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다은 May 12. 2024

연애, 그 유한한 감정에 대하여

최근 3번의 연애를 정리하면서

우울증세가 연애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스스로 고찰하며 자아성찰과 자기비판을 오가던 중 "도저히 이건 나의 문제가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힘겹게 한 명씩 관계를 단절하면서 나에게는 어떤 '기준'이 생겼고, 지금에 이르렀지만 여전히 "차라리 만나지 않았다면 좋았을 텐데.."라는 마음에 분노가 올라와 한번쯤 글로 풀어내고 싶어 이렇게 자리에 앉았다.


제일 많이 화가 나는 대상은 아무래도 A라는 사람인데, 이 사람은 첫 만남부터 좋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격다짐으로 시작된 관계에 나는 그저 참아냈던 것 같다. 그럼에도 어떻게든 이 관계를 좋은 쪽으로 운용하고 싶었던 것 같다. 당시 상담선생님은 "엄마의 통제를 벗어나 다른 사람에게 통제권을 쥐어준 셈"이라고 했었는데 나는 그 말에 동의를 하면서도 벗어날 생각은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강한 소유욕과 집착을 보이는 그 사람이 (나만 잘하면) 나를 떠나지 않을 것 같았고, 그 집착에 묘한 안정감도 느꼈던 것 같다. 다만 (내가 생각할 때) A에게 문제가 있다면 그 사람은 나를 만나기 전에 '제대로 된 연애관계를 맺은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연애라는 유한 하지만 폭발적인 사랑과 애정의 오묘한 무언가를 충분히 경험하고 또 그 감정이 끊어지는 아픔을 겪어보며 인간은 그제야 성장한다고 믿는 나에게 이 사람은 그저 고등학생 수준에 머물러있는 것 같았다. 또한, 그가 연애라고 생각했던 지난 관계들을 들어봤을 때 내 기준에서는 그저 '불륜'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무언가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런 연애 패턴 역시 '그럴 수도 있지.'라고 이해하려 노력했고 또 내가 A에게 '진정한 사랑을 경험하게 해 줘야지!'라는 (정말 잘못된) 생각만 가득했다. 그러나 A는 나를 만나면서 상당히 불안정한 모습을 보였다. 365일 내내 불안한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확실히 불안해했다. 자신의 불안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나를 통제하는 방식으로 해소하려 했지만, 소기의 목적이 달성되지 못했는지 결국 다른 여자를 만나면서 우리는 헤어지게 되었다. 


A에게 벗어나지 못하는 나를 늘 답답해했던 친구들이 뒤처리를 도와줘서 야반도주를 하듯이 캐나다에 갔고,  A는 바람난 그 사람과 싸울 때마다 "나를 진짜 사랑했던 사람은 너밖에 없는 것 같아. 우리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같은 연락을 해왔다. 캐나다에서 시차 덕분에 대답할 겨를도 없었지만, A의 그런 지질한 연락 덕분에 나는 마음이 차차 정리가 되었던 것 같다. 뜬금없지만 마지막까지 구질구질하게 연락해 준 A에게 감사를 전하고 싶다. 아무튼 이런 일을 겪다 보니, 지난 연애의 패턴을 은근히 떠보는(?) 나만의 기준이 생겼다. 치기 어린 어느 순간에 한 번 정도 '이상한 연애'를 한 것 이 아니라 몇 번을 반복했다면, '내가 절대로 해결할 수 없는' 정서적인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기로 했고 또 '안정적인 연애'를 갈망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일 수도 있지만 그것은 결코 혼자 이룰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하기로 했다.


두 번째 B를 만난 것은 A의 바람에 내 정신이 불안정하여 온갖 데이트 어플을 모두 설치하고 뻔하고 지루하고 또 의미 없는 톡들을 이어나갈 때였다. 그중에서 제일 말이 잘 통하는 사람이었고, 얼굴도 맘에 들어서 계속 연락을 했는데 나는 약 2년의 연애를 B는 6년의 연애를 마친 뒤였다. 서로를 '이별동기'라고 부르며 힘든 시간을 함께 하다 보니 나는 호감이 계속 커졌지만 B는 아니었던 것 같다. 전 여자 친구가 돌아왔다는 말에 "고민이 될 것 같지만, 나를 한 번 만나보고 결정하는 게 어떻겠냐?"라는 다소 T스러운 고백에도 "너 멘트 좀 친다?"라고 대답하곤 전여자 친구에게 돌아갔다. 그리고 또 다른 전여자 친구를 만든 뒤에 한 번 보자고 연락을 했다. "나는 감정을 정리했으니, 동네친구 이상은 힘들다. 이 부분을 확실히 하고 만났으면 한다."라고 분명 만나기 전에 얘기를 했음에도, 만난 날부터 내내 나에게 플러팅을 하기 시작했다. 몇 달의 플러팅 끝에 B와의 연애를 시작했지만, "네가 좋은 건 아닌데, 너를 놓치면 안 될 것 같아. 넌 진짜 좋은 사람인 거 같아서."라고 말하던 B와의 연애는 정말이지 쉽지 않았다. A와 비교하면 정말 순한 맛 연애였지만 꼰대인지? 갑질인지? 알 수 없는 말들에 말문이 막혔다. 좋지도 않은 사람과 왜 연애라는 것을 하려고 할까? 아무래도 시작이 민망해서 그런 걸까? 싶어 처음엔 분명 이해하고 참아도 봤지만,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에게 돈과 시간과 애정을 쏟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 아니라 우리는 그렇게 끝을 맺었다. B와의 연애를 복기하며 나는 '오랜 연애' 뒤에 약 1년 정도의 공백기가 있는 사람이 좋겠다는 기준을 추가했다. 가능하면 자취 등을 통해 경제관념이 좀 있는 사람이 좋겠다는 생각도 했던 것 같다.


