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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빠투툼 appatutum Aug 29. 2017

상사에게 잘 보이는 사람만 살아남는 '정치판'

[나는 고졸사원이다 72] 돌고 돌아온 소문

"내 나이 서른넷 어느덧 벌써 30대 중반 나에겐 절대로 오지 않을 것 같았던 30대 중반 미친 듯이 일만 하며 살아온 10년이 넘는 시간 남은 것 고작 500만 원 가치의 중고차 한 대, 사자마자 폭락 중인 주식계좌에 500 아니 휴짓조각 될지도 모르지 대박 or 쪽박 


2년 전 남들따라 가입한 비과세 통장 하나 넘쳐나서 별 의미도 없다는 1순위 청약통장 복리 좋대서 주워듣고 복리적금통장 몇% 더 벌려고 다 넣어둬 CMA통장 손가락 빨고 한 달 냅둬도 고작 담배 한 갑 살까 말까 한 CMA통장 이자 외국에 이민 가서 살고 있는 고등학교 동창 친구놈 가끔 연락이 와 자기는 노가다 한대 노가다 해도 한국 대기업 댕기는 나보다 낫대 이런 우라질레이션 평생 일해도 못 사 내 집 한 채" - 자작곡 <응답하라! 30대여~> 노랫말 중에서

                                                                                    

▲ 마른걸레 회사는 직원들을 마른걸레 짜듯이 실적을 압박했다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않은 열아홉 어린 나이에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군 입대 대신 산업기능요원 복무를 했다. 그렇게 꼬박 13년을 쉬지 않고 일했다. 다른 친구들은 대학에 다니며 캠퍼스 커플이다 해외연수다 뭐다 해서 20대 나이에 맞는 일들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나는 단 한순간도 돈을 벌지 않으면 안됐기에 죽도록 일만했다.


그렇게 열심히 '생존'을 위해 달려온 나에게 결국 남은 것이라고는 건강검진에서 발견한 '암 덩이'뿐이었다. 그 사실에 너무 큰 충격을 받았다(관련연재기사: '암~ 난 행복하지!').


어찌할줄 몰라 방황의 시간을 보냈고 결국 큰 맘먹고 회사에 '병가'를 냈다. 그 넉달의 시간이 내가 성인이 된 후 처음으로 마음 편히 쉬어본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 시간들은 내 삶의 가치관을 변화시켰다.


내가 병가를 내고 쉬고 있는 동안에도 회사 돌아가는 소식이 들려왔다. 회사 전체가 자율성은 사라지고 영업사원들을 '마른걸레' 짜듯이 압박해 실적을 강요하는 분위기가 됐다고 한다. 내가 영업팀으로 발령이 나기 전년도까지만 해도 우리팀은 항상 목표 대비 높은 실적으로 칭찬받는 부서였다. 실적이 좋으니 직원들도 매일 일찍 마감하고 퇴근하는 자유로운 분위기라 기술부서에 근무하던 내가 부러워하던 부서였다.


내가 영업팀으로 발령 받아온 올해, 갑작스럽게 회사는 영업 목표를 지난해보다 2배 가까이나 높게 잡았고 그 숫자를 전국에 나눠 내려주었다. 역대 단 한번도 그런 목표를 받아본적이 없는 사람들은 모두다 '멘붕' 상태로 '말도 안되는 목표'라는 말들을 쏟아냈다.


무리한 목표탓에 상부에서는 직원들을 '마른걸레' 짜듯 압박하기 시작했다. 직원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달성할 수 없는 목표로 매일 스트레스에 시달렸고 그 목표를 억지로 달성하기 위해 해서는 안될 일을 벌이는 직원들도 생겨났다. 겉으로 보기에만 실적이 좋아보일 뿐 '풍선효과'로 결국은 회사의 살을 깎아 먹는 일임에도 눈 앞에 목표 숫자 채워 '욕' 안듣기 위해서 하루살이처럼 살기 시작했다.


