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미식사: 향신료의 권력과 미식의 계급 (3)

식사, 연극, 권력

by dada

중세: 향신료의 권력과 미식의 계급


476년, 서로마 제국이 게르만 용병대장 오도아케르에게 멸망하면서 유럽은 천 년에 걸친 중세 시대로 접어든다. 갈리아 땅은 게르만족의 일파인 프랑크족에게 넘어갔고, 이들은 훗날 '프랑스(Francia, 프랑크인의 땅)'라는 국명의 기원이 되었다. 프랑크 왕국은 8세기 카롤루스 대제(샤를마뉴) 치세에 서유럽 전역을 아우르는 대제국으로 확장되었다가, 843년 베르됭 조약으로 세 왕국으로 분열되었고, 그 중 서프랑크 왕국이 오늘날 프랑스의 전신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게르만식 음식 문화—사냥한 야생 동물과 맥주, 육류 위주의 식사—가 로마-갈리아 전통과 결합했다.



중세 프랑스는 봉건제 사회였다. 국왕 아래 귀족들이 각자의 영지를 다스렸고, 대다수 농민은 농노 신분으로 땅에 묶여 살았다. 이러한 엄격한 신분 질서는 식탁 위에서도 그대로 재현되었다. 귀족과 평민의 식사는 재료부터 조리법, 심지어 식기에 이르기까지 모든 면에서 철저히 구분되었다. 그리고 그 차이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바로 '향신료'였다.



중세 프랑스 귀족 요리의 핵심은 강렬한 향신료였다. 11세기부터 시작된 십자군 전쟁(1096~1291)은 유럽인들에게 동방 세계를 직접 접촉하게 만들었고, 이를 계기로 인도와 동남아시아에서 생산된 후추, 계피, 정향, 육두구, 사프란, 생강 등의 향신료가 본격적으로 유럽에 유입되었다. 당시 향신료들은 인도에서 육로를 통해 중동으로, 다시 이탈리아 항구 도시 베네치아로 운반되었고, 베네치아 상인들은 이 무역을 독점하며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중세가 끝날 때까지 약 400년 동안, 거의 모든 향신료 무역은 베네치아를 거쳤다.



향신료가 귀족들에게 각광받은 이유는 복합적이었다. 흔히 "중세 보관 기술이 부족해 상한 고기의 누린내를 감추기 위해 향신료를 썼다"는 설명을 듣곤 하는데, 이는 반만 맞는 이야기다. 실제로 부패를 막는 방법으로는 소금 절임, 훈연, 건조 등이 향신료보다 훨씬 효과적이었고 가격도 저렴했다. 진짜 이유는 향신료의 '희소성'과 '과시 효과'에 있었다. 머나먼 동쪽 이국에서 건너온 향신료는 매우 고가의 사치품이었다. 후추 1파운드의 값은 중세 농노의 몇 주치 임금과 맞먹었고, 정향과 육두구는 같은 무게의 금보다 비쌌다. 귀족들은 음식에 향신료를 잔뜩 넣어 대접하거나 포도주에 섞어 마시며 자신의 부를 과시했다. 은으로 만든 거대한 조미료 쟁반에 향신료를 담아 손님들이 직접 요리에 첨가하게 했고, 향신료는 보석처럼 서로 선물하고 수집하는 대상이기도 했다. 오늘날 남아 있는 중세 은식기 중에 조미료 용기가 유난히 화려하고 큰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960px-Great_Chain_of_Being_2.png Didacus Valades의 1579년 존재의 대사슬 그림


중세 유럽인들은 식재료에 신분이 있다고 여겼다. 이는 기독교가 당시 전 유럽을 지배하던 이데올로기였던 것과 관련이 있다. 중세 유럽인들은 세상 만물에 엄격한 위계 구조가 존재한다는 신학적 개념인 '존재의 대사슬(Great Chain of Being)' 원리를 따랐다. 이는 13세기 토마스 아퀴나스가 체계화한 우주론으로, 하나님을 정점으로 천사-인간-동물-식물-무생물에 이르기까지 모든 존재가 수직적 질서 속에 배치되어 있다는 믿음이었다. 그 체계에 의하면 하나님이 머무는 곳인 하늘에 가까이 있는 것은 귀하고, 땅에 가까이 있는 것은 천하다고 간주되었다. 그래서 귀족들은 하늘을 나는 새들—공작, 꿩, 백로, 백조—그리고 높은 나무에서 열리는 과일을 고급 식재료로 취급했다. 반면에 땅속에 묻혀 자라는 뿌리채소(마늘, 양파, 당근, 순무)는 농노들이나 먹는 천한 음식으로 취급받아서 귀족은 먹지 않았다.



