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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빠투툼 appatutum Mar 07. 2018

회사 나와 처음으로 월 100만원, 이렇게 기쁠 수가

[청년창업가의 꿈과 현실③] 막연한 두려움

                                                                                                                                                                        

▲ 아침운동 신어천 공원을 매일 아침 걸으며 여유롭게 하루를 시작했다 


2015년 3월 8일, 오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나왔는데, 내가 직장을 그만두었다는 사실이 실감나지 않았다. 암 투병을 하면서 쉬었던 4개월의 기억 때문인지 다시 직장에 휴가를 내고 쉬고 있는 것 같았다. 회사를 그만두었지만 여전히 내가 연락하는 사람들은 회사에 남은 사람들이었고 단지 변한 건 매일 출근을 하지 않는 것 뿐이었다.


매일 같이 울리는 알람소리를 들으며 힘겹게 일어나던 아침 시간이 없어졌다. 이제 아침 일찍 잠이 모자란데도 알람소리에 억지로 일어날 필요가 없었다. 충분히 자고 나면 자연스럽게 눈이 떠지는데 그 때가 돼서야 나는 이불 밖으로 나왔다. 눈 뜨는 그 순간부터가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아온 시간을 이제 끝낸 것이다. 


직장에 다닐 땐 사무실에 거의 도착했을 시간인 8시가 되서야 천천히 일어났다. 일어나서도 이제 바쁘게 움직여야 할 필요가 없기에 매일 아침 먹어야 하는 갑상선 호르몬제를 한알 먹고 화장실을 갔다가 아침운동을 나간다. 3월이라도 새벽에는 추운데 해가 뜨고 나서 천천히 아침운동을 나가서 그런지 날씨가 아주 포근했다.


집앞에 흐르는 '신어천' 데크로드를 따라 빠른 걸음으로 걷기운동을 한다. 신어천 공원을 크게 한바퀴 돌고 어방동에서 동김해IC까지 이어지는 2km 정도의 '어방자연부락' 끝까지 왕복을 하면 하루에 총 4km 정도를 걷는다. 1시간 남짓한 시간동안 걷고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걷기 운동을 하면 생각 정리에 좋다. 앞으로 내가 무얼하고 살아야 할지, 수익은 어떻게 내는게 좋을지 고민스러운 일들을 운동하며 정리한다.


중간정산 받았던 '퇴직금'...후회됐다


▲ 예식 알바 직장을 그만두고 나서도 주말 결혼식 하객 알바를 꾸준히 나갔다 


지난해 우연히 시작하게 된 내 '투잡' 수입을 월별로 분석해보았다. 우연한 계기로 시작하게된 웨딩 콘텐츠 제작 용역과 주말에 나가고 있는 결혼식 하객 대행 아르바이트, 그리고 네이버 블로그 운영으로 조금씩 들어오는 광고 수익이 그 것이다. 아주 작은 수입들이었지만 벌써 3가지 활동에서 수익이 발생하고 있었다. 


상반기에는 한달에 10만원도 채 안되는 수입이 하반기에는 조금씩 커져 50만원이 넘는 수입이 생긴달도 있었다. 그 '희망'을 보고 과감히 직장을 그만둔거다. 하지만 막상 직장을 나와 매달 꼬박 꼬박 통장에 찍히던 수백만원의 월급이 사라지고 나니 덜컥 겁이 나기도 했다. 왜냐하면 생각보다 회사를 나올 때 내 손에 쥐어진 돈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회사를 나올 때 내 손에 들어오는 돈은 곧 내가 밖에서 돈을 벌지 못해도 버틸 수 있는 시간이 된다. 나는 8년간 다닌 마지막 직장의 퇴직금을 중간에 정산받아 써버렸기 때문에 퇴직금이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뒤로 갈 수록 내 연봉은 기하급수적으로 크게 올랐기 때문에 중간정산을 받지 않았다면 내가 받아 쓴 그 돈보다 훨씬 더 많은 돈으로 불어나 있었을테다. 하지만 당시, 그 돈 없이는 내가 너무 힘든 생활을 해야했기에 어쩔수 없는 선택이었다는걸 알지만 후회스러웠다.


