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왜 이렇게 성장이 더딜까요?
글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2월 모일. ‘이런 내용의 글을 써도 되겠냐?’는 장산(가명)님의 메시지를 받았다. 느낌표보다 물음표가 많이 생기는 글이었다. 글보다 말이 나을 것 같았다. 뭘 쓰겠다는 건지, 글쓴이의 의도가 궁금해서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대화를 하면서도 무슨 내용을 어떻게 쓸 건지, 그래서 독자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게 뭔지 확 와닿지가 않았다. 어쩐다. 이럴 때는 나도 가이드가 쉽지 않다. 무엇보다 글쓰기에 대한 부족함과 부담감을 동시에 느끼는 이야기가 계속 이어졌다. 내가 말했다.
“글 쓰는데 굉장히 큰 부담을 느끼시는 것 같아요. 왜 그러세요? 지금도 충분히 잘하시는데...”
“쫓기는 기분이 들어요.”
“(너무 놀라서) 네? 쫓겨요? 왜요? 누가요? 뭐가 쫓아오는데요?”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 잘하고 싶어서 그런 것 같아요. 저는 왜 이렇게 성장이 더딜까요? 남들은 다 잘하는 것 같은데, 왜 저만 이렇게 느릴까요?”
“이야기 들으니까 얼마 전 제가 본 기사 내용이 생각나요. 운동 신경이 없는 사람이지만 운동하는 게 너무 좋다고. 그래서 잘하고 싶은데 못한다고. 남들만큼 따라가려면 2, 3배는 더 노력해야 겨우 그만큼 할 수 있다고요. 그래도 운동을 하면 좋으니까, 계속하게 된다고요. 포기하지 않는다고요.”
“정말 제가 딱 그런 마음이에요.”
“글도 그렇지 않을까요? 남들은 일주일, 한 달 사이에 글 실력이 팍팍 느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아요. 그래도 포기하면 거기서 끝나는 거고, 계속 쓰면 성장하는 겁니다. 그 전환점이 언제인지는 사람마다 다 다르잖아요.”
“너무 정곡을 찔러 주신 것 같아요… 포기는 안 해요.”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계세요. 제가 욕심을 부려서 그렇지요.”
전화를 끊고 나서도 내가 대답을 잘한 건가 확신이 들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우장(가명)님도 비슷한 말을 한 적 있다. ‘아직도 기사를 어떻게 써야 할지 잘 모르겠다’면서 ‘전 모든 걸 느리게 배우나 봐요’라고. 이상했다. 싱어게인2 심사위원이었던 작사가 김이나씨가 충분한 실력을 갖추고도 자신 없어하던 뮤지션들에게 했던 말이 생각났다. “자신이 얼마나 잘하시는지 모르고 있는 것 같다”라는.
장산님도 그런 분에 가까웠다. 두 가지 점에서 그렇다. 일단, 자신의 생각을 문장으로 옮겨 쓴 것을, 편집기자인 내가 읽는데 어려움이 없다. 이 말은 즉 독자들이 읽는데도 어려움이 없다는 말이다. 또 다 읽고 나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즉,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이 뭔지도 충분히 알 수 있다. 한 마디로 글 쓰는 데 전혀 문제가 없다. 다만, ‘이것이 기사라고 부를 만한 글인가’, 이 질문 앞에만 서면 작아지곤 하는 장성님 같은 분들을 오랜 시간 동안 나는 많이 봐 왔다.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에서 나희도(김태리)의 딸 민채가 하는 고민도 장성님과 비슷했다. 발레를 그만두겠다는 딸 민채에게 희도는 “왜 발레를 그만두고 싶어?”라고 묻는다. 민채는 “열심히 해도 늘지 않으니까”라고 한다. 그때 엄마가, 희도가 말한다. “넌 실력이 이렇게 비탈처럼 늘 것 같지? 아니야, 실력은 비탈이 아니라 계단처럼 늘어. 이렇게. 그리고 사람들은 보통 여기, 여기, 여기에서 포기하고 싶어지지. 이 모퉁이를 돌아나가면 엄청난 성장이 기다리고 있을 텐데 그걸 몰라.”
