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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빠투툼 appatutum Sep 22. 2015

검사 2주 뒤 마주한 의사의 첫 마디 "암이네요"

[암~ 난 행복하지! ④] 간절한 기도

서른둘 갑작스런 '갑상샘암' 선고와 투병생활로 망가진 몸. 그로 인해 바뀌어버린 삶의 가치와 행복의 조건. "갑상샘암은 암도 아니잖아"라며, 가족조차도 공감하지 못하는 우리들의 이야기. 죽음의 문턱에서 깨달았다.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갈망하던 내일'이란 것을. 꿈이 있다면 당장 시작하라! '내일'이면 늦어버릴지도 모른다. - 작가 말


내가 갑상샘암에 걸려 투병을 시작한 그 해에 나는 캠핑에 푹 빠져 살고 있었다. 정신없는 일주일을 보내고 매주 금요일 밤이면 어김없이 짐을 챙겨 밀양으로 캠핑을 떠났다. 산 속에 있는 캠핑장에 텐트를 쳐놓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으면 세상의 모든 스트레스가 다 달아나 버리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물론 캠핑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일요일 오후가 되면 또 일주일을 버텨 내야 한다는 생각에 지옥으로 돌아오는 것만 같았다.

10년이 훨씬 넘도록 직장생활을 해왔지만  그때처럼 출근하기 싫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원래 스트레스를 잘 받는 성격이지만, 그래도 뒤끝 없이 금세 잘 풀리는 성격인지라 가슴에 응어리가 지는 성격은 아니다. 그런데 새로운 부서로 옮겨 적응하던 그 해는 정말 힘이 들었다.

세포흡인 검사로 조직검사 결과가 나오길 기다리는 2주. 추석 연휴가 되었는데 집에 있으려니 너무 답답했다. 그나마 내 마음이 평온해지는 캠핑장으로 떠야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짐을 꾸렸다. 

                                                                                    

▲ 가을 파쇄석으로 된 캠핑장 바닥에 떨어진 낙엽들 




매주말마다 캠핑을 온 사람들로 북적거리던 캠핑장도 명절이라 그런지 한산했다. 나와 같은 생각으로 캠핑을 온 몇 팀만이 텐트를 치고 한산한 캠핑장을 지키고 있었다.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더워서 사무실에 에어컨을 켜 놓고 살았는데 건강검진을 받고 정신없이 보낸 2주 동안 가을은 어느덧 가까이에 와 있었다.



캠핑장의 밤하늘은 깨끗했다. 평소 하늘을 올려다 볼 여유도 없이 살아오던 내 인생인데 이런 일이 생기고 나서야 최근 들어 하늘을 볼 일이 많아졌다. 사무실 계단에서 담배연기 내뿜으면서 바라보던 푸른 하늘과 이렇게 보름달과 수많은 별들이 반짝이는 캠핑장의 밤하늘은 어찌할 줄 모르는 나의 마음을 조금은 편안하게 해주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한가위는 보름달을 보면서 소원을 비는 날이다. 평소 어머니가 꿈자리가 뒤숭숭해서 조심하라고 하거나 절에서 쓴 부적이라며 내 지갑에 꽂아줄 때마다 나는 그런 미신 따위 믿지 말라며 어머니께 소리를 지르곤 했다. 그런 내가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답답한 마음을 가지고 내 머리 위에 뜬 한가위 보름달을 마주하니 간절한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어느새 난 두손을 모으고 기도했다.



"저는 하나님도 부처님도 믿지 않습니다.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세상에 믿을 거라곤 내 능력밖에는 없을 거라고 이 악물고 살아왔는데 이번에야 말로 제 힘으로 어찌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려고 합니다. 하나님이든 부처님이든 신이 있다면 이번 한 번만, 제발 아무 일 없게 해주세요. 지금까지 돌보지 않고 막대하며 살아온 내 몸에게 앞으로 더 잘할게요. 제발 이번 한 번만 제 소원을 들어주세요."



그렇게 간절한 마음으로 추석 연휴를 보내고 드디어 조직검사 결과가 나왔다고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검사 결과는 본인이 직접 와야 알려준단다. 보름달에게 소원을 빌 때보다 더 간절한 마음으로 병원으로 갔다. 길게만 느껴지던 대기시간이 끝나고 진료실로 들어가 세포흡인 검사를 했던 외과 의사 옆에 앉았다. 의사는 모니터에 뜬 알아볼 수 없는 암호와 같은 결과서를 보면서 목소리에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나에게  이야기했다.



"암이네요."



그렇게도 간절히 기도했건만 보름달은 내 인생 첫 번째 소원을 들어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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