회사가 정말 잘못 가고 있다고 느낀건 잘못된 방법으로 목표 숫자를 채우고 있는 사원들의 사례들이 그 부분만 부각되어 전사에 베스트 사례로 소개가 되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어쩌다 그 속내가 낯낯히 드러나면 상사들은 그런 부분을 '알지 못했다'며 발을 빼고는 책임이 전부 담당자에게로만 돌아갔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다 보니 '베스트 사례'는 '숫자 장난으로 끼워맞춘 사례'라는 인식이 팽배해지며 같은 회사의 직원들임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신뢰하지 못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결국 회사는 진짜배기 실력자와 상관없이 오롯이 상사에게 잘 보이는 사람만이 살아남는 냉정한 '정치판'이 되어 버렸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내가 복귀해야 하는 시점이 다가왔다. 나는 이제 그런 전쟁 속에서 버틸 자신도 없었고, 거기에 내 인생을 낭비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일과 삶을 적절히 분리하여 남는 시간에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일을 하며 살고 싶었다. 그래서 복귀 전에 회사를 찾아가 본부장님을 만났다.


나의 기술부서 복귀소식에 돌고 돌아 나에게 들려온 소문들


▲ 소문 나의 기술부서 복귀소식에 엄청나게 많은 소문들이 돌고 돌아 나에게 들려왔다 


본부장님께 기존에 근무하던 '기술부서'로 인사발령을 부탁드렸다. 하루 하루 실적 전쟁통인 영업부서 대비 기술부터는 그래도 아직까지 하루살이처럼 압박을 받고 지내지는 않았기에 자기 담당 업무를 성실히 수행하면 별 다른 문제가 생기지 않는 곳으로 자리를 옮기는게 좋겠다는 생각에서였다.

다행히 나의 요청을 받아들여졌고 매년 초에 있는 인사발령 시기에 맞춰 이동을 할 수 있도록 해준다고 하셨다. 그렇게 나는 임시로 기존 근무하던 영업 부서로 복귀를 했다. 넉달간 치료를 위해 자리를 비웠다가 돌아온 나에게 동료들은 많은 배려를 해주었다. 현장에 나갔다가 퇴근시간이 지나 복귀를 했을 때 내가 아직 퇴근 안하고 자리에 앉아있으면 '아직도 퇴근 안했냐'며 챙겨주기도 했다.

내가 복귀했을 때 우리팀의 팀장님은 바뀐 상태였다. 내가 근무할 때 계시던 팀장님은 다른 지역으로 발령 받아 가셨고 내가 입사했을 당시 이 부서 팀원이었던 분이 다른 지역을 거치면서 어느새 팀장이 되셨고 우리팀장으로 내려오게 됐다.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 내 업무를 대신 해주던 분은 기존 팀장님께서 편히 대하시던 분으로 내 업무가 밀릴 때 가끔 지원을 해주시던 분이었다. 하지만 그 분은 오랫동안 현장에서 관리나 영업업무를 주로 하셨던 분이라 PC 활용능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지금 이 전쟁통에 필요한 여러가지 지표들을 실시간으로 뽑아내기엔 무리가 있었다.

복귀 후, 지표 산출 업무들을 다시 내가 진행하게 됐고 새로온 팀장님은 내가 복귀하고 팀원들과 손발 맞춰 운영해 나가는 모습을 좋게 봐주셨다. 그리고 아직 몸 관리 잘해야 한다며 업무 강도며 퇴근 시간에 있어서도 많은 배려를 해주셨다. 그렇게 다시 회사에 적응을 해나갔다.

내가 복귀 하면서 회사에는 내가 '기술부서'로 다시 돌아온다는 소문이 났다. 그 소문은 나에게 엄청난 스트레스를 가져다 주었는데 모두 다 기술부서에 근무하고 있는 옛 동료들이 내가 복귀함으로 인해 팀에 생길 변화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추측을 하면서 시작됐다.

팀원이 30명 가까이 되는 기술부서에는 분명 나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그들 사이에서 나에 대한 온갖 루머들이 전파되고 그 말들이 돌고 돌아 나에게 까지 전달되는 그 모든 일들이 엄청난 스트레스가 됐다.

나는 참다 못해 현재 함께 근무하고 있는 우리 영업팀장님께 이런 사실을 보고하며 예정되어 있는 인사발령을 번복하고 그냥 영업팀에 남으면 안되겠냐고 말씀드리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미 인사 발령 명단이 본사 인사팀에까지 넘어간 상태라 번복이 힘들다며 안타까워하셨다. 그렇게 복잡했던 복귀 한달 후, 드디어 인사발령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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