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도 다시 한번
[못 다한 편집] 감상만 하면 안 됩니다
정여울 작가가 <끝까지 쓰는 용기>에서 '저에게 재능이 있다면 감동하는 재능이 아닐까 싶어요. 매우 쉽게 감동하고 아주 작은 일에도 웃고 우는 예민한 감수성은 살아가는 데는 불리하지만 글을 쓰는 데는 유리해요'라고 했을 때 "맞지 맞지" 하며 고개를 끄덕거리다가 이내 "그렇지만"이라고 토를 달게 되었어요. 글을 쓰는 데는 유리할지 모르겠습니다. 사소한 것을 사소하게 보지 않고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는 것은 굉장히 큰 재능이지요. 그런 글을 보게 되면 '어? 왜 난 그런 생각을 못했지?' 하고 반성도 하게 되니까요.
하지만 글을 '보는(검토하는)' 사람의 입장이 되면 상황은 전혀 달라집니다. 쉽게 감동하고, 감상하듯 글을 보면 그 글이 가진 문제점을 발견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생기거든요(물론 굳이 문제점이 없는 글도 많습니다). 굉장히 좋은 여행지를 잘 소개하고, 그 공간에 숨은 이야기들을 세세하게 썼다고 그냥 기사로 채택하면 안 돼요. 최소한 기사가 되려면 적어도 언제 다녀온 일을 쓴 것인지 확인해야 합니다. 겨울에 보고 느꼈던 일을 여름철에 내보내면 좀 곤란하거든요. 여행기가 아니라 여행 기사라 그렇지요. 기사는 '시의성'이 중요합니다. 글과 기사에는 이런 차이가 있어요.
남편이 "어디 가서 노래를 하지 말라" 할 정도로 대단한 음치인 분이 마을 합창단에 도전한 이야기는 그 자체로 훌륭한 사는 이야기가 되지만, 이 역시 그저 "좋은 글"로만 평가해서는 안 됩니다. 마을 합창단의 정식 명칭이 뭔지, 주관하는 곳이 어딘지, 오디션 일자는 언제였는지, 기사화해도 좋은 이야긴지 주최 측에 확인했는지 따져봐야 합니다. 기사 안에 언급한 사람들의 개인적인 사연도 기사화해도 되는지 참가자들의 동의를 구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그래야 기사가 나가고 난 뒤 뒤탈이 없습니다. 제가 남의 글을 보는 일을 하면서 좋은 글이라고 감상만 하기 어렵다고 한 이유를 이제 아시겠지요?
그렇다고 팩트 확인만 앞세우고 옳고 그름만을 따지는 습관도 마냥 좋은 건 아닙니다. 그런 태도로는 흙속의 진주를 발견하지 못할 때가 많아요. 무슨 일이든 '융통성'이라는 게 있습니다. 오디션 프로그램 <싱어게인> 심사위원들이 '어게인 카드'를 써서 무명의 실력자에게 한번 더 기회를 더 주는 것처럼, 가능성을 보고 판단하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점이 더 궁금하니 그 내용을 다시 써달라고 한다든가, 기사가 되기 위해 편집기자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내용을 글쓴이에게 직접 물어서 보강할 때가 그렇지요.
제가 만난 동료 중에 글의 장점과 글 쓴 사람의 장점을 잘 발견하는 재능을 가진 이가 있어요. 다른 사람이 쓴 글을 읽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이런 태도가 저는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동료에게 "(기사로 채택하는) 글은 감상하듯 보면 안 됩니다"라고 말해주었어요. 글을 감상하듯 보는 습관이 들면 기사가 되기 위해 세심하게 확인해야 할 일들을 놓칠 수 있기 때문이에요.
훈련하듯 글을 봐야 해요. 국가대표 선수도 그 기량을 유지하기 위해 매일 정량의 훈련을 하는 것처럼 편집기자 역시 매일 훈련하듯 글을 보면서 자기만의 편집 스타일을 만들어 나가는 게 중요합니다. 그래야 글의 완결성이라는 목표에 조금씩 다가갈 수 있어요. 편집기자뿐만 아니라 글을 쓰는 사람들도 이런 습관을 가지면 좋습니다. 훨씬 더 나은 글을 쓸 수 있으니까요. 이런 과정을 통해 잘 편집된 글을 보는 게 저는 참 좋아요. 더 많은 사람들이 이 글을 읽었으면 하고 바라게 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