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만 보더라도 그렇다. 대기업 취업 또는 이직 경험을 공유 또는 코칭하는 콘텐츠도 많고, 동시에 대기업을 그만두고 무엇 무엇을 한 사연을 전하는 콘텐츠도 많다. 앞의 경우는 대기업을 선망의 대상으로 보는 시선이 강하고, 뒤의 경우는 대기업이라는 단어가 주는 건조함을 바라보는 시선이 강한 느낌이다.
뉴스 댓글을 통해서 보이는 대기업을 향한 시선 또한 다르지 않다. 대기업 내에서 사고가 난다던가 위법적 행위가 있었을 경우 보이는 댓글에서는 거의 범죄 집단과 같은 평가를 받지만, 해외에서의 선호 브랜드 조사 같은 곳에서 수위에 오를 경우 국위선양, 사업보국의 진정한 실행자로 찬양받는다.
분명히 "대기업"이라는 단어는 인지 부조화적이고 이율배반적이다. 그래서 주목을 끈다.
내 브런치 시작도 "대기업 남자 부장, 육아 휴직을 신청하다"는 제목의 글이 시작이었다. "대기업 남자 부장은 육아휴직 따위는 생각하면 안 되는 무언가 굉장히 치열한 경쟁의 한가운데에 있는 느낌인데, 게다가 남자인데 육아휴직을 썼단 말이지?"라는 자극을 주려고 했던 것이 분명하다. (성공한 것 같지는 않지만)
난 대기업을 다닌다. 아니, 다니는데 육아 휴직 중이다.
한 번 이직을 했다. 첫 회사에서도 적당히 인정은 받았던 것 같다. 지역전문가라는 제도와 주재원으로 해외에서 살아보기도 했다. 그러다 이직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기를 낳아서 아빠가 되었다. 그리고 어쩌다 보니 팀장이 되었고, 여러 사정으로 육아 휴직을 하게 되었다.
나도 대학생이던 시절에는 넥타이를 매고 책상에서 일하는 이 오피스 워커(office worker)들은 "네모난 틀"에 본인을 구겨 넣고, "콘크리트 회색 숲"에서 무미건조한 삶을 쫓는 존재들로 보였다. 지금 많은 광고들이 그러는 것처럼 "언제까지 똑같을 건데?"라는 식의 무의미한 일상이 반복되는 삶인 줄 알았다.
운이 좋았는지 나빴는지 나는 나의 사회생활을 대기업의 월급쟁이로 시작을 하게 되었다. 막상 내 삶이 되자 그 안에서의 삶은 대학생 때 보던 것만큼 구겨지거나 무미건조하지는 않았다. 학생 때 꿈꾸던 일도 내가 하는 일로 풀어낼 수 있는 기회가 있었고, 대기업이기 때문에 생긴 꿈같은 일도 있다.
하지만 대기업은 역시나 대기업이어서 그 무미건조함과 퍽퍽함에 우울해해보기도 했고, 그 삶이 네모난 엑셀 창에 갇힌 듯 느껴진 일도 분명히 있었다. 그리고 역시나 모순되게, 그 때문에 무척이나 인간적인 모습으로 회사 동료들과의 술자리에서 회사 욕, 상사 욕을 하며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안정과 위안을 찾기도 했다.
그래 맞다. 대기업도 사람이 다니는 곳이고 사람은 삶을 산다. 그리고 우리가 다 경험했듯 삶은 참 모순적이다. 그렇기에 회사를 다니던 어떤 날은 사랑을 시작한 듯 온통 유채색의 화려하고 밝은 색깔이 가득하지만, 어떤 날은 그야말로 칙칙한 회색뿐이다.
한 번쯤 이 15년 몇 개월의 직장생활 이야기를 정리해보고 싶었다.
분명 이율배반적이고 인지 부조화적이겠지만 내가 겪어온 일들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 그것이야 말로 브런치 작가로서의 로망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