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새치기란 정당하지 않게 자기가 먼저 가거나 먼저 하거나 하려는 자가특혜제공의 꼼수다. 공중도덕의 관점에서 조잡하고 저열하며 천박한 몰양심적 사회악의 부스러기다. 사실 너그러운 마음으로 보자면 조금 늦어진다고 내가 큰 손해를 보는 것이 아니고 언쟁하기 귀찮아서 그냥 못 본 척 할 수도 있는 일이다. 젊어서부터 대중교통을 생활의 주된 교통수단으로 삼고 살아온 나는 근래 들어서 지하철에서 벌어지는 새치기의 대부분이 50대 이상에서 벌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사실은 50대가 된 내가 다소 누그러진 성깔을 보유하게 되었음에도 참을 수 없이 화가 나는 순간을 제공하고 있다.
지난 일요일, 합정역에서 환승을 위해 지하철을 기다리며, 급할 것 없는 느긋한 마음으로 줄을 섰다. 방금 전 기차가 떠난지라 내가 줄의 가장 앞자리였고, 나는 오른쪽 팔꿈치를 스크린도어에 붙이고 모로 서서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곧 내 뒤-모로 서 있었으므로 내 왼쪽 옆으-로 내 또래의 두 여자가 줄을 섰는데, 묘하게 신경이 쓰였다. 그들이 슬금슬금 사선으로 움직이면서 문이 열리는 정중앙 포인트까지 직선거리를 좁혀나가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이대로 문이 열리면 그들이 나보다 먼저 전철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나는 그들이 내 시선을 느낄 때까지 쳐다봤지만, (“무슨 의도인지 아직은 모르겠으나 새치기를 하려는 것이라면 포기하라”는 유순한 경고) 그들은 저들끼리 떠드느라 나를 신경 쓰지 않았다. 나는 폰과 왼쪽의 동향에 감각을 분산시켰다. 그리고 나도 슬금슬금 움직여서 내 우선권을 회복했다...고 생각한 찰나, 그들이 (정확히 얘기하면 둘 중 한 사람이 주도하고 있었는데) 다시 슬금슬금 직선거리를 좁히기 위해 문 쪽으로 움직였다. 어떤 의도도 없는 무심한 움직임인 것처럼 주도면밀하게 움직였다(고 나는 느꼈다). 그녀의 의도가 명확해졌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전철이 도착한다는 음이 울렸다. 나는 왼팔로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 “줄 서세요!”
그녀를 막아서고 기어이 나는 그녀보다 먼저 전철 안으로 들어갔다. 그랬더니 뒤따라오던 그녀가 나에게 말했다. “먼저 가세요. 내가 못 가게 했어요?” 내가 말했다. “나보다 먼저 들어가려고 해서 막은 거잖아요.” 그녀가 웃는다. “그래요? 호호호.” 그리고 내 곁을 떠나갔다. 동행이던 여자는 우리의 짧은 대화 중에 이미 어디론가 없어졌다.
지하철을 타고 다니다 보면 나를 화나게 하는 여러 ‘빌런’들이 있다. (내가 말하고 싶은 빌런이란 유튜브에 “지하철 빌런”을 검색하면 나오는 그런 부류가 아니다. 그것은 대도시를 살다 보면 만날 수 있는 마음이 아픈 구성원들일 뿐 나를 화나게 하지는 않는다.) 한동안 지하철에서 고성으로 아무나 야단을 치던 할아버지들이 많았고(요즘은 줄었다. 무슨 이유일까?), 지금도 여전히 새치기나 ‘길막’을 하는 할아버지들이 많다. 길막이란 네가 어디 내 앞을 가로막느냐!는 듯이 사람들의 흐름과 무관해도 뻔뻔하게 자기 갈 길을 가는 것을 말한다. 은퇴 전에 사회적 지위가 조금 있었을까? 공중도덕보다 자기 위신이 더 중요한 인간형인 듯 하지만 그런다고 위신이 생기지 않으니 오히려 체면이 상하는 빌런이다.
할머니들도 새치기 엄청 많이 하지만 할아버지들과 양상이 다르다. 마치 합정역의 그녀처럼 안 하는 척 하면서 호시탐탐 한다. 특히 지하철에서는 빈자리 쟁탈 때문에 더욱 기승이다. 상대적으로 ‘길막’은 할머니들에게서 거의 보이지 않는데, 길막이란 것이 원래 대놓고 해야 하는 것이라서 그런 것 같다.
이 날과 유사한 경우가 신도림역에서 평택 가는 전철을 기다릴 때도 있었다. 그녀는 흰머리가 절반인 할머니였는데 내가 이상한 낌새를 포착하고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보자 갑자기 “아이고, 허리가 아프다.” 하면서 허리를 굽혔다 폈다 하면서 체조를 했다. 마치 새치기 같은 건 알지도 못할뿐더러 몸이 아플 뿐이라며 번명하는 것처럼 내 옆에서 계속 허리를 굽혔다 폈다를 반복했다. 허리가 아프다면서 이렇게 허리를 많이 움직이다니... 그때는 솔직히 안쓰러운 마음이 생겼다. 그러나 합정역의 그녀에게서는 전혀 안쓰러운 마음이 생길 수 없었다. 그녀가 나와 동년배이기 때문이다. 동년배에게 유대감은커녕 더 큰 분노가 일다니 왜?
언제부턴가 성별과 세대가 갈라져 혐오가 커지는 현상을 본다. 험오라는 것이 자이니치(在日)를 대상으로 못된 일본인들이나 하는 것으로 알았던 나는 일상적이고 광범위하게 분노와 경멸을 뿜을 수 있다는 것에 놀랐고, 나는 여성이고 앞으로 노인이 되는데 여성혐오와 노인혐오가 커지는 것에 큰 슬픔을 느낀다. 지하철에서 자리를 먼저 차지해보겠다고 조잡하게 머리를 굴리는 당신 때문에 노인혐오가 부추겨질 거라고, 나까지도 동년배라는 이유로 그녀와 동류의 인간으로 보이고 싶지 않다고, 그녀에게 마구 화를 내고 싶다.
물론 혐오라는 것이 지하철 새치기 차원에서 분석되거나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호통치는 노인이 무력해졌듯이, 당신이 아무리 시치미를 떼려 해도 조잡한 의도는 다 드러날 것이다. 존중받는 늙은이가 되고 싶으면 공중도덕부터 지킵시다. 늙은 사람들과 늙어가는 사람들, 새치기를 하지 맙시다, 증말루!!! 지하철에서 앉아 가는 편안한 30분 때문에 혐오스런 30년을 만들지 말자고요.
(적당하게 첨부할 이미지를 찾다가 언젠가 찍었는지 저장했는지 모를 정말루 사진을 붙입니다. 절실한 호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