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졸사원이다 71] 마이크로 매니징, 시간이 갈 수록 지쳐갔다
"내 나이 서른넷 어느덧 벌써 30대 중반 나에겐 절대로 오지 않을 것 같았던 30대 중반 미친 듯이 일만 하며 살아온 10년이 넘는 시간 남은 것 고작 500만 원 가치의 중고차 한 대, 사자마자 폭락 중인 주식계좌에 500 아니 휴짓조각 될지도 모르지 대박 or 쪽박
2년 전 남들따라 가입한 비과세 통장 하나 넘쳐나서 별 의미도 없다는 1순위 청약통장 복리 좋대서 주워듣고 복리적금통장 몇% 더 벌려고 다 넣어둬 CMA통장 손가락 빨고 한 달 냅둬도 고작 담배 한 갑 살까 말까 한 CMA통장 이자 외국에 이민 가서 살고 있는 고등학교 동창 친구놈 가끔 연락이 와 자기는 노가다 한대 노가다 해도 한국 대기업 댕기는 나보다 낫대 이런 우라질레이션 평생 일해도 못 사 내 집 한 채" - 자작곡 <응답하라! 30대여~> 노랫말 중에서
▲ 리더 새로운 본부장님이 오시면서 우리 조직은 창의력이 없는 조직으로 변해버렸다
입사한지 6년 만에 처음으로 부서를 이동하고 담당 업무가 바뀌었다. 되돌아보면 나는 지금껏 항상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것을 즐겨왔는데 이번엔 기분이 조금 달랐다. 20대, 중소기업을 다니던 시절에는 회사에서 나의 능력을 인정해줌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 시점이 되면 또 새로운 일을 찾아 회사를 떠나곤 했다. 하지만 최근 대기업 입사 후 6년을 같은 업무를 해온 탓인지, 아니면 나도 이제 어느덧 서른 중반을 바라보는 나이라 두려움이 생긴 것인지는 아직 잘 몰랐다.
부서 이동에 관한 이야기가 나올 때는 언제 결론이 날지 기다려졌고 어서 자리를 옮기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막상 이동이 결정되고 나니 무슨 심보인지 지금껏 쌓아놓은 성을 버리고 새로운 성을 쌓아야 한다는 생각에 그냥 안주하고 싶은 마음도 생겨났다. 하지만 그런 마음이 들었을 때는 이미 결정이 난 후라 돌이키기에는 늦어버렸다.
기존에 내가 해오던 장비관리 업무는 실제 업무에 필요한 역량과 달리 회사에서는 잘 인정받지 못하던 업무였다. 그러다 회사의 새로운 전산 시스템이 오픈되었을 때 문제가 발생됐고 나는 그 문제를 앞장서서 해결하는 역량을 보여주며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탔다. 그렇게 나의 역량을 높이 산 본부장님은 나의 능력을 아주 높이 평가해주셨고 오랜 시간 해온 그 직무에서 벗어나게 해주기 위해 1년간을 노력해주셨다.
내가 새로운 자리에 옮기고 본부장님은 다른 지역으로 발령이 나면서 우리 본부를 떠나셨다. 그리고 본사 고객지원실에 근무하시던 실장님이 우리 본부의 본부장으로 오셨다. 그 본부장 인사로 인해 나는 엄청난 시련을 겪어야 했다.
사원들 개개인의 특징을 잘 파악해 그 장점을 살릴 수 있도록 믿고 지원해주는 스타일이던 기존 본부장님과 달리 새로 오신 본부장님은 '마이크로 매니징' 스타일이셨다. 아주 사소한 부분 하나하나 본인이 직접 나서서 챙기고 잔소리를 해야만 하는 스타일로 실무자들의 입장에서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게 만들어버렸다.
당시 내가 영업팀으로 자리를 옮겼을 때 나의 직무는 팀 스태프로서 영업사원들로 구성된 우리 팀의 실적관리와 더불어 우리 관할 구역 내에 있는 협력업체 운영 전반을 관리하는 일이었다. 각 지역별 영업팀에는 스태프 인력이 2명씩 있었는데 우리 팀에는 나와 아이 셋 있는 여사원이 함께 근무를 했다.
기본적으로 팀 스태프들의 업무 분장은 명확했다. 1명은 협력업체 운영에 대한 관리와 정산, 그리고 1명은 영업활동에 필요한 사은품과 영업 프로모션에 따른 비용 정산이었다. 그 이외에 팀 운영에 필요한 전반적인 지원과 더불어 실적 관리 등은 상황에 맞게 적절히 분배해서 운영이 됐다.
우리 팀 구성원들은 대부분 10년 이상씩 한자리에서 꾸준히 근무해 온 사원들로 구성돼 있었다. 팀장님부터 팀원들까지 내가 입사하기 전부터, 아니 우리 회사를 대기업이 인수하기 전부터 근무해온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서로가 서로를 너무 잘 알고 편한 것도 있었지만 반면 그로 인해 힘든 점도 많았다.
