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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빠투툼 appatutum Jun 18. 2020

엄마와 나의 소울푸드 '김치찌개'

내가 김치찌개를 좋아할 수 밖에 없는 이유



참치 김치찌개



'김치'라는 음식을 안먹는 사람이 아니라면 누구나 좋아하는 음식이다. 사람들에게 좋아하는 음식이 뭐냐고 물으면 '김치찌개'라고 대답하는 사람 역시 많다. 누군가 나에게 좋아하는 음식이 뭐냐고 묻는다면, 고민은 좀 하겠지만 때에 따라 '김치찌개'라고도 대답할 것 같다.


엄마가 마흔이 훌쩍 넘어서 낳은 늦둥이였던 나는, 어릴적 입이 워낙 짧아 고기도 안먹고 생선도 안먹고 겨우 먹는다는게 분홍 소시지나 햄 반찬, 아니면 맹물에 밥 말아서 콩잎 짱아치 얹어 먹는게 전부였다. 워낙 가난한 집안 형편탓에 다른 친구들처럼 가족 외식으로 돼지갈비를 먹으러 간다거나 그랬던적이 없기에 지금은 좋아서 환장하는 '고기맛'도 몰랐다. 어쩌다 한번 밖에서 밥을 먹을 때면 '짜장면'이 내겐 최고의 메뉴였다. 말그대로 '어머님은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그 정도로 우리집은 가난했다.


내가 김치찌개의 '참맛'을 알게된건 20대 초반, 집을 떠나 타지생활을 하면서다. 혼자 살기 시작하면서 돈 안들이고 밥한끼 해결하기에는 엄마가 보내준 김치로 끓여 먹는 김치찌개가 1등 메뉴였다. 천원도 안하는 참치캔 하나를 때려넣고 맹물 부어 끓인 김치찌개 하나면 다른 반찬 없이도 밥 한그릇 뚝딱 비워낼 수 있었다.


친구들은 대학에 진학해 캠퍼스를 누빌 때, 나는 열아홉 나이부터 하루 12시간 주야 2교대 공장에서 돈을 벌어야만 했다. 작은 공장의 기숙사에서부터 시작해 보증금 없이 월 18만원짜리 바퀴벌레 득실대는 단칸방을 지나 2년뒤엔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30만원짜리 신축 미니투룸으로 이사했다. 군대가면 돈을 못벌기 때문에 산업기능요원 복무가 가능한 회사에 취직해 작지만 꾸준히 돈을 벌어 살림살이를 늘려 나갔다.


쥐꼬리만한 월급으로 혼자 겨우 먹고 살 정도밖에 되지 않았던지라 환갑이 넘어 혼자 고향집에 사는 엄마에게 돈 한푼 보내드리지 못했다. 일년에 겨우 2~3번 집에 내려가 엄마 모시고 동네 고깃집에서 돼지갈비 시켜 밥 한끼 사드리는게 전부였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육고기 좋아하지 않는 엄마에게 돼지갈비는 정말 먹기 싫은 메뉴였다. 철 없는 나는, 내가 좋아하니까 당연히 엄마가 웃는건데도 엄마도 맛있어서 그런줄로만 알았다.




냉장고 숙성 김치찌개



세월이 흘러 26살이 되던 해에 7년간의 타향살이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운 좋게 대기업에 취업 했는데 엄마가 살고 있는 고향 도시에서 근무할 수 있었다. 성인이 되고 처음으로 함께 살게된 엄마와 나. 평소엔 얼굴 못보고 가끔 전화통화를 할 때면 그렇게 그리워했었는데, 막상 같이 살게되니 불편한게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 불편함도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익숙해져갔고 이제 엄마와 둘이 사는게 당연한 시간이 됐다.


집 가까운 곳에서 근무하다 회사의 조직개편으로 인해 옆 도시로 출퇴근을 하게 됐다. 아침 교통 대란으로 인해 차가 너무 밀리는 구간이라 출근길이 1시간 훌쩍 넘게 걸렸다. 그 때부터 나는 비용도 아낄겸 차를 버리고 시내 버스로 출퇴근 하기 시작했다. 버스를 타고 출근 하려면 6시 30분 버스를 타지 않으면 안됐다. 그 버스를 타기 위해 나는 5시 50분에 일어 나야했다. 그렇게 출근 준비를 하고 나오면 항상 식탁엔 아침상이 차려져 있었다. 막내 아들 때문에 칠순을 바라보는 엄마의 하루도 엄청나게 길어져 버린거다. 그 때 자주 올라오던 나의 아침 메뉴는 바로 김치찌개다.


성인이 되고도 여전히 입이 짧은 나지만, 내가 좋아하는 음식은 하루 세끼 같은 메뉴를 먹어도 될 정도로 호불호가 극심하다. 엄마가 집에 김치찌개를 큰 냄비로 한솥 끓여 놓으면 몇날 며칠을 계속해서 먹는다. 어차피 출근하면 점심, 저녁은 밖에서 먹고 오기 때문에 거의 엄마표 김치찌개는 단골 아침 메뉴였다. 하루 한끼 김치찌개, 나는 계속 먹어도 되는데 엄마는 같은 음식 안주려고 또 다른 국이나 찌개를 만들곤 했다. 하지만 다른 메뉴들이 식탁에 올라도 나는 곧장 끓여둔 김치찌개를 찾았다. 