계단식 성장을 말하는 민채 엄마 나희도.@JTBC그러면서 민채에게 생각해보라고 말한다. “발레가 좋아하는 이유가 칭찬받고 싶어서인지, 발레가 좋아서인지.” 그러면서 덧붙인다. “칭찬받는 게 좋았다면 그만둬도 돼. 발레가 좋았다면 다시 생각해봐”라고. 이 대사를 들으며 장산님이 떠올랐다. 그가 들어도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매일매일 운동하듯 매일매일 글 쓰면 실력은 는다. 결국엔 늘지만, 그 시점이 언제인가 하는 질문에는 정확히 답하기 어렵다. 나도 모른다. 누구도 모른다. 빨리 성장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도 자신의 성장을 의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정말 글쓰기의 내밀한 이야기는 아무도 모른다. 쓰는 사람밖에 모른다. 그걸 모른 채 누군가와 비교하는 일처럼 자신을 초라하게 만드는 일은 없다. 나는 글을 쓸 때 스스로 초라함을 자처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나 자신이 생각하는 지금 내 모습이 제일 중요하다. 나에게 없는 재주를, 남에게 찾아봐야 소용없다. 그럴 시간에 나에게 있는 재주를 하나라도 더 귀하게 여기는 게 도움이 된다는 걸, 나도 그 시기를 통과하고 나서야 알았다.
내 고민은 또 있었다. 잘 쓰고 싶어서 시작한 일인데 할 때마다 좌절감이 든다면, 이걸 계속하라고 하는 게 맞는 걸까. 글쓰기의 즐거움을 내가 오히려 뺐고 있는 건 아닐까. 장산님의 답답한 마음이 꼭 내 잘못인 것 같았다. 굳이 이곳이 아니어도 즐기면서 글을 쓸 수 있는 곳은 많은데... 생각이 눈처럼 날렸다. 그때 내 눈에 띈 게 있었으니 바로 산이다. 더 정확히는 잎 떨군 나무 사이로 훤히 드러난 산 길.
산에 자주 다니는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겨울 산은 굳이 길을 찾지 않아도 길이 훤히 보인다. 특히 내가 다니는 수리산은 작은 갈래 길이 여럿이다. 같은 산을 걸어도 매일 코스를 바꿀 수 있다. 특히 여름에는 잘 보이지 않는 길이 겨울에는 속을 훤히 드러내며 어서 제발 밟아 달라고 온몸으로 나를 유혹한다. 반면 여름 산은 길을 꽁꽁 숨겨 놓는다. 숲이 무성한 길을 걸을 때면 내가 왔던 길이 맞는지 헷갈린 적도 여러 번이다. 무성한 풀잎과 가지를 헤쳐야 겨우 길이 보인다.
글쓰기에도 계절이 있다면 장산님은 지금 여름 산을 걷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어디로 갈지, 내 길이 어디인지 무성한 잎에 가려져서 보이지 않는 그런 상태 말이다. 그런데 어디, 겨울과 여름 같은 날만 있었을까. 봄과 가을 같은 날도 분명히 있을 거다. 지금은 작은 게 크게 보이는 그런 마음 상태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 말을 꼭 해주고 싶다. 자연은 정직하다. 여름 지나면 반드시 겨울이 온다. 글쓰기도 정직하다. 글은 꾸준히 쓰는 사람을 배신하지 않는다. 장산님도 무성한 숲을 헤치고 나와 훤히 드러난 겨울 산 길을 마주 하게 될 거라는 말이다. 물론 쓰다 보면 여름의 시절은 또 올 테지만 그때는 좀 덜 쫓기는 기분이었으면 좋겠다. 꾸준히 계속 쓰면서 여름을 맞이하는 마음이 점점 덤덤해지길 바란다. 괜찮다면 그 길을 나도 천천히 같이 걷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