팀장님은 전형적인 '손 많이 가는 스타일'이셨다. 개인적으로는 집안에서도 막내인지라 먹고 싶은 것 하나도 꼭 본인이 먹고 싶은 걸 먹어야 하셨고 저녁에 술 한잔하고 싶어 팀원들에게 '같이 가자'고 했을 때 빠지는 사람들을 마음에 담아두기도 하는 그런 스타일이었다.
그 성격은 업무에서도 잘 드러났는데 이전의 방목 스타일인 본부장님과 달리 이번에 새로 온 본부장님께서 마이크로 매니징을 통해 각 팀의 팀장님들을 달달 볶기 시작하면서 본색이 드러났다. 하루에도 몇 번씩 소집되는 영업 실적 미팅에서 싫은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서는 현장의 이모저모를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매일 여기저기 영업활동을 하러 나다니는 영업사원들의 이모저모를 모두 다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있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힘든 일은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그중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창의력'이 사라져버린 조직이 되었다는 것이다. 하루에도 각 상품별, 부가서비스까지 실시간으로 몇 개가 팔리고 있는지 그 팔린 개수가 일간, 주간, 월간, 연간 목표달성까지 진도율이 잘 나가고 있는 것인지 몇번씩 체크를 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하루종일 전산 시스템에서 그 실적 뽑아서 팀장님께 가져다드리는 일만 했다.
그렇다고 다른 일이 줄어드는 건 아니다. 원래 해야 하는 현장 협력업체 관리 일이나 정산 문제 그 외에도 현장에 있는 팀원들을 지원해야 하는 일이며 본사나 관리부서에서 요청하는 자료들 정리해서 보고하는 일까지 하다 보니 몸이 몇 개라도 남아나질 않았다. 다른 부서들은 스태프 2명이 업무를 나눠 하고 있는데 우리 팀의 경우 팀장님이 아이 셋 있는 여사원에서 일을 시키기 부담스러워 자꾸 편한 나에게만 일을 시키다 보니 업무가 내 쪽으로 집중됐다.
엄청난 스트레스에서 벗어난 방법
▲ 실적관리 하루에도 몇번씩 열리는 실적회의 때문에 나는 지표뽑는 기계가 됐다
나는 아침에 출근해서 일주일 내내 야근을 해야 했다. 매일 체크해오는 영업실적을 저녁마다 마감해서 보고해야 했기 때문에 제시간에 퇴근을 할 수 없기도 했다. 업무가 너무 많아 하루종일 밥 먹는 시간 빼고는 그 흔한 인터넷 뉴스 한 페이지 훑어볼 겨를도 없이 업무를 쳐내야만 했다. 심지어 팀 회의나 다른 회의가 소집되어도 노트북을 회의실로 가지고 가서 회의와 함께 실적 뽑아 보고하는 일을 멀티태스킹으로 하지 않으면 안됐다.
새로운 팀에 와서 새로운 팀원들과 잘 융화되기 위해 나는 더욱 이 악물고 일을 쳐냈다. 특히나 나는 이전 직무가 영업팀과는 부딪힐 수밖에 없는 장비관리 업무를 했었다. 그렇기 때문에 계속해서 영업팀에 근무해오던 사람들에게 나의 이미지를 개선해야 할 필요도 있다고 생각했기에 더욱 묵묵히 일을 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지쳐갔다.
게다가 내 옆에 앉아 있는 그 여사원은 온 팀이 다 실적이 좋지 못해 스트레스받고 눈치 보며 퇴근도 못 하고 있는데도 매일 같이 퇴근시간만 되면 말도 없이 가방을 들고 사라졌다. 그런 모습을 보며 다른 팀 스태프들은 다들 업무 잘 나눠서 숨도 쉬어가며 일하던데 나만 이렇게 그 사원이 해야 하는 일까지 해가며 스트레스받아야 하는 사실에 너무 화가 났다.
내가 감당하기 힘들만큼의 업무 과부하가 걸리면 팀장님은 내가 쳐내지 못한 일들을 그 여사원에게 주는 게 아니라 현장에서 영업활동을 하는 영업사원 중에 본인이 가장 편하게 생각하는 사람을 사무실로 불러서 나를 지원하도록 했다. 그런 일들이 계속되다 보니 내가 업무를 다 쳐내지 못하면 다른 사람이 피해를 받는다는 생각에 더 스트레스를 받았다.
내가 부서를 옮기고 난 후 본부장님 인사발령과 함께 강도 높은 업무, 그리고 스트레스로 나는 술과 담배를 찾는 시간이 더 늘어났다. 또한 내 주말 시간은 오롯이 일주일간의 스트레스를 풀고 쉬는 시간으로 가지고 싶었지만 매달 돌아오는 협력업체 정산 업무가 요일 상관없이 3일까지 마감을 해야 하기에 월초가 주말이 걸리면 꼼짝없이 출근을 해야 했다. 그리고 하루에도 수십 번씩 날아오는 실적 공유 카톡에... 쉬어도 쉬는 게 아니었다.
그렇게 10개월을 버텼다. 15년이 넘는 시간동안 여러 회사를 거치며 직장생활을 했지만 이렇게 몸과 마음이 힘든 시간은 없었던 것 같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그 힘든 시간, 그 시간은 그해 9월에 있었던 건강검진에서 '갑상선암'을 발견하며 멈추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