냉장고에서 며칠동안 숙성이 된 김치찌개는 입에 넣으면 사라질정도로 김치가 흐물 흐물해져 있다. 딱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김치찌개. 그거 하나면 다른 반찬 하나도 필요없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 하지만 그 때는 몰랐다. 내가 김치찌개를 그렇게 좋아하는지를.



몇년이 흘러 30대가 됐다. 그동안 엄마는 더욱 더 많이 늙으셨다. 칠순을 넘긴 나이지만 여전히 엄마는 아들의 식사를 챙긴다. 그러다 내가 매년 하던 건강검진에서 '암'을 발견했다. 정말 치열하게 살아온 나에게 일어난 이 일은 청천벽력만 같았다. 힘들게 쌓아온 성이 한번에 와르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수술을 받기 위해 입원을 하던 날. 엄마에게는 서울 본사에 출장을 간다고 말했다. 여느 출장 때처럼 기내용 캐리어에 짐을 챙겨 나왔다. 그리고 일주일 뒤 수술을 받고 집에 돌아왔을 때 엄마에게 사실을 말했고, 엄마와 나는 부등켜 안고 엉엉 울었다.


수술 후 본격적인 투병생활이 시작됐다. 특히 방사성 요오드 치료를 받기 위해서는 한달동안 '저요오드식'을 해야한다. 쉽게 말해 바다에서 나오는 거의 모든 음식을 먹을 수 없다. 소금을 못먹으니까 소금이 들어간 모든 음식을 다 못먹는다. 김치도 마찬가지고 김치로 만든 김치찌개도 못먹는다. 그리고 한달간 매일 복용하는 호르몬제도 복용을 중단하기 때문에 몸은 지칠 때로 지친다.


그리고 한달이 지나면 엄청난 용량의 '방사능'이 나오는 '알약'을 먹고 2박 3일간 철처히 혼자 격리되어서 몸 안에 있는 '방사능'을 몸 밖으로 빼내기 위해 혼자 고군분투를 해야한다. 물을 하루에 2리터 넘게 마셔야 하고 암 세포 이외에 정상 세포가 파괴되지 않도록 특정 부위 얼음 찜질도 한다. 그렇게 지옥같은 2박 3일이 지나면 퇴원을 하지만 집에 가서도 내 몸에서는 잔여 방사능이 나오기 때문에 가족의 피폭 피해를 줄이기 위해 최소 일주일 이상 격리해서 지내야 한다.


퇴원을 하면 이제 먹고 싶은 음식을 먹을 수 있다. 이 때 내가 제일 먹고 싶었던 음식이 바로 엄마표 김치찌개다. 먹을거 제대로 못먹은 내가 엄마에게 김치찌개가 먹고 싶다고 했을 때 엄마는 고작 먹고 싶은게 김치찌개냐며 안타까워 하셨다. 그리고 그토록 먹고 싶던 엄마의 김치찌개 밥상을 받았는데 방사능 알약의 후유증으로 음식맛을 제대로 느낄 수 없었다. 그래도 엄마의 마음이 느껴져서인지 그 때 먹은 엄마의 김치찌개가 제일 맛있었다.




내가 만드는 김치찌개




시간은 훌쩍 지나 드디어 완치 판정을 받았다. 그리고 엄마는 어느덧 여든을 넘긴 나이. 여전히 아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해주고 싶어 하지시만 이제 연세가 있으셔서 음식 할 때 간도 잘 못맞추고 힘들어 하기도 하신다. 그래서 요즘엔 내가 더 요리를 자주 한다.


암 투병을 하면서 다니던 회사를 그만뒀다. 그리고 조금은 시간 활용이 자유로운 일을 하고 있다. 그 덕에 나는 그동안 못했던 엄마와의 추억 만들기를 한창 진행 중이다. 엄마가 수십년간 열심히 끓여온 김치찌개를 이제 내가 끓이고 있고 엄마와 함께 캠핑을 가서도 나는 엄마와 함께 먹을 김치찌개를 끓인다.


고기를 먼저 볶아서 돼지기름을 내고 그 기름에 김치를 볶은 다음 쌀뜨물을 넣고 김치가 익도록 푹~ 끓인다. 그리고 양파와 파는 아삭함을 살리기 위해 나중에 넣고 다진 마늘 듬뿍 넣어 감칠맛을 살리면 맛있는 김치찌개가 완성된다. 그냥 김치와 고기 넣고 물만 부어 끓여내던 엄마의 김치찌개보다 훨씬 더 체계적이고 공들여 끓이기 때문에 찌개 맛은 예술이다. 그런데 왠지 예전에 먹던 엄마의 그 찌개맛이 그립다.


그래서 요즘에도 가끔 나는 엄마에게 김치찌개를 해달라고 한다. 그렇게 받는 김치찌개 밥상은 이제 예전의 그 맛이 안난다. 그래도 좋다. 언제까지 먹을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이 김치찌개 밥상. 조금이라도 더, 조금이라도 더 오래도록 먹고 싶다. 이제 일주일 후면 내 생일이다. 이번 생일에도 나는 엄마에게 김치찌개 밥상을 받고 싶다고 말해야겠다.


엄마와 나, 

우리 가족의 소울 푸드는 바로 이 김치찌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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