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나는 다큐멘터리 감독입니다. (“입니다”라고 하기에는 지속성이 떨어지지만 아예 접었다고 과거형으로 쓰기는 싫으니, “이었던 적이 간혹 있습니다”라고 하겠습니다. 해 온 햇수에 비해 작품 수가 현저히 적고 도중에 한눈을 판 기간이 상당하다는 뜻입니다.)
다큐멘터리를 만들다가 “웰다잉”을 다루겠다니, 웬 극적인 전환이냐 할 수도 있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다큐멘터리는 영상제작이라는 기술을 가지고 자신의 사회적 정서적 관점을 표현하는 것이고, 웰다잉이라는 생애주기의 관점을 영상제작이라는 기술로서 구현하고 싶었습니다. 지금의 시대는 영상언어의 시대니까요. 새로운 주제를 가지게 되었을 뿐 활동의 내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코로나팬데믹의 광풍 속에 도도하고 과감하게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그 생각은 철저히 틀렸습니다. 무슨 주제를 다루든 간에 ‘사업’이란 것은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일과 완전히 다른 원리로 이루어지는 것이었습니다. 적응하려고 기를 쓰다가 온갖 실패에 절여지면서 포기하기 직전의 상태로 헤롱거릴 때, 나에게 한 가지 제안이 찾아왔습니다. 내 예전 작품을 상영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극장이라는 공간에 대한 사유로 시작한 그것이 “마침 내 극장, 사양되는 것들을 위하여”라는 프로젝트입니다.
돈 벌자고 시작한 사업은 나에게 돈을 가져다주지 않았습니다. (얼마 전 농담처럼 “마침 내 극장”의 기획자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예전에는 가난했지만 품위가 있었는데, 사업이란 걸 하다 보니 가난은 여전하고 품위는 사라졌다”고요. 얼굴은 웃고 마음은 찢어졌습니다.) 어차피 돈이 안 될 것이라면 재미있는 것이 좋고, “마침 내 극장” 프로젝트는 사업보다 훨씬 재미있었습니다.
그것이 10월 초에 서울의 “공간 일리”라는 곳에서 열립니다. 이 소식을 근거리의 몇 명에게 알리다가 문득 깨달았습니다. 웰다잉이 내 머릿속에 싹트기 전에 만들어진 내 작품들 속에서 발견한 죽음의 관점을요.
<편지(2014)>는 대놓고 누군가의 죽음에서 비롯한 작품입니다. 웰다잉을 말하며 다니기 시작하면서 웰다잉이란 누군가의 죽음으로부터 야기되는 지극한 후회를 줄이기 위함이라는 것을 역설하곤 했습니다. 주로 남은 자들을 위한 웰다잉이지요. (이전 글인 “늦기 전에 말하세요” 같은 것들입니다.) 그런데 가족과 같이 내 삶이 깊이 침윤된 소중한 사람이 아니라 생면부지의 사람의 죽음에서도 지극한 후회가 생기기도 합니다. 그 후회는 사회적 의미를 가지기 십상이고요. 열아홉 살에 결혼하면서 한국으로 온 베트남 소녀의 죽음처럼요. 그 죽음의 계기는 뜻밖의 이정표를 세우기도 할 겁니다.
<192-399:더불어사는집 이야기(2006)>는 공간을 죽이고 살리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공동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영화에 대해 설명하려고 생각하는 순간 마음이 무거워지는 이야기입니다. 복잡한 이야기보다 명확한 이야기를 하자면, 공간은 무생물이 아니라 생명처럼 살고 죽는 유기체라는 것입니다. 분양률이 떨어지고 공실률이 올라간다는 뉴스가 심심찮게 나오고 있는 요즘, 부동산 가치로서가 아니라 살고 죽는 유기체로서 공간을 어떻게 사람들이 사용할 것인지를 질문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 하나, 공간 활용을 구상하기 위해 이 프로젝트가 열리는 세검정의 “공간 일리”를 찾은 첫 날, 세검정이라 불리는 동네를 돌아다녔습니다. 그리고 오래된 것들로 가득한 이 동네의 생동감이 흥미로웠습니다. 아마도 이것이 노인들의 삶을 채우는 오래된 것들이 어떻게 활력과 생기를 만들어내는지에 대한 힌트를 줄 것 같습니다.
(위 작품들 외에 마침 내 극장에서 상영되는 다른 작품 목록입니다.
<퍼니스트 홈비디오, 코리아> (김국희)
<뼈와 살을 가진 유령> (박명훈)
<오류시장> (최종호)
<Ms.Kim>, <Mr.Park> (최주연)
상영 일정 등 상세는 "마침 내 극장"의 인스타그램을 참조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