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기자의 온] 같은 내용 다른 제목
한 달에 많으면 4번, 적으면 두 번 정도 회사에 간다. 코로나 이후 재택이 기본 근무가 됐다. 코로나 이후 출퇴근으로 돌아간 직장인도 있지만 우리는 재택근무를 지속하기로 했다. 몇 년 전 상암동에서 광화문으로 사무실을 옮기면서, 공간을 대폭 줄였기 때문에 전 직원이 출근할 자리가 부족한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물론 이건 편집기자들과 일부 재택이 가능한 직군, 그리고 재택을 원하는 직원의 경우다. 취재기자들은 많은 경우 늘 그렇듯 현장에서 기사를 쓴다.
출근해서 짬이 나면 신문을 본다. 사무실 회의실엔 주요 일간지와 경제지가 비치되어 있다. 그중에서 그동안 못 본 종이신문을 4~5개 정도를 돌아가면서 쭉쭉쭉 살핀다. 주로 사는 이야기를 기획하지만 들여보다는 섹션은 전방위다. 사회 기사부터 문화, 책, 생활, 라이프, 요즘 트렌드 등이다. 타 신문사는 요즘 어떤 걸 기획했는지 눈여겨본다. 썼던 내용이라도 우리만의 관점으로, 시민기자들이 더 잘 쓸 수 있는 내용이 있으면 메모하고 잘 쓸 수 있는 시민기자를 찾아 글을 부탁한다.
그렇게 신문을 넘기던 중에, 경향신문에서 눈에 들어오는 '제목'이 있었다.
'8일 머물려고 떠났다가 287일 만에 돌아왔다'라니,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눈이 크게 떠졌다. 영화 <인터스텔라>가 생각나는 제목이었다. 기사 내용을 읽어보니 진짜 영화에서나 벌어질 법한 일이었다. 복잡할 법한 우주에서의 일을 "일정한 간격으로 운행하는 고속버스를 기다리는 일과 비슷한 상황이 우주에서 벌어진 셈이다"라고 풀어서 설명해주니 머릿속에 쉽게 그려졌다.
같은 내용의 기사인데 다른 제목을 단 한국일보 기사도 접했다.
생각의 차이일 수도 있겠지만 '여드레'보다는 8일로 쓰면 어땠을까. 자주 안 쓰는 말을 제목에 쓰면 나부터도 약간 로딩 시간이 걸리니까. 여드레가 며칠이었더라, 하고.
한겨레신문에서 같은 내용의 다른 제목을 또 만났다.
앞 기사에서 '우주에 발 묶였다 귀환'이라는 문장을 먼저 봐서 그런지 새로울 건 없었다. 근데... 정말 재밌었을까? 8일 출장가려다가 9개월 넘게 있었는데... "힘들었지만 재미있었다"도 아니고.
결론. 제목 셋중에 '8일 머물려고 떠났다가 287일 만에 돌아왔다'는 제목이 가장 돋보였다. 흥미롭고 궁금하고 제목으로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싶다. 종이신문 제목의 형식미라 할 수 있는 행의 길이도 딱 떨어진다.
마지막으로, 스포츠 문외한이지만 스포츠 기사 제목도 눈여겨 본다. 스포츠 제목은 내가 보기에 '편집기자들의 제목 뽐내기' 대회 같다. 재밌다. 실험적인 제목도 많고 창의력도 넘친다. 다음에 종이신문 볼 기회가 있으면, 꼭 스포츠 기사 제목을 눈여겨 보길 바란다.
그 예로, 좀 오바가 아닌가 싶기도 한데... 재밌는 제목(이 제목이 어떤 과정 끝에 나가게 됐는지, 그 내막이 나는 정말 궁금하지만...) 하나를 소개한다. 가끔은 이런 제목도 귀엽게 봐줄 수 있지 않을까? ^^ 어딘가는 피식 웃어줄 사람 하나 있지 않을까? 그런 마음의 여유가 있는 한 주가 되길 바라며 이번 글을 마무리 할까 한다.
아참, 하나만 더.
이 칼럼 제목은 보자마자 나의 세 번째 책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이 생각났다.
좋아하는 마음을 누가 어떻게 말리나요.
여러분은 무엇에 대해 좋아서 하는 마음을 품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