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나는 작년 10월 31일 이후 딱히 해야 할 일이 없었다. 그래서 불붙은 듯이 브런치에 글을 올리게 될 줄 알았다. 할 일도 없는데 밀린 글이나 써야지, 정말 그럴 줄 알았다. 그러나 갑자기 내 친구가 죽고, 외삼촌이 돌아가시고, 친구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일이 두 달 새 일어났다.
나는 머리가 아주 복잡해졌다. 그것은 웰다잉을 말하고 싶은 나에게 좋은 글감이 되어주겠지만, 당분간은 글쓰기를 중단하고 지냈다. 이제 새해가 되어 쉬운 것부터 쓰자고 생각했다. 쉽다는 것은 여러 의미가 있을 수 있겠지만, 쓰기 ‘쉬운’ 것부터 말이다.)
오늘 전철 안에서 본 어떤 게시글 중에서 이런 것을 발견했다. 4050세대가 젊은 사람들처럼 옷을 입고 다니면, 안 어울린다, 아직도 어린 줄 안다, 추잡하다, 늙어서 진짜 주책이다, 나잇값 못한다, 는 말을 듣는다고. (요즘 “영포티”라는 말이 유행하던데, 정확한 뜻을 잘 모르겠지만 조롱하는 의미로 쓰이는 때가 많다는 것은 안다.)
웃음이 터졌다. 내가 바로 그렇게 입고 다닌다. 그런데 안 어울린다고 하는 것은, 뭐, 어쩔 수 없지만 추잡하다느니 주책이라느니 나잇값 못한다고 하면 화가 날 것 같다.
내가 그렇게 입고 다니는 이유는 젊어 보이고 싶어서가 아니다. 나는 근 이십여 년 옷을 사지 않고 살았다. 물론 그 전에도 옷을 사는데 돈이 많이 들지 않았다. 어려서는 “티셔츠 쪼박지”만 입고 다니는 나에게 옷을 사주고 싶어 하는 엄마가 있었고, 패션에 관심이 많아서 옷을 자주 사고 나에게 물려주기도 하는 언니가 있었고, 어른이 되어서도 희한하게 나에게는 불쑥 옷을 주는 사람이 종종 있었다. (옷이 필요한 사람으로 보였나?) 워낙 유행에 민감하지 않은 데다가 체형이 크게 변하지 않아서 새 옷을 살 필요가 막 생기지 않았던 데다가, 남이 주는 옷이라고 꺼림칙하게 느끼는 예민함도 없어서, 갖고 있던 옷만으로 계속 살 수 있었다. 요즘 옷들은 튼튼해서 잘 해지지 않으니 나는 죽을 때까지 옷을 더 사지 않아도 되겠다 싶었다. (빤쮸와 양말만 가끔 사면 된다.) 많이 벌지 못하는 살림살이에 이런 성향은 큰 도움이 되었다.
내가 지금 입고 다니는 것이 젊을 때 입던 것들이라는 게, 필요 없는 것을 사지 않고 살아가는 일이 추잡할 일은 아니다. 대개 나잇값이라고 하면 세간의 시선을 말한다. 이것이 사회적 책임을 말하는 것이라면 서로 계속 환기시켜줄 필요가 있겠지만 그게 아니라 삶의 형태, 말하자면 결혼적령기라든가 집을 산다든가 하는 것과 같은 사는 모양새에 대한 기준이라면 참 성가신 것이다. 어쩌라고!!! 내가 오래된 옷을 입는 것은 ‘나다운’ 생활에서 만들어진 자연스러운 습관이고 ‘나잇값’과는 상관없는 일이다.
며칠 후 어떤 책을 보았는데 일본의 [마녀배달부 키키]의 원작 작가가 자기답게 사는 법을 말하는 내용이었다.([딸기색 립스틱을 바른 에이코 할머니], 가도노 에이코, 지식여행) 나도 할머니가 되어가는 데다가 빨간색과 주황색 같은 계열을 좋아하는지라 궁금해서 빌려온 책이었다.
그녀는 안경테도 빨간 색, 주황색을 여러 개 갖춰놓고 기분에 따라 쓰는데, 안경테는 부러웠지만 나는 이렇게 살지 못한다. 자기답게 사는 것을 추구하고 색깔 취향도 비슷하지만 에이코 할머니의 쇼핑 습관은 나와 사뭇 다른 차원, 말하자면 나로서는 불가능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고급 테를 여러 개... 그러나 ‘나답게’의 방법은 사람 수만큼 있는 거니까!!!
갑자기 궁금해져서 다른 문화권에서 나잇값을 어떻게 말하는지에 대해 제미나이에게 물어봤다. 영어로는 철 들으라든가(Grow up) 성숙하다든가(Be mature) 하는 표현을 쓰고, “나잇값”에 일대일로 대응하는 명사는 없다고 한다. 아마도 직설적으로 “Act your age!(나이에 맞게 행동해라)”가 우리 말의 나잇값을 가장 비슷하게 담는 문장이 아닐까 한다. 일본어로는 “年相應(としふさおう)” 라고 정확하게 매칭되는 단어가 있다. 중국어로 물어보니 우리나 일본처럼 정확하게 매칭되는 단어는 없다고 한다. 영어처럼 철들라든가 하는 문구가 있을 뿐. 왜 한국과 일본은 이렇게 나잇값에 연연할까?
나잇값, 그거 스스로 열심히 살아왔다고 자부하며 늙은 사람의 나잇값은 비싼 걸로 하자. 그런 면에서 나는 “사장님이 미쳤어요 재고떨이” 수준이라 할 말이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