계산기를 두드렸다. 지금 내가 벌어들이는 수입과 내가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 나에게 남은 돈을 더해 한달에 필요한 최소 생활비로 나눠 몇달을 버틸 수 있을지 계산하기 위해서였다. 1년 남짓한 시간이 나왔다. 그것도 내가 지금 버는만큼의 돈을 꾸준히 벌었을 때 이야기다. 지금 벌어들이는 수입이 더 적어지면 그만큼 내가 버틸 수 있는 시간도 더 줄어든다. 그러면 내가 해야하는 '편돌이' 생활이 더 빨리 올지도 몰랐다.


직장을 그만두면서 '이제 나는 두번 다시 직장생활은 하지 않겠다'고 맹세했는데 막상 현실앞에서 계산기 두드리다보니 '버티다 정 안되면 다시 어떤 회사에 취직을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하지만 이제 나도 적은 나이가 아니라 다른 직장을 구한다는게 절대 쉬운일은 아닐거라는 건 알고 있었다.


난생처음 내 이름 걸고 번 돈 '100만원'


▲ 정주영창업경진대회 대회에 나갈 생각은 아니었지만, 어떤 사람들이 모이는지 궁금해서 참석했다 


평일엔 간간이 들어오는 웨딩 콘텐츠 제작 용역일을 하면서 주말에는 열심히 결혼식 하객 대행 아르바이트를 나갔다. 일이 많지 않았기에 내 시간은 넘쳐났다. 그 남는 시간에 뭐라도 닥치는대로 '경험'해보자는 생각에 '창업' 관련된 세미나나 행사에 참석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지 알아보기로 했다.


그러다 부산대학교 어느 대강당에서 열린 '정주영 창업경진대회' 부산지역 설명회를 참석했다. 딱히 내가 다른 아이템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당장 내가 '벤처기업'을 창업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그냥 어떤 이야기들을 하는지, 어떤 사람들이 모이는지 궁금했다. 그리고 설명회에 참석하면 스타트업 대표의 특강도 들을 수 있었기에 내가 단 한번도 생각해본 적 없었던 '창업'이란게 어떻게 하는건지 배울 수 있을것만 같았다.


이런 세미나나 행사를 다니면서 '내 돈'으로 창업하는 사람보다 '남의 돈'으로 창업하는 사람이 많다는 걸 알게됐다. 실제로 우리 주변엔 가진돈 모두 털어서 치킨집을 차리거나 식당, 술집을 차리는 창업자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이런 곳에 오면 멋드러진 '스타트업'이라는 말을 쓰면서 어려운 '플랫폼' 사업, 아이디어와 기술력이 복합된, 아주 특별한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것이 '창업'이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나같이 특별한 능력없는 평범한 사람에게 창업은 더욱 멀게 느껴졌다.


뭔가 더 어려워졌다. 머릿속은 복잡해졌고 처음 회사를 박차고 나오면서 가졌던 희망이 조금씩 사라지는것만 같았다.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 할 때쯤 건강보험공단에서 우편물이 날아왔다. 건강보험이 직장가입자에서 지역가입자로 변경된다는 안내문이었다. 이제 진짜 조직을 떠나 혼자가 됐다는게 실감이 났다. 그리고 이런 고민을 말할 수 있는 곳이 없다는걸 알게됐다. 이전 직장 동료들에게 '그러게 왜 그만뒀냐'는 비아냥을 듣고 싶지 않아 자연스럽게 그들과도 멀어지기 시작했다.


이런 저런 생각에 머릿속은 복잡했다. 복잡한 생각이 많을 수록 내 아침운동 시간은 길어졌다. 그렇게 봄이 시작되고 봄 예식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둘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많은 연락이 오면서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게 됐고 회사를 그만두고 처음으로 맞이하는 봄 성수기에 나는 처음으로 한달 수입 100만원을 넘겼다. 그렇다. 지금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충실하면 되는거였다. 너무 멀리 보고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100만원, 큰돈은 아니지만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직장생활'이 아닌 오롯이 내 이름 걸고 일해서 벌어본 첫 목표였던 금액이었다. 기뻤다. 그리고 마흔이 넘은 나이에 늦둥이 하나 낳아서 평생을 뒷바라지 한다고 고생만 하신 우리 어머니와 성인이 되고 처음으로 하루에 2끼 이상을 함께 밥 먹고 대화하고,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일일 연속극도 함께보면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 생활이 더 늦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 행복을 계속 유지하면 '그걸로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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