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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경 Apr 16. 2024

엄마에게 '글쓰기'는 무엇일까요

편집기자로 일하면서 내가 만난 글 쓰는 엄마들

“오랜 시간 '글을 쓰고 싶은 엄마'들을 만나 오신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민들레 잡지 편집장이 말했다. 당연히 내가 잘 쓸 수 있는 내용이라고 생각해서 두 번 고민도 하지 않고 쓰겠다고 했다. 내가 일하면서 만난 '글 쓰는 엄마들'은 셀 수 없이 많으니까. 그런데 그게 문제가 되었다. 선택지가 너무 많으면 하나를 고르기가 어려운 것처럼 막상 원고를 쓰려고 보니 막막했다. '이 많은 사례 중에서 무슨 이야기를 하지?' 며칠을 고민하고 썼다 지웠다를 반복했다. 멀리서 찾을 게 아니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쓰면 되겠다 싶었다.


내가 만난 글 쓰는 엄마들


나는 2003년부터 언론사 편집기자로 일하고 있다. 대부분의 업무 시간을 시민기자가 보내는 온 글을 판단하고 검토하는 데 쓴다. 소재가 새롭거나, 왜 썼는지 이유가 분명하거나, 독자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거나, 경험에서 깨달은 내용이 공감이 가거나, 통찰과 성찰이 담긴 글이거나 하는 등의 이유로 기사가 될 만한 내용인지 살핀다. 1차로 판단이 끝나면 완성도 있는 글로 다듬기 위한 2차 작업이 시작된다.



오탈자, 비문 등을 잡고, 긴 문장은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짧은 문장으로 고쳐 쓰고, 문단을 나누고 소제목을 붙이고, 사진을 넣고, 제목을 뽑는다. 최종적으로 기사로 내보내기 전에 미리보기로 한 번 더 확인하는 과정을 거친다. 채택된 기사는 포털 사이트와 SNS 등에 공유되어 다수의 독자들을 만난다. 이 과정에서 때로는 사실 관계를 한 번 더 확인하거나, 내용을 보강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일을 하면서 가장 많이 듣게 되는 질문은 "이런 것도 기사가 되나요?"였다. 기사를 처음 쓰는 사람만 ‘몰라서’ 이런 질문을 하는 건 아니었다. 자신이 쓴 글이 기사가 된 경험이 많은 사람들도 자주 고민했다. '이런 내용도 기사가 될까?'


그래서 생각했다. ‘시민기자가 기사를 기획할 때부터 기사가 되는지 아닌지를 스스로 판단할 수 있고, 그 주제에 맞게 기사를 쓸 수 있다면, 시민기자로서 자생력을 가진다면 좋지 않을까? 지금 보다 기사 쓰는 일이 즐겁지 않을까? 잘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그래서 지난해 7월부터 '시민기자 그룹'이라는 글쓰기 모임을 만들어서 운영하고 있다.


취향이 비슷한, 쓰고자 하는 주제가 비슷한 시민기자들이 함께 글 쓰는 모임이다. 정기적으로 온라인 회의 줌을 통해 만난다. 참가자들은 돌아가면서 자신이 쓰는 글의 주제를 공유하고 서로의 의견을 듣는다. 편집기자인 내가 참여하는 그룹도 있고 아닌 그룹도 있다. 참가한 그룹에서는 그 자리에서 의견을 주고, 그렇지 않은 그룹은 회의 내용을 보고 필요하면 적절하게 의견을 전한다. 그렇게 주제가 확정되면 마감 시간까지 글을 보낸다.


이 그룹 멤버들 대부분이 바로 '엄마'들이다. 그동안 운영했거나 운영하고 있는 그룹 이름을 보면 이들이 쓰고 싶은 글을 알 수 있을 것 같아 잠깐 소개하면, '대체 왜 하니?'는 초4에서 중3까지 10대 사춘기 아이들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엄마 시민기자들이 쓰는 콘텐츠였고, ‘낀40대’는 40대가 된 X세대들이 불혹의 나이에도 여전히 흔들리고 애쓰며 사는 모습을 글로 썼다.


‘두번째독립50대’는 ‘20대의 독립과는 다른 의미에서, 새롭게 나를 찾아가는 50대 전후의 고민’을 쓰고, ‘40대챌린지’는 '일상을 풍요롭게 만드는 노력, 도전하는 40대의 모습'을 다룬다. ‘사춘기와갱년기’ 그룹(이 모임에는 아빠도 있다)은 '요즘 사춘기 아이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갱년기 부모들의 사는 이야기'를 고민하고, ‘워킹맘의부캐’는 '일과 육아에서 한 발 떨어져 나를 돌보는 엄마들의 부캐(부캐릭터) 이야기'를 쓴다.


엄마들은 글을 쓰면서 가족과 자신을 이해하는 폭을 넓혀 갔다. 함께 쓰는 행위를 통해 세상과 소통했다. 대체 왜 먹는지 이해할 수 없는 ‘불닭볶음면’을 한 젓가락 먹어 보면서 아이들 마음을 헤아려보고, “친구들과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먹고 오겠다”는 아이를 진지하게 관찰하며 어린이의 마음으로 편의점을 탐문하고 글을 쓴다.


