더 이상 입 아프니까 상상에 맡기겠다.


백번 이해해서 뭐 진짜 내가 이 통역분이랑 불륜이다. 그렇게 한 명만 의심하는 것은 좀 이해할만 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에게 연락오는 모든 여자들을 다 불륜 상대로 생각하는 것은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와이프는 분명 정신적인 문제가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있다. 인정도 안 한다.


한 번은 밤 늦게 회사 야간 라인 담당자(여자분 이었다)에게 업무 문의 통화가 온 적이 있었다. 무심코 전화받고 핸드폰을 식탁에 올려두고 갔는데, 와이프가 내 핸드폰을 몰래 가지고 가서는 상대방에게 전화를 했다. 그리고는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도대체 누군데 우리 남편에게 이 늦은 시간에 전화하시냐?"


그 년이 누군데 지금 둘이서 같이 술을 마시는데? 사건 더하기 도대체 누군데 우리 남편한테 이 늦은 시간에 전화하시냐?가 회사에 소문이 쫙 퍼져서 나는 아주 행실 나쁜 사람이 되어버렸다. 거의 인간말종으로 소문이 나 버려서, 내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데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은 나와 우리 부모님께 큰 상처를 주었지만 우야무야 '통석의 념을 금할 수 없다.' 정도의 사과로 넘어갔다. 나도 도저히 더 이상은 안 되겠다. 끝을 보자는 생각으로 장인어른, 장모님 다 불러놓고 따지러 갔다. 그 때 순순히 사과를 받은 것이 내가 잘못한 일이라 생각한다. 허위사실 유포와 명예훼손으로 사실관계 확인이라도 해 두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


아 물론 이야기는 양쪽 다 들어봐야 하는 것이고, 순전히 내 입장만 말한 것도 맞다. 이 글을 와이프가 보게 되면 아마 또 화부터 낼 텐데 화내기 전에 일단 내 질문에 답부터 해주길 바란다.


"뭐 내가 틀린 말 했냐?"


그리고 이런 사건을 가지고 내가 의심스럽다, 불륜 맞다고 중상모략한 와이프 친구들도 이 글을 볼지 모르겠다. 이렇게 말하고 싶다.


"당신들처럼 저급한 수준과 상식의 사람들만 사는 세상이 아닙니다. 진짜 내가 불륜 이라고 생각한다면 직접 나한테 얘기하세요. 법적 대응할테니."


참고로 와이프가 내 핸드폰 몰래 다 뒤졌지만 증거 나온 건 없음. 하나씩 생각이 정리될 때마다 업데이트 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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