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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ntaetae Jul 13. 2023

제주 올레_8

올레를 잠시 멈추겠습니다

  올레길을 잠시 멈추기로 했다. 말 그대로다. 원래 12박 13일, 출발일과 도착일을 제외하고 모두 올레길을 걷는 일정이었다. 하루에 짧으면 한 코스, 길면 두 코스. 계산적으로 한 것은 아니었다. 글에 쓴 것처럼, 자동적으로 계획한 일이었다. 마치 예정된 일이었던 것처럼.



  올레길 8일 차, 몸이 무거워짐을 느꼈다. 즐겁게, 나는 '놀멍 쉬멍' 걷는다라고 자기암시하던 올레길이 문득 짐처럼 다가왔다. 다리는 무거웠고 머리는 고요했다.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이 정도면 몇 키로 온 거지?, 아직도 이 정도밖에 안 왔다고? 를 반복할 뿐이었다. 아름다운 풍광은 건조하게 다가왔다. 나는 표정을 짓지 않았다. 걸음을 반복했다.



  나는 분명 행복하려 온 것일 텐데, 지금 나는 행복한가?, 를 생각했다. 죽기 살기로 발걸음을 떼고 있지만 나는 행복하다 생각했다. 발에 물집 수도 없이 잡히고 9개월 전 수술한 다리는 삐그덕되지만 나는 그래도 행운아라 생각했다. 우연히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바다를 보고 있는 사람을 보아도 그들은 진정 제주를 즐기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사실 이 모든 것은 자기 위로에 불과했다. 자기 합리화에 불과했다. 한계에 도전해 본 적이 있는가? 한계에 임박한 사람에게 보이는 것은 없다. 그 사람은 순간을 살기도 벅차다.



  결정적인 것은 부모님과의 통화였다. 폭우가 오거나 폭염이 오는 극단적인 날, 그들은 수십키로씩 걷는 아들을 계속 걱정했다. 전화가 매일 울렸고 항상 날씨와 몸 상태를 물었다. 나는 적당하게 얼버무렸다. 수술한 다리에서 소리가 나도, 재활을 위해 한동안 안 쓰던 다리 근육이 경련을 일으켜도, 물집이 터지고 고름이 나도.

  그런 미련한 아들에게, 부모님은 항상 수고했다, 괜찮으니 다행이다, 내일도 조심하여라 말했다. 괜찮지 않은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평상시처럼 통화하던 어젯밤, 나는 울컥했다. 너무도 고마웠다. 항상 응원해 준다는 것이. 항상 변함없다는 것이.



  그렇게 나는 다음 제주 여행을 기약하기로 했다. 22개를 돌았다. 5개 코스가 남았다. 그때는 꼭 돌 것이다. 남은 5일의 여정 동안 지쳤던 몸과 마음을 회복하려 한다. 바쁘게 세상을 살며, 올레길을 걸으며.



  스쳤던 존재들을 떠올리고 흐르는 생각을 움켜쥐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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