“(편의점) 그곳은 진정한 '공존의 공간'이었다. 편의점은 어린이라고 배척하거나 혐오하지 않는다. 노인이라고 무시하지 않는다. 작업복을 입어도, 양복을 입어도, 치마를 둘러도, 어떤 차별과 평가도 하지 않는다. 편의점에선 누구든 필요한 물건을 사는 사람들일 뿐이다. 사회 구성원 모두가 공평하게 존중받는 그곳...(하략)” - "편의점에서 컵라면 먹고 올게" 이 말에 꽂혔다(http://omn.kr/1w1wj), 조영지 시민기자 글 중 일부


남편과 아이에서 벗어나 자신을 위한 ‘딴짓’을 시작하며 엄마 이전의 나, 자신이 몰랐던 새로운 나를 발견하기도 한다. 테니스에 도전하고, 피아노를 배우고, 식물을 키우고, 직접 옷을 만들거나, 그림책 스터디에 빠져든 이야기를 읽노라면 엄마가 아닌 자신의 이름을 가진 고유한 한 사람을 대면하게 된다. 간절하거나 뜨거운 열정이 느껴지는 글을 볼 때면 울컥하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하루 종일 입을 닫고 있다가 테니스 코트에 가서 그동안 못 냈던 소리를 낸다. 그렇게 소리를 내고 땀을 흘리고 나면 온몸이 개운하다. 테니스를 하는 시간은 누구의 엄마도, 아내도 아닌 그저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이다. '결국은 버티는 사람이 이기는 거랬지. 버티고 버텨 나에게 오는 모든 공을 탕탕 쳐 내고야 말겠어' 하고 다짐한다." - 테니스 배운 지 두 달, 남편의 폭탄 선언(http://omn.kr/1xufu), 김지은 시민기자 글 중 일부


나를 찾아가는 글쓰기


엄마들이 나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만난 글쓰기를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나는 그것이 가끔은 기적이 아닌가 싶다. 어느 날 갑자기 생긴 기이한 일이거나 불가사의한 일이 아닌, ‘내가 만든 기적’. 그래서 더 값진 행위. 그리고 나 역시 그 기적의 당사자다.


글로 만난 세계. 새로운 인연.


경기도에서 서울로 왕복 3시간 장거리 출퇴근 직장맘이 글을 쓸 시간을 서너 시간씩 턱턱 내기란 사치에 가까웠다. 애도 보고 살림도 하고 나도 사람인지라 쉬기도 해야 하니까. 그래도 쓰고 나면 좋았기 때문에 쓰는 일은 놓지 않았다. 짬짬이 쓰고 또 썼다. 지하철에서 쭈그려 앉아 쓰고, 쓸 수 없으면 메모하고, 점심시간에 쓰고, 퇴근하고 잠을 줄여 썼다. 쓰고 싶은 날은 어떻게든 쓰고 잤다. 그래도 피곤을 몰랐다.


“그렇게까지 써야 할 이유가 있나요?” 누군가 이렇게 묻는다면, 처음엔 오로지 쓰는 게 재밌어서 썼다. 하지만 쓰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쓰는 행동에 다른 이유들이 생겨났다. 내가 쓴 글이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되고, 도움도 되는 것 같았다. 또 나를 활기 있게 만들었다. 내가 이런 일도 할 수 있구나, 싶은 성취감도 생겨났다. 그런 이유들이 계속 쓰게 했다. 어떤 이야기를 쓰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까 하는 생각이 많아지면서 두 번째, 세 번째 책도 출간할 수 있었다.


뭔가를 바라고 쓴 글이 아니었다. 오히려 덜 바라기 위해 쓴 글들이 더 많았다. 이대로도 충분히 괜찮다며, 공허하고 불안한 마음을 쓰면서 달랬다. 아이 교육 문제에 있어서는 아이 뒤에서 기다려 주려고 고군분투하는 걸 썼고, 일을 더 재밌게 하고 싶고 잘하고 싶어서, 소진되고 싶지 않아서 내 일을 기록하는 작업도 계속했다.


쓰는 것은 성찰이고 다짐이었다. 쓴 대로 살고 싶으니까 실천하려고 애쓰게 되었다. 실천하지 못하는 일들은 또 그런대로 글감이 되고,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내 마음을 단단하게 만들어줬다. 글쓰기의 이런 효용을 알고 나니, 글쓰기라는 수레바퀴 속에 나를 두는 일이 자연스러워졌다.


계속 써서 작가가 된 엄마들


그러나 안타깝게도 많은 엄마들의 글쓰기는 유효기간이 짧았다. 일의 순위에서 밀리는 것은 언제나 글쓰기다(물론 나도 여전히 종종 그렇다). 버지니아 울프가 여자가 글을 쓰려면 자기만의 방과 돈(1년에 500파운드, 지금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약 2200만 원)이 있어야 한다고 했지만, 그로부터 거의 100년이 지난 지금 그걸 가진 엄마들이 얼마나 될까? 나는 여기에 가사분담 한 가지가 더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데... 이 조건이라면 글 쓰는 일은 아마 엄마들의 삶 속에서 더 멀어질지도 모르겠다.


