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노타이틀

커튼콜도 찍지 말라는 연극 <맥베스>

아픈 등어깨 부여잡고 관람... 두 시간이 훌쩍, 마지막까지 연출된 장면

by 은경

무슨 마음이었는지 모르겠다. '연극 맥베스 모든 공연 매진... 추가 공연 결정'이라는 기사 제목을 보고 긴박감을 느꼈던 걸까(기사 보고 공연을 보러 간다는 걸 언론사에서 일하면서 이때 처음 경험했다, 책 <이런 제목 어때요?>에도 이런 제목의 효과가 실렸으니 참고하시길).


그때쯤이면 몸이 나아져서 재밌게 볼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가져보려던 것이었을까. 아니면 진짜 모든 공연이 매진인지 한번 확인하려 했을 뿐인데 남은 좌석이 있어서였을까. 홀린 듯 공연 예매를 눌렀고 좌석을 지정했으며 결제가 되었다. 이때가 공연 3주 전이었다.


아픈 동안 집에서 딱 일만 했다. 하루 9시간 근무에만 집중했다. 나머지는 다 스톱. 책과 관련된 글도 써야 하는데 쓸 수 없었다. 외부에 사람을 만나러 나가지도 못했다. 하나 잡은 약속을 잊어버리는 일까지 생겼다. 세상에나. 책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가던 길을 돌려 교보문고에서 책을 사서 인증샷을 보내주었던 선배인데... 어찌나 죄송하던지.


무리하면 아플까 봐. 아프면 또 일까지 못하게 될까 봐 그것만은 피하고 싶어서 조심해서 생활했다. 공연 날은 휴가를 냈다. 일 하고 서울까지 가려면 너무 힘들 것 같아서. 공연을 무사히 볼 수 있을까 걱정하며 서울로 향했다. 출퇴근하지 않는 것이 감사할 정도로 날이 더웠다. 퇴근 시간 무렵이라 그랬는지 사람이 많았다. 설렘 반 걱정 반으로 국립극장에 도착했다.

여기가 이렇게 예쁜 곳이었나. 해질 무렵이라 그랬는지, 오랜만의 외출이라 그랬는지, 참 예뻐 보였다. 내가 홀린 듯 공연 예매를 한 뒤, 친구가 내 소식을 듣고 공연을 예매해서 같이 보기로 했다. 비록 좌석은 떨어져 있지만. 대구 출장이 잡혔다고 하더니만 친구는 공연 시간에 겨우 맞춰서 공연장에 도착했다. 나였으면 못 왔다. 친구의 체력에 박수를.

포토월인데 이제 여기서 사진 찍을 체력도 없다.

공연 시작할 때 관계자가 말했다. 공연이 끝나고 커튼콜을 할 때도 핸드폰을 켜면 안 된다고, 사진을 찍어서는 안 된다고. 뭐 그렇게까지 할 일인가, 싶었지만 하지 말라는 건 안 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공연은 큰 기대를 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었는데 나는 예상보다 좋았다.


식상한 표현이나, 황정민이 황정민 했다. 영화 속 황정민 캐릭터를 다 합해놓은 듯했다. 원작 그대로가 아니라 현대적으로 변형을 했다고 하더니 그런 연출도 괜찮았다. 인터미션 없이 두 시간이 훌쩍 지나고 드디어 배우들의 커튼콜. 참지 못하고 핸드폰을 기어이 꺼낸 사람들이 있었다. 공연 관계자가 이를 쫓아다니면서 일일이 제지했다. 하지 말라는 건 안 해야 하거늘, 이거 원....


배우들이 한 명씩 인사를 하고 관객들은 환호하며 박수를 쳤다. 맥베스 황정민과 레이디 맥베스 김소진이 손을 잡고 무대 뒤편으로 향하는 마지막 장면에서 나는 난데없이 눈물이 났다. 무대 저 끝까지 간 곳에서 황정민이 뒤를 돌아보았다. 무대의 막이 내릴 때까지 어딘가를 응시했다. 커튼콜이 끝이 아니었다. 공연은 바로 이 지점에서 끝나는 거였다. 그러니 당연히 커튼콜에 사진을 찍으면 안 되는 거였다. 공연이 끝나지 않은 거니까. 그제야 공연 관계자의 안내가 이해되었다(오해해서 미안합니다).


내가 느낀 이 연극의 하이라이트는 이 장면이었다. 끝까지 관객을 혹은 무언가를 응시하는 황정민의 표정에서 나는 눈물이 터졌다. 왜 그랬는지는 알 수 없다. 갑자기 아픈 몸이 된 내가 서러워서였는지, 아픈 몸으로 걱정과 달리 무사히 공연을 봤다는 안도감이었는지, 이런 멋진 공연을 볼 수 있었던 기쁨이었는지, 욕망을 쫓다 뭐가 뭔지도 모른 채 미쳐 버린 맥베스가 안타까워서였는지.


음악회든 연극이든 뮤지컬이든 공연 중에 울어버리는 순간이 종종 있다. 그건 내가 그만큼 연주에, 공연에 몰입했다는 증거다. 연극 <맥베스>도 그런 공연 중에 하나로 남았다. 그래서 기어이 이 글을 쓴다. 기억해두고 싶어서. 이 기분, 이 감정, 이 느낌을.


약 먹은 지 열흘. 팔이 타들어가는 증상은 줄었다. 등통증도 줄었다. 그렇다면 그간 내가 느낀 증상은 신경주사 후유증이 아니라 디스크 증상이었던가. 내 이야기를 듣던 지인이 말했다.


<백년목>에 보면 목에는 신경이 다양하게 지나가서 방사통도 다양하고, 말단에서 일어난 통증인지 목디스크 방사통인지 구별하기 힘들다,가 결론이었어요.


정체모를 그것 때문에 오늘도 기분이 오락가락 한다. 타들어가는 통증만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잠잠하나 쎄 하고 시원한, 갑자기 뼛속이 서늘해지는 기분은 여직 남아 있다. 내가 다닌 한의원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 있었다.


치료에는 시간과 환자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침만으로, 약만으로, 주사만으로 되는 건 없다. 가급적 자주 일어나서 움직여주는 이유다. 글 쓰는 시간도 짧을수록 좋다. 그래서 이만 쓴다. 퇴고까지 하려면 이정도가 적당하다. 아쉽게도 연극 <맥베스>는 18일, 어제 끝났다. 이 글을 읽고 혹시 봐야겠다 싶은 분들은 다음 기회를... ㅠ.ㅠ


하루 종일 바삐 움직인 친구는 지하철을 기다리는 동안 잊기 전에 책에 사인을 해달라고 했다. 세상에. 노트북도 무거웠을 텐데 내 책까지 들고 대구와 서울을 동동거리며 다녔을 생각을 하니 눈물이 앞을 가렸다. 친구야, 그러지마. 우리 이제 몸 아껴야 해. 말만 그랬지 나도 몸을 아끼지 않고 길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한 자 한 자 진심을 담아 사인을 했다. 이래저래 눈물 나던 날이었다. 땀도 무지하게 나고.


집중의 입모양. 30년 우정 앞에서 무릎을 아낄 수 있나. 벗은 안경은 노안의 흔적. ㅠ.ㅠ


- 목 디스크 치료 일지는 다음에 더 긴 버전으로 만나요. 수 있을....까. 쓸 수 있겠...지?



글쓰기는 안다, 제목은 어렵다.

그럴 때 필요한 책 <이런 제목 어때요?>


http://aladin.kr/p/Oq6fw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맛있는 커피가 업무 질을 높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