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한번 해봤어]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시작하다
아이에게 "공부해"라는 말 대신,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일기 쓰라"는 말 대신 내가 일기를 썼고, "책 보라"는 말 대신 내가 먼저 책을 읽었다. 나한테는 그게 쉬웠다. 그런데 공부는 좀 달랐다. 아이에게 "공부하라"는 말은 곧 나한테도 '그' 공부를 해야 한다는 말처럼 들렸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이 하는 말 중에 "애들 공부 봐준다"는 이야기가 제일 무서웠다. 그때도 싫었던 수학과 영어를 애들 때문에 다시 공부해서 가르치라고? 친구들에게 "오, 나는 못한다" 그랬다. '그 시간에 차라리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고 말지' 그런데 뭘 공부하지?
요즘 학습지를 하는 직장인도 많다고 해서 기웃거려 봤다. 외국어를 좋아하지만 잘하지 못하니까 중국어를 할까, 일본어를 할까 고민했다. 그러다 그냥 제일 오래 했지만 전혀 늘지 않는 영어를 해야겠다고 정했다. 그랬는데 '쫌' 긴장됐다. 매주 한 번 선생님에게 검사를 받아야 한다는 게 싫었다. 무서웠다. 스트레스를 하나 더 얹고 싶지 않았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게 동네 평생학습원에서 하는 '내 삶과 그림책'이라는 그림책 입문 강좌였다. 그림책 강의라니. 눈이 '반짝' 할 만큼 반가웠다.
사실 지난해 첫 책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육아>를 출간하고, 서울 한 문화센터에서 하는 그림책 평론 과정을 들어볼까 고민했던 적이 있다. 집과의 거리도 멀고 강의 시간도 늦어서 포기했지만. 아니, 마음을 접은 결정적 이유는 따로 있었다. 아이들과 '마음으로 공감'하며 읽던 그림책을 갑자기 이리 재고 저리 재고, 이건 이래서 저건 저래서 평하는 마음으로 읽는다는 게 어쩐지 마음이 당기지 않았다. 불편했다.
그랬는데, 이번 강의 테마는 '내 삶과 그림책'이다. 오, 이 얼마나 멋진 주제인가. 강의가 시작하기 직전에 겨우 등록을 마쳤다. 그리고 강의 두 번째 시간. 그림책 연구자 조은숙씨가 <씩씩해요>를 낭독했다.
나는 모르는 책이었다. 첫 장면부터 자동차 두 대가 쿵 하고 부딪혔다. 글이 없었다. 나는 '글 없는 그림책인가?' 싶어 순간 기대에 찬 마음으로 생각 없이 '큭' 하고 웃었다. 바로 후회했다. 그다음 장면에서 아빠가 쓰러져 있는 모습과 생각하지 못한 문장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건 아주 무서운 사고였대요. 아빠 차는 공중에서 크게 한 바퀴를 돌았다고 했어요."
그때부터 내 눈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얼마 전 큰 교통사고를 당한 그림책공작소 민찬기 대표가 생각 나서다. 그림책 속 아이가 민 대표의 큰아이인 것만 같았다. 얼마나 무서웠을까. 민 대표는 사고로 뇌출혈에 뼈도 여러 군데 부러졌다고 했다. 다행히 8일 만에 의식은 회복했지만 병원에는 한동안 있어야 한다고 들었다. 8일이라니... 그동안 민 대표의 아이와 아내가 겪었을 공포감이 얼마나 컸을까. 상상조차 되질 않는다. 낭독은 계속됐다.
"엄마는 바빠졌어요.
아침 일찍 일어나 새로 구한 일터로 가요.
혼자 밥을 먹을 땐 식탁이 너무 넓어 보여요."
엄마가 쉬는 날 함께 산에 갔어요.
단 둘이서는 처음이에요.
엄마가 웃으며 말했어요.
"이제부터 우리 둘이 씩씩하게 사는 거야. 알았지?"
엄마는 운전을 시작했어요.
망치질도 해요.
"나는 씩씩해요."
강사가 그림책을 낭독하는 내내 혼자 목욕하고, 혼자 밥 먹고, 혼자 그네 타면서 일터에 나간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에게 감정이입되어 눈물이 났다. 책의 마지막에 와서야 겨우 안도했다. 주인공 아이도 엄마도 씩씩하게 살아갈 거라는 믿음이 생겼다. 민 대표의 아이도 씩씩하게 아빠를 기다려 줄 것 같았다.
이어 또 다른 그림책 <마음이 아플까 봐>도 낭독했다. 늘 소녀의 곁을 지켜주던 할아버지의 죽음 이후, 아픈 마음을 유리병 속에 꽁꽁 숨겨놨던 소녀가 다시 마음을 꺼내게 되기까지의 이야기가 담긴 그림책이었다.
강사의 낭독을 들은 79세 어르신은 소녀의 이야기가, 어린 시절 동생의 죽음 이후 아픔에 공감하는 마음을 잃은 자신과 꼭 같다고 말했다. 나는 소녀가 커서 아이를 낳은 뒤 아이의 무조건적인 사랑 때문에 유리병 속에 꽁꽁 담아두었던 마음을 꺼내고 싶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 밖에도 많은 이들이 하나의 그림책을 자신의 삶을 연결시켜 생각한 걸 말했다. 모두 다 마음에 담아두고 싶은 말들이었다.
강의를 들으며 '내 삶과 그림책'이 이렇게 가까이 있구나를 새삼 실감했다. 아이 덕분에 좋은 공부를 하게 됐다. 강사의 말대로 '좋은 그림책을 보는 눈'을 더 키우고, 그렇게 만난 그림책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싶어졌다. 세상에는 좋은 그림책이 너무 많으니까.
내일은 민찬기 대표가 '군대에서, 아파서 한참 동안 입원해 있을 때, 화가 날 때, 사는 게 지칠 때, 그리고 아버지를 보내드릴 때도... 늘 떠올렸다'는 미야자와 겐지의 시 '비에도 지지 않고'에, 야마무라 코지의 그림을 더해 만든 그림책 <비에도 지지 않고>를 구입해야겠다. 민 대표가 "20년 동안 받은 위로와 용기를, 지쳐 있거나 지칠지 모를 모든 분과 그저 나누고 싶다"던 책의 내용이 한없이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그림책 <비에도 지지 않고>는 내 삶과는 어떤 연결고리가 있을까. 상상만으로도 행복해지는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