미취학 아이들 둔 엄마들의 글은 아이의 컨디션에 따라 글쓰기가 시작되었다가 중단되기 일쑤였다. 취학한 아이를 둔 엄마들도 글쓰기보다 자녀 교육 문제에 신경을 써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고등학교 이상 아이들을 키운 엄마들이라고 글 쓸 시간이 많아지는 것도 아니었다. 경력단절 기간이 끝나고 일을 다시 시작하는 경우도 있고, 자신을 비롯한 가족들의 건강 문제로 돌봄의 시기를 겪어야 하는 이들도 꽤 있었다. 한 마디로 글 쓸 시간이 허락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쓰는 일을 포기하지 않을 때 엄마는 때로 작가가 되기도 했다. 고등학생 아들이 야자 대신 저녁밥을 차리는 이야기를 쓴 배지영 작가(대표작 <소년의 레시피>)가 그렇고, 결혼과 출산으로 일을 그만두고 주부로 살다 ‘오십이 다 된 나이에도 여전히 모르는 게 많고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를 유쾌한 필치로 적어 내려간 문하연 작가(대표작 <명랑한 중년 웃긴데 왜 찡하지?>)도 그렇다. 나이 들면 즐거운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막상 그 나이가 되어보니 재밌는 일도 많더라며 ‘단단하고 행복해지는 중년의 일상’을 기록한 전윤정 작가(대표작 <나이 들면 즐거운 일이 없을 줄 알았습니다>도 있다.


이 외에도 내가 일일이 적지 못했을 뿐 수많은 작가들이 있다. 그들이 인생 계획에 없던 기회를 만나 새로운 경험을 만들어 나갈 수 있는 것은 계속 썼기 때문이라는 걸 나는 너무 잘 안다. 한번 쓰고 마는 사람보다 10번 쓰는 사람이 발견될 확률이 훨씬 놓으니까. 계속 쓰다 보면 결국은 발견된다.


당신 글의 처음 독자이고 싶다


나는 쓰면서, 그리고 쓰는 사람들을 보면서 이 일이 개인의 성취로만 끝나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몇 년 전 회사에서 주최한 내부 시상식에서 두고두고 마음에 남을 장면 하나를 만났기 때문이다.


3년 전의 기억이지만,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일이지만, 바로 어제 들은 일처럼 생생하다. 그날 상을 받은 엄마 시민기자는 당시 초등학교 5학년 아들과 함께 왔다. 사회자가 아이에게도 수상 소감을 물었는데 마치 준비했다는 듯(표정은 전혀 그렇지 않았지만) 이렇게 말했다.


"글 쓰고 상담하는 엄마의 꿈이 이뤄진 것 같아서 좋아요."


박수가 터져 나왔다. 나는 눈물도 찔끔 났다. 엄마의 꿈을 아는 아이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한 엄마. 멋지다는 말로도 부족하다 생각했다. 어느 대단한 시상식 수상 소감보다 빛났던 그날의 일이 아직도 잊히지가 않는다. 그 엄마는 바로 송주연 작가.


‘가정 안에서 평등이라는 가치를 실천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글이 되고, 내가 쓴 글로 주변과 세상이 미세하게나마 바뀌는 선한 영향력을 경험하게 되었다’라고 말했던 송 작가(대표작 <엄마로 태어난 여자는 없다>)는 지금도 자신의 전공 분야를 살려 쓰는 삶을 이어가고 있다.


내가 20년 가까이 만난 엄마들의 글에는 딱히 정해진 ‘범위’란 게 없었다. 매일 같이 ‘내가 써서’ 다른 고유한 이야기들이 쏟아졌다. 가족을 돌보느라 잃어버렸다고 생각한 ‘나를 찾고 싶어서’ 글을 쓰고, 결혼과 임신, 출산 그리고 육아 등의 생애주기를 겪으며 ‘성찰하고 배운 내용들’을 독자들과 나누고 싶어서 일상의 이야기를 써서 보냈다. ‘실수하고 실패한 이야기’일지라도 용기를 내서 쓰고 독자들과 공감하는 일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들의 글을 보며 나는 때로 글이 아니라 사람을 마주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많았다. “작가는 홀로 쓰고 독자는 고독 속에서 읽는다. 서로는 서로에게 미지로 남겨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밀한 관계가 구축된다”라는 대니 사피로(<계속 쓰기> 작가)의 말처럼, 항상 내게 자신의 세계를 활짝 열어 보이는 엄마들이 좋다. 반갑다. 안 보이면 궁금하고 기다려진다. 계속 보고 싶다. 그리고 기꺼이 그들이 쓴 글의 처음 독자이고 싶다.



- 노트북을 교체하면서 5년간 쌓인 데이터를 정리했다. 이 글은 2년 전엔 2022년 4월에 쓴 글이다. 잡지 <민들레>에 2022년 5월 20일에 실렸다. 내가 쓴 글을 다시 읽으면서 '쓰는 마음'을 다잡는다.


- 스스로 서서 서로를 살리는 교육을 여는 민들레 구경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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