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란 감정의 실체는 도대체 무엇일까?
브런치에 내 지난 연애들을 다 털어내고 후련해져서 그런지, 요즘엔 지나간 연인들이 문득 생각날 때면 허공에 손가락 욕을 날리며 "제발 행복해져라, 그래서 내 인생에 다신 나타나지 마라!"라고 읊조리고 있다. 예전에는 "그런 사람들만 꼬이는 내 인생을 탓하며 우울감에 빠지곤 했는데, 지금은 그런 경험들을 통해서 조금씩 나아지는 나 자신을 긍정하고 있고 또 앞으로 비슷한 사람은 잘 피해 가는 지혜를 얻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또 그들이 아무리 나에게 '나쁜 X'였다고 할지언정 그들이 작정하고 접근한 사기꾼도 범죄자도 아니기에 그저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일 거라 생각하고 있다. 그들의 기억에서 나 역시 그리 좋은 사람은 아닐 거라는 생각도 함께 생각하고 또 인정하면서 씁쓸하지만 어쩔 수 없는 과거 회상을 끝맺으려 노력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사랑을 원하는 마음은 숨길 수가 없다. 물론, 드라마 혹은 영화에서 처럼 절절한 사랑 혹은 운명 같은 진정한 사랑을 원하는 것은 아니지만 '기간제 베프'같은 이 연애와 사랑을 도대체 끊을 수가 없다. 그리고 내가 왜 자꾸 이런 관계를 갈망하는 것인지 솔직히 알 수가 없지만 이제는 그 막연한 '갈망'을 인정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그나마 다행인 부분은 나만 이런 고민을 했던 것이 아니라는 부분이다. 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인간의 연애, 사랑이란 특별한 감정에 대해 정리했는데, 특별히 사회학자 '앤소니 기든스'와 영화학자 '몰리 해스켈'은 '근대의 산물'이라고 표현했다. 두 학자의 주장은 비슷한데 근대 이후 할리우드에서 제작한 로맨스 영화들이 대중화되면서 사람들에게 '사랑'이라는 감정과 '행복한 결혼-어쩌면 결혼식'에 대한 '이미지'가 인식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근대 이전에는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았고 감정 자체가 있었는지 여부는 확인할 수 없지만 '첫눈에 반하는 사랑'이라는 어떤 이미지 혹은 '사랑에 빠져 행복해하거나 고백하기 위해 고뇌하는 과정'에 대한 이미지(시각화)가 거의 모든 사람들의 인식에 자리했다는 것이다. 영화학자 몰리 헤스켈도 비슷한 주장을 하는데, 할리우드에서 제작한 '로맨스 영화들'이 '사랑'이라는 감정을 시각으로 보이게 만들고 영화라는 매체의 특성상 우리가 자꾸 몰입하고 공감하는 방식으로 '학습'했기 때문에 마치 우리가 인생에서 원하는 것이 오로지 '사랑'인 것처럼 여겨졌다는 것이다. 그들이 워낙 대단한 학자이기 때문에 그들의 글을 읽고 있노라면 이 모든 주장에 납득과 설득이 되기 때문에, "사랑, 그 까이꺼 다 쓸모없는 허상이다. 정신 똑바로 차려 이 각박한 세상 속에서! 결국 각자도생이다!"이런 생각을 갖게 되는데, 책을 덮음과 동시에 개인적인 의문이 들기도 한다.
"그럼 내가 느낀 것은 뭐지? 그동안 내가 했던 사랑은 뭐지? 그저 허상이었나?" 싶은 의문이 머릿속을 맴돈다. 보고 싶은 마음이나 앞으로 저 사람이 너무 잘 되었으면 좋겠는 마음 등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감정들을 포함하여 뭔가를 먹이고 싶거나 챙겨주고 싶거나 하는 감정들을 모두 다 '허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약간 입이 삐죽거리는 마음이 올라온다. 물론, 몰리 헤스켈과 앤소니 기든스의 주장은 근대 이후에 이성(남자와 여자) 간의 연애와 결혼에 대한 분석이기에 이해가 되는 부분도 있다. 예를 들면 남자와 여자가 만나 첫눈에 반하고 서로를 격렬하게 원하다가 반지를 주면서 프러포즈를 하고 성대한 결혼식을 하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축하를 받는 등 일종의 과정과 단계를 '할리우드 로맨스 영화'가 만든 것은 사실이니 그들의 주장도 분명 일리가 있다. 당연하다. 분명 일리가 있고 대단한 논문이니 지금까지 읽히고 있겠지. 나 같은 조무래기가 의문을 제기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닐 테다.
하지만 자꾸 인간 특유의 사려 깊음이나 배려심을 떠올리게 된다. 꼭 이성(남자와 여자) 간의 섹슈얼한 사랑만 '사랑'은 아니라는 생각도 함께 꿈틀댄다. 사랑이란 감정은 섹슈얼한 관계의 시작을 의미하는 걸까? 그건 필요충분조건이자 시작점일까? 애인이 기간제 베프라면, 영원한 베프를 향한 사랑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사랑받기를 원하는 마음이 꼭 섹슈얼한 관계를 갈망하는 것만은 아닐 텐데. 우리는 어쩌면 불특정 타인 즉, 인간에게 따스한 눈빛으로 응대받기를 원하고 또 배려가 가득한 목소리와 몸짓으로 서로를 챙겨주기를 원하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것이 어쩌면 인간이 보편타당하게 원하는 '사회적 관계'의 기본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하지만 동시에 그런 사회관계와 별개로 더욱 친밀함을 공유하는 친구와 애인을 원하는 꽤나 복잡하고 감성적인 사랑과 친밀함 보살핌을 원하는 존재가 인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참고문헌
앤소니 기든스. (2001). 현대 사회의 성 사랑 에로티시즘: 친밀성의 구조변동. 새물결:서울. (원서출판 1992년)
몰리 헤스켈. (2008). 숭배에서 강간까지: 영화에 나타난 여성상영화에 나타난 여성상. 나남:서울 (원서출판 197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