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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경 May 16. 2018

스승의 날 며칠 전, 엄마들 단톡방이 열렸다

[엄마가 한번 해봤어] 선생님께 감사하는 마음 전하기

5월 14일 퇴근길 엘리베이터 안, 마카롱 선물 세트가 여러 개 담긴 투명 쇼핑백을 든 한 워킹맘이 동료들과 나누는 대화를 우연히 듣게 됐다. 


"스승의 날이라고 아무것도 안 하기도 뭐하고... 애 어린이집 담임 선생님, 원장 선생님, 보조교사까지 챙기긴 했는데... 어떤 엄마는 하루견과 선물세트에 담임, 원장 선생님 건 따로 챙겼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뭐 이거 해도 티도 안 나겠어요."

"에휴... 그 스승의 날이 뭔지..."


김영란법 이후 스승의 날 선물 불똥이 어린이집으로 옮겨간 느낌이다. 유치원과 학교는 이제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일명 김영란법에 따르면, 스승의 날에 학생은 교사에게 개인적으로 꽃도, 선물도 줄 수 없다. 학생들이 조금씩 돈을 모아 선물을 사도 안 된다. 단, 동아리 대표나 학생 대표가 공개된 장소에서 카네이션을 달아주는 건 가능하단다. 


창원시 통합블로그 내용 캡처


덕분에 취학 자녀들을 둔 학부모들은 확실히 부담을 덜게 됐다. 우리 아이들 학교만 해도 김영란법 이전에 체험학습이나 운동회 등등 학교 행사 때마다 으레 해왔던 것이 모두 금지됐다. 웬만한 건 학교에서 준비한다. 김영란법 시행 초기만 해도 '정말 안 해도 되나' 긴가 민가 했던 엄마들도 이제는 "이거 해도 되나요?" 하고 먼저 묻는다. 시대가 바뀌었다. 그래도 아이들이 제 선생님에게 감사하는 마음은 가르치고 싶은 게 부모 마음이다. 그것도 교육이니까.


스승의 날을 일주일 앞둔 지난주 올해 입학한 둘째 아이네 반 엄마들 회의가 소집됐다. 개인적으로 편지를 써서 한 번에 모아 전달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그러면서 알게 된 놀라운 사실. 지난해 스승의 날에 아이들이 손편지를 썼는데 선생님이 읽기만 하고 다시 돌려보냈다는 데도 있고 아예 받지 않은 반도 있다고 했다. 나는 '선생님들이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방법을 두고 엄마들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했다. 의견은 좀체 하나로 모아지지 않았다. 퇴근 후 집에 돌아와서 남편에게 우리 반 엄마들이 회의한 이야길 했더니, "그거 혹시 편지 속에 뭔가 들었을까 봐 그런 거 아니겠어?" 한다. 세.상.에.나. 믿기 힘든 이야기였다. 그럴 가능성도 아예 배제할 수 없는 현실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게 조금은 낯설고, 서글펐다. 며칠 후 다시 날아온 카톡 하나. 


'스승의 날 편지 쓰기는 저도 며칠 동안 생각해 봤는데. 이래저래 걸리는 게 많네요. OO어머님 말씀처럼 편지 썼다가 돌려받을 수 있다는 생각, 14일에 편지도 안 된다고 알림장에 올라오면 아이들과 어머님들이 고생만 할 수 있다는 생각 등으로 단체로 편지 써서 모아 드리는 건 없었던 걸로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 대신 아들이 스케치북에 감사 인사를 쓰고 사진으로 찍은 걸 모아서 영상으로 만들면 어떨까요?'


나는 대찬성이었다. 너무 좋은 생각인 것 같았다. 요즘 아이들을 '유튜브세대'라고 부르던데 거기에 딱 맞는 콘셉트인 것 같았다. 들어보니 5학년 큰아이 반에서도 스승의 날 기념 감사 영상을 찍기로 했단다. 그렇게 해서 지난 주말 동안 둘째 아이 친구들이 직접 감사의 인사를 적고 꾸민 사진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아이들 모습이 어쩌면 하나 같이 예쁜지. 모두 웃는 얼굴이었다. 14일 저녁 그걸 하나의 동영상으로 만든 영상 하나가 카톡에 올라왔다. 노래 제목대로 '모두 다 꽃'이었다. 내가 다 감동이었다. 선생님도 틀림없이 그럴 거 같았다. 옆에서 동영상을 보던 둘째 아이도 제 얼굴이 나오니 만족스러운 듯 웃는다(동영상을 올리고 싶은데, 아이들 초상권 문제로 올리질 못하겠다). 


김영란법 시대, 스승의 날 선물은 이런 동영상이어도 좋지 않을까? 볼수록 웃음이 나고, 뿌듯하며, 보관도 편리하고, 여러 사람들에게 공개적으로 자랑하기도 쉬운 선물로 이만한 게 있을까 싶다. 가능하면 앞으로 계속 이용하고 싶다. 아이디어가 통통 튀고 영상 편집도 식은 죽 먹기인 고학년 아이들은 모둠별로 직접 만들어봐도 좋을 것 같다. 이런 선물은 다양할수록 좋은 거니까. 아이들과 함께 만든 스승의 날 선물, 올해는 특별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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