또한 뿌리채소 기피 정서는 당시 의학 체계였던 4체액설(Four Humors)에 기반한 믿음이기도 했다. 고대 그리스 의학자 히포크라테스와 갈레노스가 정립한 이 이론에 따르면, 인간의 몸은 혈액(blood), 점액(phlegm), 황담즙(yellow bile), 흑담즙(black bile)이라는 네 가지 체액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체액의 균형이 건강을 결정한다고 여겨졌다. 귀족은 '따뜻하고 건조한' 체질을 가진 고귀한 존재로 간주되었고, 따라서 섬세한 소화기관을 가졌으니 거칠고 '차갑고 습한' 성질의 뿌리채소를 먹으면 체액의 균형이 깨져 병에 걸린다고 믿었다. 반면 향신료는 '따뜻하고 건조한' 성질을 가진 식재료로 분류되어, 귀족의 체질에 완벽하게 어울린다고 여겨졌다.



또 하나 중세 미식의 주요한 특징은 연극적인 퍼포먼스를 들 수 있다. 중세 귀족들이 모이는 만찬은 단순히 맛있는 것을 먹는 게 아니라, 영주의 위엄과 부를 보여주는 하나의 공연장이었다. 코스 중간에 앙트르메(Entremets)라 불리는 '여흥 요리'가 등장했는데, 이는 맛보다는 시각적 충격을 목표로 하는 디쉬였다. 공작새를 구운 뒤 다시 화려한 깃털을 붙이고 입에서 불을 뿜게 하거나, 커다란 파이 속에 난쟁이나 광대를 숨겨놓았다가 튀어나와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기도 했다. 미식이 단순히 디쉬를 섭취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공간과 현장의 분위기, 퍼포먼스를 즐기는 종합 경험이었음을 여실히 드러내는 부분이다. 오늘날 고급 레스토랑에서 셰프가 직접 테이블에 나와 요리를 설명하거나, 극적인 플레이팅으로 시각적 즐거움을 선사하는 것의 기원이 바로 이 중세 연회 전통에 있다고 볼 수 있다.




16427705280504.jpg?type=w1 Bosque lluvioso(빗속 숲), 엘 세예르 데 칸 로카(El Celler de Can Roca)의 디저트.


https://youtube.com/shorts/dXDA78Px1jg?si=T7EU90ZBG8hquxwX


스페인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 엘 세예르 데 칸 로카(El Celler de Can Roca)의 "Bosque lluvioso(빗속 숲)".


이 디저트는 식용 구름이 접시 위에 떠 있다가 서서히 응축되며 버섯 향 '비'를 내리는 연출로 유명하다.


중세 귀족이 파이에서 튀어나오는 광대에 환호했듯, 현대 미식가들은 구름에서 떨어지는 비가 주는 독창적인 퍼포먼스에 감탄한다.


시대는 달라졌지만, 미식이 감각적 충격과 서사를 통해 완성된다는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또 한 가지 재밌는 점은 당시 귀족이 연회에서 사용하던 식기는 도자기나 청동 그릇이 아니라, 만든 지 오래되어 돌처럼 딱딱한 빵을 잘라 만든 그릇인 '트렌처(Trencher)'였다. 포크는 아직 유럽에 전파되기 전이었고, 귀족들은 칼과 손을 사용해 음식을 먹었다. 귀족들의 식사가 끝나고 고기 육즙과 소스가 스며든 이 빵 그릇을 빈민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 기독교적 자선의 의무를 수행하는 것이기도 했다. 이는 중세 봉건 사회에서 귀족의 권력이 단순한 폭력이 아니라 '은혜를 베푸는 보호자'라는 이데올로기로 정당화되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행위였다.



그러던 중 14세기 후반, 당시 프랑스 왕실의 전속 요리사였던 기욤 드 티렐(별명 타유방, Taillevent)의 저서 《Le Viandier de Taillevent》(타유방의 육류 요리책)가 출간되었다. 이 저작은 프렌치 요리를 문자로 체계화시킨 최초의 텍스트로 평가받는다. 구전으로만 전해지던 레시피를 처음으로 문자로 기록하고 체계적으로 서술한 프랑스 최초의 요리책이다. 타유방은 샤를 5세와 샤를 6세를 섬긴 왕실 주방장으로, 그의 책에는 향신료를 사용한 수십 가지 소스 레시피와 궁정 연회 요리법이 담겨 있다. 요리와 미식이 중세 시대부터 이미 전문성을 지닌 예술로 인식되었고, 왕실 요리사가 단순한 하인이 아니라 기록할 가치가 있는 지식을 가진 전문가로 대우받았음을 나타내는 역사적 자료이다.



결국 중세 프랑스에서 미식은 맛의 향유를 넘어 권력과 신분을 재현하는 무대였다. 향신료는 단순한 조미료가 아니라 부와 지위의 상징이었고, 식재료의 위계는 신학적 우주론과 의학 이론으로 정당화되었으며, 연회는 영주의 권위를 과시하는 정치적 행사였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타유방 같은 전문 요리사의 손을 거쳐 문자로 기록되면서, 프랑스 요리는 단순한 생존 수단을 넘어 '고급 문화'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https://youtu.be/rQT-aY9sTCI?si=57H-BiRpBg1XihL7


먹을 수 있는 그릇, 트렌처(Trencher)를 중세 레시피대로 만드는 유튜브 영상.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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