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rry, (we are) Already Happy
입사한 지 이제 두 달을 채워가고 있는 회사는 스타트업이다. 교육 관련 아이템으로 6개월 해오다 갑자기 내가 입사하던 시점에 피벗을 결심했다. 입사 전 나름 상상했던 일들이 타이핑도 못 해본 채 저 뒤로 밀려났다. 당혹스럽고 걱정도 되었지만, 이 상황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기존 크루들의 모습이 긍정적으로 보여 나도 기꺼이 긍정의 마음으로 동참했다.
기획자, 마케터만 있는 스타트업이 새롭게 시도해 볼 수 있는 일은 흔하지 않다. 열심히 브레인스토밍과 시장조사를 진행하며 가능성을 엿본 반려동물 시장. 야심 차게 시장에 출사표를 던지자며 한 달간 열심히 화면 기획과 기능 정의까지 완료했던 앱 서비스는 어마 무시한 개발 외주 비용 앞에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아주 잠시만 다시 생각해 보자며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돈이 될, 이제 막 성장하기 시작한 시장이 무엇이지?’가 아닌, ‘우리는 여기에 왜 모인 거지?’, 우리가 하고 싶은 게 뭐지?’, ‘우리는 일을 어떻게 하고 싶은 거지?’를 고민하며 크루들과 나누었다.
이 과정에서 직장생활 18년 차인 나는 다소 불안했다. 회사는 자고로 이익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데, 이곳은 대표부터 시작해 ‘우리 회사는 이익이 아닌 행복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으니 말이다.
흔히 스타트업의 성공하면, 어마한 투자를 받는 유니콘 기업 혹은 어마한 금액에 인수되어 액시트하는 경우를 떠올린다. 모두가 원하지만 현실 세상에서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라고 있으니 스타트업 신입은 ‘나 잘한 결정이야?’를 스스로에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스타트업이라는 단어 자체가 주는 기대감 때문인지 가족들의 높아진 관심에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정확하게 답하지 못해 답답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막내 신입이니까, 당분간 토 달지 말고 이 문화에 젖어보자 마음먹으니 은근 스스로에게 자부심이 생겼다.
다시 돌아와, 고민 끝에 우리는 외부요인에 따라 방향이 바뀌는 것이 아닌 우리가 온전히 컨트롤할 수 있는 일을 하자고 의견을 모으고 우리 이야기를 상품으로 만들기로 했다. 스타트업을 선택한 우리의 이야기.
남의 평가가 아닌, 스스로의 평가가 더 중요한 사람. 스타트업을 선택한 이유가 있는 사람. 주체적으로 살아가려는 사람. 워커홀릭이 아니라 일 자체의 가치를 즐기는 사람. 그런 사람을 위한 브랜드를 만들기로 했다.
공감을 얻고, PM이 정해지니 일은 순식간에 진행되고 있다. 방향성과 모토, 브랜드와 슬로건, 무드를 정하기까지 3주 걸렸다. 예전 회사였으면 외주 제안부터 임원 결정까지 3개월은 걸렸을 일이다.
의자에 앉아 있는 업무시간보다 집중도와 영감을 더 중요시하는 우리는 우리 브랜드 이름을 Flexitime이라고 정했다. 어학사전 의미로는 ‘유연근무제’를 뜻하지만 자신의 시간을 유연하게 사용할 수 있는 주체적 워커의 삶으로 의미를 확장시켰다.
우리의 이러한 행보를 응원하는 사람도 있지만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사람도 분명 있다. 특히, 나는 이런 말을 많이 들었다. “왜 안정적인 곳 놔두고 스타트업이야? 투자는 받았어? 너 나이를 생각해야지. 회사 밖은 정글이야.” 그러면 나는 이렇게 말한다.
“Sorry, (we are) Already Happy!”
바로 우리 브랜드 Flexitime의 슬로건이자,
가슴 뛰는 일을 선택한 지금 나의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