B와 한 번 헤어졌을 당시 나는 어떤 모임에 들어갔고 B와 완전히 헤어진 뒤 재회를 원하는 B에 대한 고민을 그 모임에서 얘기했던 적이 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모임의 리더인 C가 나에게 전화를 했고, "B와 재회를 고민하신다고 하여 조바심이 났다. 저를 한 번 만나보시면 어떠냐"라고 물었다. 모임에서 늘 칭찬만 자자하던 C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하다니 넘 기분이 좋았다. 드디어 괜찮은 사람과의 어른스러운 연애를 하는 걸까?라는 설렘도 찾아왔던 것 같다. 좋게 봐주셔서 일단은 감사하고, B와의 감정은 이미 정리가 되었지만 연락도 차차 정리가 될 것 같다. 모임 외에 사적으로 따로 한 번 만나자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잦아진 C의 연락에 그저 어떤 수순이라고 생각했고 '결이 맞는 사람'이 이런 사람일까? 싶을 정도로 말이 잘 통하고 또 재밌었다. 서로의 일정 사이사이에 조금 무리를 해서 2-3시간 정도 만나 대화를 했고 따로 만나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뭔가 섹슈얼한 끌림은 없었기에 천천히 생각하자고 혼자 생각했던 것 같다. 


그 이후 모임에서 담배를 피우다 갑자기 키스를 하고, 방을 잡자며 길거리에서 "내가 너 뭐 어떻게 한대?"라며 짜증 내고 나무를 때리기 전까지는 아무래도 이 사람이 너무나 괜찮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사실 그때 자연스럽게 거리를 두는 것이 옳았던 것 같지만, (A에 비하면 정말 순한 맛이라) 사람이 이런 단점 하나 정도는 누구나 있지 않을까?라는 잘못된 생각을 했다. 대충 썸이라는 것을 타기 시작하면서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정신이 혼미했지만, 술에 취하지 않은 C는 정말 괜찮은 사람이라 술을 좀 줄이면 좋겠다고 권하고 관계를 이어갔다. 그러나 한 달 정도 썸을 타면서, 그의 폭력성은 술과 상관없이 나타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특히 C는 나름의 논리를 가지고 나를 끊임없이 평가하고 비난했는데 그 내용이 '수동공격'같은 느낌이라 정신이 혼미했던 것 같다. 어떻게든 이 관계를 이어나가려는 쓸데없는 책임감과 인내심으로 버티고 버텨왔는데, B가 "친구로 지내자 그럼! 그럼 됐지? 네가 원하는 게 이거 아니야?"라는 말에 뚝하고 끊어져버렸다. 나는 끝까지 못할 말이지만, B가 먼저 말했으니 나에게도 꽤 감사한 일이었다.


오랜 시간 함께 한 사이가 아니다 보니, 내 마음에서도 C는 꽤 오래 '이해되지 않은 영역'으로 남아 자꾸 생각이 났다. 자꾸 생각나고 복기하는 이 마음이 C에 대한 미련인지 그저 단순한 호기심인지 알 수 없는 복잡한 마음이었다. 미련일까? 어떤 미련일까? 호기심일까? 어떤 호기심일까? 솔직히 아직도 나는 C에 대한 마음을 정확하게 알 수 없다. 그냥 묘하게 "온 세상이 나에게 경적을 울리던 느낌"을 잊을 수 없을 뿐이다. 온 세상이 나에게 "아니야, 멈춰."라고 말하는 그 느낌을 잊을 수가 없었다. 그저 내 몸에 있는 '빅데이터'를 믿고 하늘에 있는 하나님과 우리 곁을 떠도는 조상신(?)의 경고였을 거라고  믿고 있다. 그렇게 C와의 관계를 정리하면서, 나는 '심심하고 외로운 감정을 혼자 해결하는 (자기만의) 방법을 아는 사람'이라는 어려운 기준을 추가하게 되었다. 그리고 당분간 연애를 쉬면서 내가 원하는 이상형, 연애 관계에 대해서 조금 생각해 보기로 했다. 도대체 나는 연애를 하는 걸까? 유한하고 한정적인 애정관계를 유지하면서 무엇을 하고 싶고, 무엇을 원하는 걸까?라는 근본적인 생각도 하고 싶었던 같다. 폭풍같이, 또 쉼 없이 연쇄적으로 일어난 A-B-C, 3번의 연애에서 힘들었던 마음도 돌보고 앞으로의 인생도 조금 모색하고 싶었던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어쩌면 내가 처음 맞이 하는 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