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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경 Apr 15. 2018

학부모 상담, 남편과 함께 갔더니

[엄마가 한번 해봤어] 부부가 함께 하는 즐거움, 아이 교육도 그렇다 

올해 학부모 상담(이라 쓰고 엄마 상담이라 읽는다)은 안 가려고 했다. '육아 휴직한 남편이 가면 되지 않을까? 굳이 나까지 갈 필요는 없겠지?' 단순하게 생각했다. 그랬는데, 남편이 학교 안내장을 내밀면서 물었다.


"상담 시간 정해서 알려 달라는데, 언제로 해?"

"그거... 당신이 그냥 정해서 가. 난... 갈지 말지 좀 더 생각해볼게. 그날 쉴 수 있나도 좀 봐야 해."


핑계를 대며 남편에게 떠밀었다. 그러면서도 '그래도 가야 하나?'와 '안 가면 어때' 하는 마음이 계속 충돌했다. 마음이 쉽게 정해지지 않았다. 두 가지 이유에서다. 아이가 학교 생활을 어떻게 하는지 선생님과 직접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도 있고, 남편만 보내면 선생님들이 어려워 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어서다. 실제 남편이 처음 혼자 학부모 상담을 갔을 때, 그런 어려움을 토로했다. 본인은 괜찮은데, 선생님들이 어려워 하시는 것 같다고.


결국 "가야겠다"고 마음을 정한 건 '엄마가 한번 해봤어' 칼럼을 쓰면서다. '남편의 육아휴직'을 소재로 몇 개의 글을 쓰면서 든 생각은 우리 부부의 역할이 자연스럽게 바뀌었다는 거였다. 직장에 나가는 나는 아빠 역할을, 집에 있는 남편은 아내 역할을 해야했다. 그렇다면 '집에서 반기는 아빠'가 되고 싶었다. 이왕 시작된 아빠 역할, '제대로' 해봐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언젠가 인터뷰 차 만났던 <부탄 행복의 비밀>을 쓴 박진도 교수가 한 말도 생각났다.


"정치인들이 '저녁이 있는 삶' 만들겠다고 해봐야 남자들이 바뀌지 않으면 다 소용 없어요. 애 엄마들이 남편들이 일찍 와도 반기지 않는 이유가 뭔데... 집에 와서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으면서 텔레비전만 보는데, 누가 반겨요?"


그 이후로 '제대로 된 아빠를 위한' 미션을 생각했다. 학교 부모 연락처에 남편 휴대폰을 남긴 일, 남편 혼자 학부모 총회에 보낸 일 등은 그런 고민에서 나오게 된 거다. 이렇게 나름 일상 생활에서 '아빠 역할'을 강조하는 글을 쓰고 있는데, 학부모 상담은 당연히 '집에 있는 남편'이 가야한다고 여긴 자체가 이상했다. 아빠들이 학부모 상담은 집에 있는 엄마들이 가야한다고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과 다를 게 없었다. 마음이 불편했다. 그러고보니 남편과 함께 학부모 상담을 가본 적은 없었다. 올해는 특히 남편이 육아 휴직을 했으니, 함께 못 갈 이유도 없었다. "함께 가자"는 내 제안에 남편도 흔쾌히 동의해 주었다.



그렇게 지난 3월 29일 우리 부부는 '함께' 학부모 상담을 갔다. 5학년, 1학년 두 아이 선생님 모두와 상담을 했다. 선생님들은 당황하셨다. 갑작스럽게 자리 하나를 더 만들어야 했으니까. 그치만 상담 내용은 여느 때보다 다양했다. 그럴 수밖에. 함께 아이를 키우고 있지만, 내가 보는 아이와 남편이 보는 것은 다를 테니까. 그 미묘한 차이가 상담의 질을 더 높였다고 본다.


특히 고학년 아이의 상담에서는 더 그랬다. 사실 큰아이 공부를 제대로 봐준 적이 별로 없다. 선생님과 아이 공부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 대화를 주도 한 건 남편이었다. 나도 남편의 이야기를 귀기울이며 들었다. 새롭게 들렸다. 정해진 상담 시간을 한참이나 넘겨 교실을 나왔다. 남편에게 함께 한 첫 '학부모 상담'이 어땠냐고 물었다.


"혼자 왔을 때보다 좋았어. 확실히 선생님이 아빠와 이야기 하는데는 좀 불편하고 어려운 게 있는 것 같아. 그런데 당신이 중간에 있으니까, 자연스럽고 분위기도 더 좋았던 것 같아."

"나도 당신이 있으니까 혼자 상담할 때보다 훨씬 좋더라. 아까 수학 공부 이야기할 때 당신이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어. 사실 나는 애들 공부에 관련 된 거 잘 몰라서, 혼자였으면 선생님 질문에 굉장히 당황했을 것 같아. 당신이 아까 그렇게 설명해주니까 좋더라."


그림책 <내가 아빠에게 가르쳐 준 것들>은 어른이 잊고 있거나, 모르고 있던 사실을 한 아이를 키우면서 알게 되는 어떤 순간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가령, 낯선 사람과 이야기 하는 방법(아이를 키우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먼저 말을 꺼내는 데 익숙하다), 느긋해지는 법(한 아이를 키우다보면 '참을 인' 자를 새기며 기다려야 하는 순간이 얼마나 많은가) 같은.


오늘, 여기에 하나를 더 추가하고 싶은 게 생겼다. 아이들은 '부부가 함께 해야 즐겁다'는 사실도 가르쳐 준다. 육아도, 아이들 교육도 혼자 하면 재미도 의미도 없다. 새삼 그걸 또 한번 깨닫게 된 하루였다. 새학기 학부모 총회도 학부모 상담도 거의 끝났다. 이제 남은 학부모 참여 학교 일정은 공개수업뿐이다. 부부가 꼭 한번 함께 가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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